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에 관심이 쏠립니다. 기후와 에너지 정책을 한 바구니에 넣어 시너지를 높이려는 기후 거버넌스 재편 작업도 한창입니다. 이와 관련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재생에너지 도입 국가이죠. 지난 10여 년간 영국에서 펼쳐진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참관한 내용을 2차례 나눠 전하고자 합니다.
1. 영국에서 본 해상풍력…'비싼 만큼 더 설치해야 한다'는 역설
2. '재생 vs 원전' 정치적 진영주의에 갇힌 에너지 논쟁, 영국은 어땠나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강조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정부 때의 탈원전과는 선을 긋습니다. 새로 입각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물론이고 과거 탈원전 입장을 고수했던 김성환 환경부 장관 또한 원전 활용 필요성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정책 및 탄소중립 논의는 문재인, 윤석렬 정부 내내 '재생 대 원전'이란 대립 구도로 진행됐습니다. 논의가 정쟁화하면서, 생산적 논의의 진전보다는 진영간 정치공방의 소재로 휘말리기 급급했습니다.
우리보다 수 십 년 앞서 에너지 전환의 길을 걸어간 영국은 어땠을까요. 영국 역시 여전히 원전을 둘러싼 갈등과 우려가 남아있긴 하지만 큰 틀의 에너지 정책에서는 노동당 및 보수당 사이에 우리처럼 심각한 대립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물론 진영 간 에너지 정책 갈등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닙니다. 우리 만큼이나 혹은 우리보다 더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가장 큰 갈등이 불거진 건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입니다. 당시 방사능 낙진이 유럽을 건너 영국 북부와 웨일즈 지역에까지 떨어지면서 양고기 등에 대한 유통 제한 조치가 발동되는 등 원전 공포가 현실이 됐습니다. 보수당과 노동당을 막론하고 신규 원전을 꺼렸고, 1980년대 추진됐던 사이즈웰B 이후 영국은 20년 가까이 단 한 건의 신규 원전도 착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블레어 정부에서 시작된 에너지 정책 변화
그러다 1997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집권했고 같은 해 12월 교토의정서가 채택돼 온실가스 감축이 국제법적 의무로 등장했습니다. 핵 안전성이란 두려움이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온실가스라는 또다른 형태의 숙제를 떠안게 됩니다. 숙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영국 앞바다 북해에서 시추됐던 가스 생산량이 때마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천연가스 등 해외 수입 ㅇ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에너지 안보가 새 이슈로 빚어졌습니다. 이처럼 복잡해진 에너지 문제를 풀기 위해 2003년에 영국의 에너지 전환을 공식화한 첫 번째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보고서 <Our Energy Future – Creating a Low Carbon Economy>가 발표됩니다. 핵심은 에너지 정책을 화석연료 중심에서 저탄소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보고서는 원자력을 저탄소 옵션으로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합의와 기술적 해결책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즉 원전에 대해 약간 유보적인 스탠스를 취합니다. 지금 보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당시에 느꼈던 강조점은 그간 문제시됐던 원전에 대해 우호적인 접근으로 비쳤습니다.
3년 뒤 2006년 노동당 블레어 정부의 에너지 정책 보고서 <The Energy Challenge>가 발표됩니다. 여기 서문을 직접 쓴 블레어 총리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성 제고만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전력 부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며 "이를 위해서 해외로부터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확보하고 노후화된 원자력 발전소를 대체할 신규 원전 건설, 그리고 석탄화력 발전소를 더 깨끗하고 효율적 기술로 교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명시합니다. 이 보고서는 영국의 에너지 전환에 있어 큰 분기점으로 평가됩니다.
이 같은 흐름은 블레어의 후임인 고든 브라운 노동당 정부에서도 계승됐고, 2008년 브라운 정부에서 힝클리포인트C 원전의 후보지가 발표됩니다. 이 원전의 본격 사업화는 뒤이어 보수당 정부인 캐머런, 메이 정권에 의해서 중국 자본 등 민간투자 기반으로 추진됩니다.
보수당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브라운의 뒤를 이었던 보수 정권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어땠을까요? 사실 2010년 캐머런 총리 취임 후 지난해 노동당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무려 14년간 보수당이 장기 집권했습니다. 2016년 테레사 메이, 2019년 보리스 존슨, 2022년 리스 트러스에 이어 같은해 리시 수낙이 이어받은 뒤 지난해까지 보수당 정권이 계속됐죠. 그런데 이 보수당 집권 기간이 영국에서 에너지 전환이 가장 왕성하게 일어난 핵심적인 시기입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건 지난 2019년 보수당 메이 총리 시절 세계 최초로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목표(Net Zero)를 법제화했다는 겁니다. 좀 더 정확히는 2008년 제정된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의 개정안이 통과됐는데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거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재생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장치로 꼽히는 게 계약차액 보전제도라고 불리는 CfD(Contracts for Difference)라는 제도입니다. 2014년 보수당 정부 때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발전 단가를 장기 고정, 보장해줘 민간 투자 리스크를 줄이는 장치죠. 이 제도를 통해 해상풍력 등 대형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급증했다는 평가입니다. 현재 영국의 해상풍력 설비 용량은 15GW 수준으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는데요. 이 설비 가운데 2010년 이전에 깔린 건 1GW에 그친 반면 나머지 14GW는 모두가 보수 정권 하에서 이뤄진 사업들입니다.
지난해 출범한 스타머 노동당 정부 현재 진행중인 두 원전, 힝클리포인트 C와 사이즈웰 C에 대한 추진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앞선 힝클리포인트의 경우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회의적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결정된 원전 사업이 사이즈웰 C인데요. 2010년대 보수당 정부 때 처음 제안됐지만 아직 착공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140억 파운드, 우리 돈 26조 원을 영국 정부가 직접 지분 투자하기로 최근 결정했는데, 현 스타머 정부의 선택입니다. 힝클리포인트에선 없었던 정부 참여 모델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