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피해를 키운 무안공항 활주로의 '콘크리트 둔덕'을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NYT)가 집중적으로 파헤쳤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수십 년 누적된 잘못이 한국의 활주로 끝에 죽음의 벽(Lethal Wall)을 세웠다'는 탐사보도를 통해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무안공항의 최초 설계 도면을 비롯해 26년 치 무안공항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확보해 분석하고, 취재팀에 홍콩 주재 탐사보도 전문기자도 투입했습니다.
NYT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면서도 "활주로 끝의 단단한 벽이 있었기에, 벽이 없었을 경우보다 참사의 규모를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이은 설계·건축 관련 선택들이 활주로에 인접한 '콘크리트 위험물'의 존재로 이어졌다"는 점을 짚어내고, "정부 규제 당국은 안전에 대한 경고를 무시했다. 결국 어떤 충돌이든 재난적인 결과로 이어질 확률을 높였다"고 지적했습니다.
NYT는 무안공항 활주로의 방위각 시설물(로컬라이저)이 콘크리트 둔덕에 지어진 경위에 주목했습니다.
통상 로컬라이저는 항공기 충돌 시 쉽게 부서지도록 설치됩니다.
1999년 무안공항 최초 설계도에도 "충돌 사고 발생 시 항공기에 치명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로컬라이저가 충돌에 쉽게 부러져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2003년 이 설계는 변경됐습니다.
변경된 설계에 따라 로컬라이저의 지지대는 잘 부서지는 구조물이 아닌 단단한 콘크리트로 변경돼 그대로 설치됐습니다.
NYT는 설계를 누가 변경했는지, 왜 변경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쉽게 부서지는 목재·강철 구조물에 비해, 콘크리트 구조물의 비용이 더 저렴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무안공항의 설계 및 시공은 국토부와 서울지방항공청의 발주로 1999년부터 금호건설 컨소시엄이 주도했습니다.
정부가 십수 년 전부터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문제'를 알고 있었던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NYT에 따르면 무안공항 운영사인 한국공항공사는 개항 6개월 전인 2007년 국토부에 '로컬라이저가 활주로에서 너무 가깝다'는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안전 규정에 맞추려면 로컬라이저를 활주로에서 더 멀리 이동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국토부는 무안공항의 개항을 그대로 승인했고, 이후 여러 차례 감사에서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고 NYT는 보도했습니다.
NYT는 2020년에 '콘크리트 둔덕' 문제를 바로잡을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법률에 따라 공항의 항행시스템은 14년마다 개편해야 하는데, 당시 설계를 맡은 업체가 콘크리트 둔덕을 해체하지 않고 오히려 콘크리트 슬라브 구조물를 더해 강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정부가 이 구조 변경안을 그대로 승인하면서 2024년 2월 무안공항 활주로 끝에 높이 2m(로컬라이저 포함 시 4m)의 콘크리트 둔덕이 완성됐습니다.
참사 10개월 전이었습니다.
NYT의 탐사에 참여한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이준화 씨는 콘크리트 둔덕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사고가 일어난 이유가 있겠지만, 죽음의 이유는 따로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