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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에서 느낀 '존 윅'의 향수…춤추는 액션 vs 뻣뻣한 캐릭터 [스프]

[주즐레]

발레리나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여성판 '존 윅'을 표방하는 '발레리나'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명확한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존 윅'은 성별만 바꿔 대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의 고유명사이자 브랜드다.

키아누 리브스가 늙고 둔해졌다 해도 그는 그 자체로 존 윅이다. '존 윅4'(2023)에서 그의 육체는 이미 예전의 것이 아니었지만, 나이 듦조차 서사의 한 요소로 녹여냈다. 우리는 모두 노화를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몸이 무기인 존 윅 역시 예외가 아님을 보여줬다. 오히려 늙고 힘에 부쳐 힘겹게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큰 울림이 됐다. 

인기 시리즈의 장기화를 위해 스핀오프, 프리퀄 등을 활용하는 건 익숙한 방식이다. '존 윅' 역시 스핀오프를 통해 시리즈의 생명을 연장하고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 시작이 여성판 '존 윅'인 발레리나다. 

'발레리나'는 암살자 조직 루스카 로마에서 킬러로 성장한 '이브'(아나 데 아르마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진실을 쫓던 중 전설적인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과 마주하고, 킬러들이 장악한 정체불명의 도시에서 피의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존 윅'과 마찬가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주인공의 강력한 동기다. 존 윅이 강아지(죽은 아내와의 추억을 공유한, 그 자체로 아내를 상징)를 죽인 이들에게 복수의 주먹을 날렸다면, 이브는 아버지를 죽인 이들을 향해 총과 칼을 겨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시리즈의 플롯은 단순하다. 느슨한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건 액션이다. 스턴트맨 출신인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존 윅' 시리즈 네 편을 연출하며 액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공간과 지형지물을 활용한 창의적이고 다양한 액션 시퀀스를 통해 액션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가 '발레리나'까지 직접 연출한 건 아니지만 제작자이자 액션 감독으로서 영화의 전반에 관여했다. 

타이틀롤은 아나 데 아르마스가 맡았다. 아르마스는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나이브스 아웃'(2019)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고, '007 노 타임 투 다이'(2021)에서는 본드걸로 활약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다. 특히 007 시리즈에서는 남성의 보호를 받는 수동적인 본드걸이 아닌 역동적인 액션을 펼치는 색다른 본드걸의 면모를 보여줬다. 미모와 카리스마, 여기에 액션 감각까지 갖춘 아나 데 아르마스를 캐스팅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리나'가 다소 시시할 거라 추측할 수밖에 없는 건 '이브'가 태생적으로 약자의 포지션에 있다는 점 때문이다. 생물학적 차이, 즉 물리적 힘의 대결에서 여성이 남성을 이길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없다.

'발레리나'는 '존 윅'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집단을 파훼하는 식의 보복 구조를 띤 이야기다. 이브가 맞대결을 펼치는 대부분의 사람은 고도로 훈련된 남성들이다. 일 대 다(多)의 대결이 필수적인 액션 영화에서 한 명의 여성 캐릭터가 끝까지 살아남아 조직에 복수하는 과정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전제는 '반드시 이긴다'가 아니라 '제대로 이긴다'가 되어야 한다. 관객이 '존 윅' 시리즈에 열광한 건 스턴트나 CG로 무장한 히어로 무비 속 비현실적 액션이 아닌 몸과 몸이 부딪히는 아날로그 액션이 주는 날것의 쾌감 때문이었다. 

'발레리나'를 연출을 맡은 렌 와이즈먼 감독과 제작자 채드 스타헬스키는 당연하게도 '액션'에서 답을 찾았다.

'이브'는 여성이라는 신체적 한계를 다양한 무기를 이용해 극복한다. 각종 총기류는 물론이고, 칼, 스케이트 날, 화염방사기 등 도구와 무기를 활용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상대를 제압한다.

특히 후반부 화염방사기를 활용한 액션은 잔인함의 강도가 높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통쾌하다. 이 장면들의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느끼고자 한다면 사운드특화관에서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발레리나'는 존 윅을 등장시키는 '치트키'를 썼다. 대부분의 스핀오프가 세계관을 공유하되 독립적인 형태로 나아가는 것과 달리 '발레리나'는 존 윅을 조연으로 등장시키는 팬서비스를 한다. '존 윅' 시리즈의 향수를 자극하고 '발레리나'와의 연대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영리한 전략이다. 키아누 리브스는 아나 데 아르마스와 1:1 액션 대결을 펼치며 노익장을 과시했고, 후반부에는 조력자로서 활약하기도 한다. 

'존 윅' 시리즈와 '발레리나'는 특별한 영화다. '액션만으로 이뤄진 영화는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액션만으로도 이야기가 된다'는 성공 신화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발레리나'는 액션의, 액션에 의한, 액션을 위한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존 윅'에 이어 꽤 성공적으로 계승해 냈다. 화끈한 물량 공세로 규모를 확장했고, 촘촘하게 설계된 액션들을 쉼 없이 선사하며 오락성을 극대화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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