
미국 관세 압박에 시달린 지 수개월, 오늘은 한국 수출의 주력선수 반도체와 관련한 빅뉴스가 쏟아진 날입니다. ⓵ 한국은행은 6월 경상수지 흑자가 역대 가장 많은 약 143억 달러라고 밝혔습니다. 11% 늘어난 반도체 수출 호조가 크게 기여했습니다. ⓶ 삼성전자가 애플에 아이폰용 차세대 칩을 납품하게 됐습니다. 테슬라에서 23조 원 규모 수주에 이은 연속 낭보였습니다.
⓷ 같은 시점 트럼프 미 대통령이 또 세계 업계에 폭탄을 날렸습니다. "우리는 반도체에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집적회로(chips)와 반도체(semiconductors)"가 부과 대상이라고 말한 겁니다. "만약 미국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건설한다면 부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도체 수출호조, 삼성 호재...하지만 또 트럼프
삼성은 아이폰 카메라 품질을 결정하는 이미지 센서를 미국 오스틴의 삼성 공장에서 생산해 납품하게 됩니다. 테슬라 첨단 칩 수주에 이어 주문형 고부가가치 칩의 기술력이 연거푸 인증된 셈입니다.
세계 최고 점유율(39%)의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적자를 감내하며 기다렸던 삼성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의미가 큽니다. 업계에선 1년 이상 기다리고 있는 엔비디아의 첨단 HBM 납품까지 성사되면 '삼성의 반격'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하지만 같은 날, 트럼프의 100% 관세 언급에 삼성과 SK는 다시 노심초사의 상황이 됐습니다. 연쇄적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한국도 100%관세?...'최혜국' 약속 지켜질까?
산업계와 금융시장이 술렁이자, 대통령실은 한국은 이미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다고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강유정 대변인은 "100%든 200%든 간에 어떤 나라가 최혜국 대우를 받는다면, 우리 반도체나 의약품 분야에 있어서 최혜국 대우 약속을 받았다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반도체·바이오 품목관세 15%를 약속받은 만큼, 100%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15% 수준의 최혜국 대우를 받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물론 미국이 최혜국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만약 실제로 100% 관세가 부과된다면? 당연히 큰 타격을 받습니다. 자동차에 이어 반도체는 대미 수출 2위 품목입니다. 하지만 세부 시나리오에 따라 강도는 달라집니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20% 정도 됩니다. 반면 이 가운데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반도체 비중은 약 7.5%로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중국으로 수출이 33%, 홍콩 18%, 대만 15%, 베트남 12% 정도입니다. 최악의 관세라도 당장의 타격은 제한적일 거란 기대가 나옵니다.
삼성, SK가 생산한 칩을 중국 대만 등에서 더 큰 반도체 모듈이나 관련 제품에 끼워서 다시 미국 등에 수출하는 경유 형식 때문입니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도 한국산 HBM 반도체를 대만에서 최종 조립해 완성합니다. 결국 다른 반도체보다 메모리 칩 판매 비중이 월등히 큰 한국 (메모리 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 67%) 입장에선 이를 받아서 재수출하는 중국, 대만에 부과될 관세가 얼마일지가 중요합니다. 만약, 대만 같은 나라가 고율의 미국 관세를 부과받고, 이를 못 견뎌 아예 생산 공장의 미국 이전을 본격화하면 이때는 한국도 메모리칩을 미국으로 직접 수출해야 하는 만큼 관세 타격이 점점 커지게 됩니다.
또 다른 변수는 삼성, SK가 미국에 생산 공장을 가졌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미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건설하거나, 미국에 건설할 것을 확약한 기업에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섣부른 기대이긴 하지만 이 말 그대로라면 한국은 무관세가 됩니다. 하지만 말이 계속 바뀌고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긴 하나 싶은 트럼프의 변덕이 여전히 부담입니다.
'미국서 만들라' 노골적 압박...결국 중국 견제 목적
반도체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관세폭탄 의도는 다른 품목들과는 다릅니다. 관세 수입, 즉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닌 미국 영토 안에 반도체 생산 체인을 구축하려는 전략적인 목적, 구체적으로 AI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의도가 뚜렷합니다.
최근 10여 년 동안 노골화된 '칩워(Chip War)', 즉 반도체 기술과 생산력 확보 전쟁에서 중국은 성큼 약진했고, 미국은 초조해졌습니다. 미국의 바이든 전 정부나 트럼프 현 정부나 대만, 한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을 거치는 일종의 반도체 생산 분업 구조(밸류체인)를 개편해 아예 자기네 땅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를 계속해왔습니다. 미 민주당 정권은 미국 내 공장을 만들면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트럼프는 관세 폭탄을 때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미국으로 오게 하는 방식만 다를 뿐입니다.

반도체 발명국인 미국은 비교적 단순한 메모리 반도체 생산이나 설계도에 맞춰 생산하는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는 주로 아시아 지역에 맡기고, 자국 업계는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첨단 칩 설계 분야(팹리스)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사태나 중국과의 패권 경쟁 국면에서 글로벌 물류 시장 마비로 반도체 물량이 부족해지는 품귀 현상까지 경험했습니다. 기술력은 강하지만 정작 생산 능력이 약하다는 약점을 뼈아프게 인식했고, 결국 미국 땅 안에 공장이 있어야 전쟁 등 유사시에도 필요한 칩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