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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됐던 명반의 귀환…이순신과 사주 일주 같은 건 우연?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강헌 음악평론가

아침이슬
'아침이슬'이 실린 김민기 1집이 그의 1주기를 맞아 LP로 재발매됩니다. 독재정권이 금지했지만 시대의 명반이 된 이 희귀 앨범을 복각 LP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김민기가 활동을 금지당한 후, 지하에서 녹음해 배포한 노래굿 '공장의 불빛'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인데요, 이 음반의 녹음은 당시로선 생명까지 거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죠. 그가 이순신 장군과 사주 일주가 같은 건 우연일까요?

사라진 원본, 잊힌 기억, 되살아난 노래. 김민기의 목소리를 지금 다시 듣는 이유를 음악평론가 강헌 씨와 함께 짚어봅니다.

최영아 아나운서 : 이번 앨범이 LP로 복각되잖아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강헌 음악평론가 : 진작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그거 아세요? 2024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 CD 판매량보다 LP 판매량이 더 많아졌다는 거. 근데 LP가 저 같은 낡은 세대들의 향수의 전유물이 아니고요. 요즘 10대, 20대들도...

김수현 기자 :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듣죠.

강헌 음악평론가 : 그래서 사실 LP가 더 빨리 나와야 했었어요. 근데 10대, 20대에게 100만 원, 200만 원 하는 오리지널 LP를 사서 들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그래서 생전에 내자고 했어요. 근데 이분의 결벽증이 또 발동해서 '이미 끝난 걸 뭘 또 내냐'

김수현 기자 : 안 된다고 하셨겠죠.

강헌 음악평론가 : 그때 제가 꼬셨어요. '지금 학전 운영도 어려우신데 제가 형님의 영화를 위해서 만든답니까'. 50주년 기념 앨범이라고 하면서 71년도 판과 93년도 것까지 찾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앨범을 내면 제가 볼 때 학전의 빚은 많이 갚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끝까지 안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최영아 아나운서 : 전혀 타협을 안 하시는구나.

강헌 음악평론가 : '그래 본인이 싫다는데' 그래서 그때 제가 못 했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에 이렇게라도 유족 측에서 낸다는 건 일단 큰 의미가 있고요. 이 음반은 정말 의미가 있습니다. 단지 '아침이슬'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싱어송라이터의 시대를 연 첫 번째 앨범이에요. 대중음악이 일종의 상업적 깡통 음악에서 예술가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역사적 전환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음반이고요.

이 음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우리가 기억하는, 시장과 타협하지 않은 수많은 위대한 뮤지션들의 계보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이 앨범이 복각된다는 것은 너무 기쁜 일이고요. 하는 김에 93년도의 4장짜리 음반도 요즘 4장 다 사려면 100만 원 넘어요. 그래서 그것도 다 같이 나올 것 같아요. 1집으로.

최영아 아나운서 : 아 그래요?
아침이슬

강헌 음악평론가 : 그리고 제가 지금 꼭 하고 싶은데 못했던 것이 뭐였냐 하면, 김민기 선생의 두 번째 위대한 공적은 1978년에 지하에서 만들었던 '공장의 불빛'이라는 일종의 노래 극입니다. 일종의 뮤지컬이면서 본인은 '노래굿'이라고 표현했는데, 뮤지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고, 러닝 타임이 43분밖에 되지 않으니까. 여공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렸는데요. 단순히 3~4분짜리 히트곡을 노린 노래가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를 담은 극적 서사로서 대중음악이 작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위대한 시도고요.

어떤 의미에서 한국 최초의 불법 음반입니다. 지하에서 만들어지고 지하에서 배포된. 가장 폭압적이었던 유신 시대 말기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어디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변사체로 발견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거든요. 참고로 이순신 장군의 일주와 김민기 선생의 사주 일주가 동일합니다.

최영아 아나운서 : 그래요? 또 명리학 전문가셔서. (웃음)

강헌 음악평론가 : 이러한 일들을 보면 김민기에게서 이순신과 같은 이미지가 느껴집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제가 생전에 많이 물어봤어요. 자기도 꿈을 꾼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그리고 너무 힘드니까 그냥 여기서 모든 게 끝나도 좋다는 절벽에 선 것 같은 마음, 상황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당시 아마추어 대학생들에 의해 녹음이 됐어요. 그 녹음 과정도 굉장히 많은 스토리가 있는데, 녹음하려면 스튜디오가 있어야 되잖아요. 지금이야 컴퓨터 때문에 집에서도 할 수 있지만. 근데 그 스튜디오를 누가 빌려줘요? 큰일 나죠.

김수현 기자 : 다큐에 나왔지만.

강헌 음악평론가 : 그 당시 슈퍼스타였던 송창식 선생이 개인 스튜디오를 빌려줍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 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 세대들의 배포, 진정성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만들었는데 그거는 굉장히 조악하지만 당연히 원본은 없어요.

원본이 없는 것도 드라마인데요. 1집 같은 경우는 중앙정보부가 음반사를 덮쳐서 압수해서 폐기했으니까 없는 거예요. 근데 이거는 개인이 만든 거니까 본인이 갖고 있을 거 아니에요. 원본 테이블 3개를 만들어서 다 숨겨놓고, 자기는 잡혀갈 거니까. 도망가면 자기를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할 것 같아서, 돈암동 집에서 잡아가라고. 집 나갔을 때 경찰이 올까 봐 집에서 안 나가고 기다렸대요.

근데 일주일이 2~3주일, 한 달이 지나도 아무도 안 잡으러 오더라는 거예요. 본인은 영문을 몰랐지만, 관계기관 대책 회의에서는 이 문제를 더 안 키우기로 결정을 한 거예요. 그때 김지하 사건으로 유신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고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있었기 때문에, 김민기까지 건드리면 외교적 부담이 더 클 것 같아서 모른 척하기로 한 거예요.

근데 본인은 모르잖아요. 통보를 안 해주니까. '왜 안 잡아가는 거야'하고 기다리면서 머릿속으로 암시했대요. '내가 원본 테이블을 숨겨 놓은 곳은 나밖에 모르는데, 내가 끌려가면 이걸 불라고 할 텐데. 안 불려면 잊어버려야 해' 그 리마인드만을 계속했다는 거예요. 안 잡혀간다는 사실을 몇 달 뒤 알게 됐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숨겨둔 곳이 생각이 안 나더라. 그래서 아직까지 못 찾았어요. 당시에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이 갖고 있었던 공포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나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얘기예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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