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7월 31일 방송된 '지하실의 여인-응암동 괴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뮤지컬 배우 이현우, 최정원, 홍지민이 출연했습니다. (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응암동 괴담
때는 2002년 서울 은평구 응암동이야. 언제부터인가 동네사람들 사이에서 괴이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어.
"그 집 있잖아. 이번에 또 사람이 죽었다며?"
"아이고~ 이게 벌써 몇 명째야?"
"귀신에 씌웠다면 모를까.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계속 죽어나갈 리가 없잖아."
소문의 진원지는 오래된 재래시장 옆 골목에 있는 다세대 주택이야. 그 건물을 보여줄게.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건물이지? 1992년 완공한 이 건물은 면적이 약 30제곱미터, 열 평 정도 되는 3층짜리 다세대주택이야. 1층에는 매장이 있고, 2층과 3층은 일반 가정집이었어. 흉흉한 소문이 퍼지고 있는 문제의 장소는, 바로 이 건물의 지하실이야.
이 지하실은 평소 소규모 공장으로 세를 놓던 곳이라고 해. 인근 주민들 사이에 은밀하게 퍼져가던 이 지하실에 관한 소문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게 돼. 먼저 문제의 지하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줄게.


느낌이 어때? 지하실의 구조를 자세히 알려줄게.

실제 지하실 구조를 모형으로 만든 거야. 반지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지하실이야. 건물 외부의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12평 남짓한 공간이 나와. 외부로 나있는 작은 환기창을 제외하면 완전히 격리된 지하실이야. 지하실을 쓰던 세입자가 나간 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도통 나오질 않아. 그래서 이 지하실은 벌써 몇 개월째 비어있는 상태야.
2002년 9월 17일 오전. 문제의 지하실로 내려가는 두 사람이 있어. 건물주 장 씨와 인부 김 씨. 장 씨는 이번 기회에 지하실을 원룸으로 개조해서 세를 놓기로 결심했어.
"보일러 놔야 하니까 바닥부터 까고, 화장실은 이쪽에 만들면 되겠네"하며 장 씨가 가리킨 곳은 지하실로 내려오는 계단 밑 창고야. 딱 한 평 정도 되는 공간이거든. 좀 좁긴 해도 화장실로 쓰면 딱이다 싶었어. 그런데 창고 안쪽을 둘러보던 인부 김 씨가 고개를 갸웃해.
"아무래도 너무 좁은데요. 저 안쪽에 뭐가 툭 튀어나와 있어서 공간이 안 나올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장 씨가 창고 안쪽을 살펴보니, 계단 밑 공간에 뭔가가 보여. 창고 안쪽에 시멘트로 만든 구조물이 있는 거야. 폭 1미터, 높이는 60센티미터 정도 되는 구조물이 툭 튀어나와 있어. 이 구조물 때문에 안 그래도 좁은 공간이 더 비좁아진 거지.
"이상하네. 이거 원래 없었던 거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장 씨는 곧 그 것을 깨기로 결정을 내려. 인부 김 씨는 해머를 들고 와서 시멘트 블록을 깨기 시작해. 그런데 공간도 좁고 구조물이 워낙 단단해서 작업이 되질 않아. 결국 전기드릴을 가져와서 모서리부터 부수기 시작했어. 그렇게 작업을 이어가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건물주 장 씨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가벼운 망치로 때려도 부서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큰 해머로 때려도 끄떡도 안 해. 그래서 전기 기계 드릴 가지고 까기 시작했는데, 사람 머리통만큼 딱 뚫으니까 악취가 나오는 거야."
-건물주 장 씨, 최초 발견자
시멘트 구조물에 구멍이 뚫리자, 어디서 갑자기 파리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그러면서 이상한 냄새가 퍼져. 마치 간장을 졸인 것 같은 쿰쿰한 냄새가 나는 거야.
"어흐~ 이게 뭔 냄새야? 누가 여기에다 쓰레기를 묻어놨나?"
냄새가 고약해서 김 씨는 창고 앞에 선풍기를 갖다놓고 환기를 시켜가며 작업을 이어갔어. 근데 구멍이 점점 커질수록 냄새는 점점 심해져. 생전 처음 맡아보는 지독한 악취가 지하실을 가득 채웠어. 그리고 잠시 후, 시멘트 구조물 안에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내. 안쪽에 두꺼운 비닐에 싸인 검은 물체가 보여. 일단 꺼내 보자며 두 사람이 비닐 한쪽을 잡고 힘껏 잡아당기는 순간, 투두둑! 비닐이 찢어져.
"으허어억!"
찢어진 비닐 사이로 드러난 뭔가를 보고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어. 시멘트 구조물 안에서 사람의 발이 툭 튀어나온 거야.

▲ 지하실에서 발견된 시신
이 일로 조용하던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 서울 서부경찰서 베테랑 김정현 반장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김 반장이 지하실 계단에 들어서는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찔러. 계단 밑 시멘트에 묻혀있는 시신을 꺼내고 보니, 말이 안 나와. 김 반장은 형사 생활을 하면서 시신을 100구가 넘게 봐왔는데, 이런 시신은 정말 처음이었대. 시신의 상태가 어땠길래 그랬을까?
거멓게 변색된 시신은 바짝 말라 있는 상태야. 피부가 뼈에 달라붙은 채 그대로 남아있어. 보통 사후에는 급격히 부패가 시작되잖아. 하지만 시신을 비닐에 싼 다음 시멘트를 붓는 바람에 완전히 밀폐된 상태가 됐어. 그래서 부패하지 않고 미라가 돼버린 거야.

변사체가 입고 있던 옷이야. 긴 머리카락, 그리고 입고 있던 옷을 보니 여성이야. 스타킹을 신고 있고 셔츠와 치마 차림에 두꺼운 겨울 코트에 싸여 있었어. 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단서가 나왔지. 바로 사망 시기. 두꺼운 겨울 코트가 함께 발견됐으니까 겨울에 사망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감식반의 말로는 사망한 지 적어도 2년 이상 지난 것 같대. 그리고 치아 상태로 미루어보아 50대 중반 여성이라고 판단했어.
누군가 계단 밑에 그녀를 밀어놓고 벽돌을 쌓아 막은 뒤 모래와 시멘트를 부어 숨겼던 거야. 그리고는 꼼꼼하게 미장까지 해놓은 상태였어. 이건 누군가에 의해 일어난 살인사건이야.

"지난 17일 서울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5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지하실 계단 밑 콘크리트에 묻힌 채였습니다. 숨진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시신은 거의 썩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시신이 발견됐으니 이제 범인을 잡아야지.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수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시작돼. 첫 번째 현장 중심 수사. 현장에 남겨진 증거를 찾아 살인범의 정체를 밝히는 거지. 하지만 지하실에서는 시신 외에 아무런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어.
두 번째는 피해자 중심 수사. 피해자의 신원을 바탕으로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거야. 범인은 피해자가 발견되지 않도록 꼼꼼히 숨겨놨잖아? 이런 경우, 범인은 피해자와 관계된 인물일 가능성이 높아. 즉, 피해자의 신원을 밝혀내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는 뜻이야.
하지만 수사는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혀. 시신의 얼굴은 시멘트 무게에 눌려 일그러져 있었어.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던 거지. 게다가 아무런 소지품도 발견되지 않았어. 현장 인근에서 최근 몇 년간 실종된 사람을 찾아봐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어. 참 막막하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누군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제2의 신분증, 바로 지문이야.
지문이 똑같은 사람이 두 명 있을 확률, 얼마일 것 같아? 지문이 일치할 확률은 무려 640억 분의 1이래. 일란성 쌍둥이도 지문은 서로 다르다고 해. 그러니 신원을 파악하는 데에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인 거지. 게다가 시신은 부패하지 않고 미라 상태라고 했잖아. 지문을 검출하면 신원을 알아낼 수 있다는 얘기야.
김 반장은 지문감식을 위해 시신의 일부를 서울경찰청 과학수사센터로 보냈어. 의뢰를 받은 인물은 박희찬 팀장. 그는 변사체 지문 감식 분야,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로 꼽히는 분이야. 2004년 12월 남아시아를 휩쓴 인도양 쓰나미 참사, 혹시 기억나? 사망자가 무려 23만 명, 실종자도 5만 명이 넘었던, 그야말로 21세기 최악의 재난이었어. 그 지옥같은 현장에 박 팀장도 있었어. 익사자들의 신원 파악을 위한 지문감식 요원으로 파견된 거야.
익사체의 경우, 손가락이 물에 불어서 지문 인식이 안 된대. 모두가 신원확인에 애를 먹고 있을 때, 박 팀장을 비롯한 우리나라 과학수사팀이 지문 채취에 성공했어. 익사자의 지문을 채취하는 고온습열처리 방식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거야. FBI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이 그 기술을 배워갈 정도였다고 해. 이 일로 우리나라 지문 감식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게 돼.
하지만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박 팀장은 어깨가 무거웠다고 해. 사건 해결의 열쇠가 자신에게 달려있는 상황이잖아. 그러니 부담감이 엄청났겠지. 게다가 미라가 된 시신의 지문을 채취하는 건 처음이었대. 시신의 손가락은 속살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어. 쭈글쭈글 말라붙은 표피가 뼈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야.

"제가 다른 지문은 다 유형별로 다 봤지만은 미라 형태로 된 거는 처음이에요. 딱딱하게 굳은 상태기 때문에 지문을 찍지 못하지 않습니까?"
-박희찬, 당시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지문과
과연 이 상태로 지문을 검출해낼 수 있을까? 일단 표피는 남아있으니까 어떻게든 해보자 싶었어. 그때부터 박 팀장은 지문을 되살리는 일에 매달려. '당신이 누군지 기필코 찾아내겠다, 그래서 당신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문 채취에 집중했다고 해.
▲ 꼬리에 꼬리를 문 죽음들
박 팀장이 작업에 열중하는 동안, 김 반장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어. 경찰은 누구를 용의선상에 올릴 것 같아? 시신이 발견된 지하실은 소규모 공장으로 쓰였다고 했잖아. 범인은 계단 밑에 시신을 묻고 시멘트 구조물을 만들었어. 범인은 지하실의 구조를 잘 아는 사람, 또 지하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일 거야. 이런 일이 가능한 사람, 누가 있을까?
우선 건물주 장 씨. 그는 세를 내주고 나서는 지하실에 내려온 적이 없었다고 해. 이번에 리모델링을 하려고 오랜만에 지하실에 내려왔다는 거야. 하지만 피해자가 사망한 지는 최소 2년 이상 지난 걸로 추정돼. 그러니 장 씨는 자연스럽게 용의선상에서 배제됐어. 그럼 또 누가 있을까?
범인은 지하실을 사용했던 인물일 가능성이 크겠지.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보다는 공장을 운영했던 사장일 확률이 높아.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건물은 92년에 처음 지어졌어. 지난 10년간 지하실을 임차한 세입자는 몇 명일까? 조사 결과, 총 네 명의 세입자가 있었어. 과연 이 네 명 중에 범인이 있을까? 이제 그들을 만나볼 차례야.

지난 10년간 지하실을 썼던 세입자 명단이야. 경찰은 첫 번째 세입자 정 씨를 수소문했어. 하지만 그를 만나볼 순 없었어. 그는 이미 사망한 후였거든. 지하실에서 양복 재단공장을 운영하던 정 씨는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돼. 그는 이 일로 심한 우울증에 걸렸대. 공장을 그만둔 정 씨는 요양을 위해 대전의 기도원으로 내려갔대. 하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
경찰은 두 번째 세입자인 박 씨를 찾아가. 그는 첫 번째 세입자 정 씨가 운영하던 양복 재단 공장의 재단사였어. 정 씨가 그만두는 바람에 대신 공장 운영을 맡게 된 거지. 하지만 박 씨의 행방을 찾던 경찰은 또다시 허탕을 치게 돼. 정 씨도 이미 사망한 후였어. 그는 암으로 사망했대.
경찰은 허탈한 마음으로 세 번째 세입자, 김 씨를 찾아가. 다행히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어. 김 씨는 털실공장을 그만두고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었대. 김 씨에게서 단서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니. 아무런 범죄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어. 공장을 운영하다가 경기가 안 좋아서 접고 나왔다는 거야. 경찰은 아무런 성과 없이 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대.
이제 남은 건 한 사람. 마지막 세입자 최 씨를 찾게 된 경찰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돼. 최 씨가 운영하던 스웨터 공장에는 총 9명의 직원이 있었거든. 그런데 2000년 직원 한 명이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 교통사고를 당한 거야. 이 일은 시작에 불과했어. 이듬해인 2001년, 두 명의 직원이 차례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한 명은 간암, 다른 한 명은 폐암이었대. 급기야 2002년에는 또 다른 직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 사인은 당뇨병이었대. 9명의 직원 중 네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야.
지난 10년간 이 지하실에 있었던 사람 중 6명이 죽음을 맞이했어. 그리고 또 한 명, 계단 밑에서 발견된 시신까지 포함하면 모두 7명이 사망한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온 죽음, 그리고 뒤늦게 발견된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 혹시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이상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 마지막 세입자 최 씨는 경찰에게 믿기 힘든 이야기를 꺼내.

"거기 있을 때 한 44kg까지 빠졌어요. 걸음을 못 걸을 정도가 됐으니까. 지나가려고 해도 그 옆을 못 가요. 저도 망가져서 나왔죠."
-마지막 세입자 최 씨
갑작스럽게 횡사한 네 명의 직원 외에 세입자 최 씨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거야. 그 지하실에 있는 동안 매일 같이 이상한 꿈에 시달렸다고 해. 이유 없이 몸이 아프더니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공장을 접고 나왔을 때에는 체중이 30kg이 빠진 상태였어. 더 이상한 일은 공장을 나온 뒤로 거짓말처럼 건강이 회복됐다고 해.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세대 주택 지하실에서 일어난 이 섬뜩한 사건은 인근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어.
"아니 한두 명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죄다 죽어나갈 수가 있어?"
"그러게 말야. 이거 동네 무서워서 어디 살겠냐고."
"이번에 여자 시체까지 나왔다며? 이게 다 그 귀신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이 다세대 주택이 있는 골목은 가로등이 거의 없었대. 밤에 지나가면 어두컴컴해서 으스스한 느낌까지 들었다고 해. 급기야 건물 주변에서 귀신을 봤다는 목격담까지 떠돌았어. 당시 신문에 실린 기사가 있어.
"사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가뜩이나 흉흉하던 동네에 그 집 주변에서 여자 귀신을 봤다는 소문이 나오기 시작한 것. 방송국이나 신문사로 제보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한 일간지에서는 무속인의 입을 빌어 '여자 변사체의 원혼이 세입자들에게 달라붙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연쇄 사망은 바로 죽은 여인의 원혼이 원수를 갚아 달라며 그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속인들은 이 터에서 23세 가량의 젊은 나이로 죽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을 것이며 진혼제를 올려 원혼들을 달래야 된다고 하기도 했다."
-당시 신문 기사 中
온갖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덧붙여지면서 흉흉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 겁에 질린 동네 주민들은 해가 지면 그 근처를 지나기를 꺼렸다고 해.

"얼마 전 서울의 한 다세대 주택 지하실에서 숨진 지 몇 년이 지난 5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가뜩이나 오싹한 사건에 괴담까지 나돌면서 주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사건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92년부터 지하에 세들어 살던 세입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세입자 한 명이 자살한 것을 포함해 모두 6명이 사고나 병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신이 발견된 바로 그 지하실에서 일을 했다는 것. 괴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습니다. 아예 이사를 가겠다는 사람까지 나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언론에까지 보도되자 지하실에서 일어난 섬뜩한 사건은 널리 알려지게 돼.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어. '응암동 괴담'이라고.
▲ 대한민국 흉가 괴담
'응암동 괴담' 들어봤어? 예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버려진 집들이 꽤 있었어. 그중 일부는 괴이한 소문과 함께 '흉가'라고 불리곤 했지. 응암동 괴담이 떠돌기 이전에도 서울 곳곳에 '흉가'라고 불리는 집들이 있었어. 그 중에서도 7,80년대 서울 전농동에 아주 유명했던 흉가가 있었거든. 70년대 초반, 준공허가를 받지 못해 방치된 건물에서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고 해.
"거기 빈 건물에서 귀신이 나온다며?"
"거기서 하룻밤만 버티면 공짜로 살게 해준다던데?"
밤이면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담력 체험을 하려고 들어간 학생이 귀신을 보고 기절했다는 소문까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어. 흉가에 대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해당 지자체와 경찰서에서 나섰어. 그때 이야기가 실린 기사가 있어.

'전농동 유령의 집에 이색 경고문 등장'
"유령의 집으로 알려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슬라브 건물에 최근 이색적인 경고문이 나붙어 지나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경고문은 '귀신이 나온다는 헛소문을 믿고 찾아오신 분이 있다면 여러분 자신이 딱한 분이며 그러한 행동이 이웃 주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다."
-당시 신문 보도 中
이런 흉가 괴담은 21세기에 접어든 후에도 계속 생겨났어.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흉가괴담이 있지.

곤지암에 있는 병원, 제천의 식당 건물, 그리고 영덕에 있는 횟집까지. 이 세 곳은 '대한민국 3대 흉가'라고 불리며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게 돼. 그중 곤지암에 있던 병원은 2012년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싹한 장소'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어.
이곳에는 각기 소름 끼치는 괴담들이 떠돌아. '거기 살던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 건물에서 여성의 귀신을 목격했다'는 등, 해마다 여름이 되면 담력 훈련을 한다며 수십 명씩 이곳을 찾아와. 한 방송에서는 무속인을 데리고 방문하기도 했어. 심지어 어떤 여행사는 흉가 체험을 여행상품으로 만드는 일까지 있었다고 해. 그렇다면 이곳에 관한 소문들, 과연 사실일까?
이들 흉가에 관한 괴담들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아. 하지만 '응암동 괴담'은 실제 사건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달랐어.
▲ 피해자의 정체
다시 응암동 지하실로 돌아가 볼게. 경찰은 이전 지하실 세입자들을 만나봤지만 그 중에 의심이 가는 사람은 없었어. 게다가 괴이한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가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고 해.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제가 2001년도에 초임 검사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이제 살인사건으로는 처음 맡은 사건이었죠. 미라 상태로 있다가 발견된 시신이어서 그때 당시에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가 되고. 살짝 긴장을 했었죠."
-우남준,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우 검사에게는 처음 맡게 된 살인사건이었어. 게다가 워낙 이목이 집중됐던 사건이니까 더 부담이 됐겠지.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한 채 멈춰있던 수사는 사건 발생 3일 후, 급물살을 타게 돼. 왜? 과학수사대 박희찬 팀장이 피해자의 지문 채취에 성공한 거야.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해. 박 팀장은 바짝 말라버린 손가락 표피를 펴기 위해 고심했어. 먼저 손가락에 끝부분 피부를 얇게 벗겨내서 판 위에 핀으로 고정했대. 말라서 쪼그라든 부분을 핀셋으로 다림질하 듯 문질러서 살살 펴나간 거야. 자칫하면 지문을 이루는 융선이 훼손될 수도 있어. 심혈을 기울여 섬세하게 작업해야만 한대. 그렇게 펴낸 피부는 다시 쪼그라들지 않게 핀으로 고정해.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좀 불렸다가 해서 뭐 헤어드라이어로 말리고 뭐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서 그렇게 해서 지문을 확보했다고 들었습니다.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사실 그거 밖에 없으니까요."
-우남준, 당시 사건 담당 검사
3일간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마침내 지문의 70% 이상을 살려냈다고 해. 이제는 채취한 지문을 대조하는 작업이 시작돼. 이 작업에 수많은 인력이 동원됐어. 그리고 마침내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는 데 성공해. 그렇게 밝혀낸 피해자는 55세 미혼여성으로 이름은 이정혜 씨(가명)였어.
종교 문제로 인해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던 정혜 씨는 오래전 실종된 상태야. 수사팀은 그녀가 살던 집으로 달려갔어. 그녀의 집을 조사한 수사팀은 한가지 단서를 발견해. 지인들의 연락처가 적힌 전화번호부. 거기 적힌 이름 중 하나에 눈길이 가. 바로 이정선(가명). 그는 이정혜 씨와 어떤 관계일까? 같은 돌림자를 쓰는 자매가 아닐까? 경찰은 바로 확인해보기로 해. 이름 옆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하자 어떤 여인이 전화를 받아.
"이정선 씨? 혹시 이정혜 씨를 아십니까?"
"네? 저희 언니인데요?"
정선 씨는 피해자의 동생이었어. 지방에 살던 정선 씨는 바로 서울로 올라왔어. 몇 해 전부터 소식이 끊긴 언니를 애타게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고 해. 경찰은 피해자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그녀를 데려갔어. 신원 확인에 나선 정선 씨는, 피해자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는 이렇게 말해.
"네. 우리 언니가 맞아요."
어떻게 언니라는 걸 알아봤을까? 정선 씨는 시신에 남아있는 눈썹 문신을 보고 언니라는 걸 알았대. 당시 눈썹 문신이 유행이었는데, 언니가 눈썹 문신을 했던 걸 알아본 거야. 애타게 찾던 언니를 안치실에서 마주한 동생의 심정, 어땠을까?
▲ 살인범을 추적하라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게 돼. 정선 씨에 의하면, 피해자가 실종된 것은 5년 전인 1997년 5월부터였대. 수사팀은 그 말을 듣고 좀 의아했대. 시신이 발견됐을 때 겨울 코트에 싸여있었다고 했던 거, 기억나? 그래서 겨울에 사망했을 거라고 추정했잖아. 하지만 동생의 진술에 의하면 실종된 건 5월이었다고 해. 점점 더 미궁 속에 빠지는 느낌이지? 하지만 동생 정선 씨를 통해 결정적인 단서를 얻었어.
"그때 언니가 빌려준 돈을 받으려 누굴 만나러 간다고 했어요."
당시 언니가 알고 지내던 남자가 사업을 한다고 하자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빌려줬다는 거야.

"관련된 어떤 사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이제 알게 돼서 그때 빌려준 게 한 1,200만원 정도 됐었고, 이제 그거 받으러 갔다가 실종이 됐었으니까요."
-우남준, 당시 사건 담당 검사
김정현 반장은 그 얘길 듣는 순간, 느낌이 딱 왔어. '아! 이놈이 범인이구나!'라고. 당장 그 남자 이름이 뭔지 아냐고 물었어. 그러자 정선 씨는 뭔가를 꺼내 보여줘. 바로 이거야.

돈을 빌렸다는 차용증이야. 이 차용증은 언니가 사라진 후, 동생이 직접 남자를 찾아가서 받아온 거라고 해.
"피해자의 여동생 되는 사람이 차용증을 가지고 왔었어요. 차용증이 이제 그 피해자가 생전에 받아놓은 차용증이 아니고, 나중에 그 피해자 여동생이 피해자를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결국 누구를 만나러 간다 하고 이제 실종이 됐으니까 그분을 찾아가서 이제 따지는 과정에서 '내가 돈을 줄 게 있다' 그러면서 차용증을 써준 게 있었어요."
-우남준, 당시 사건 담당 검사
그 남자의 이름이 뭐라고 적혀있지? 주상철(가명).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하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몰라. 일단 이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어.
사실 동생 정선 씨의 진술에 중요한 단서가 하나 더 있었어. 바로 언니가 실종된 시점이야. 언니가 언제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했지? 97년 5월이야. 그때 사건이 일어난 지하실을 쓰던 세입자는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세 번째 세입자 김 씨야. 경찰은 다시 한번 김 씨를 찾아가서 피해자에 대해 물었어.
"이정혜 씨라고 혹시 아시나요?"
"아뇨. 모르는 사람이에요."
김 씨는 피해자를 모른다고 했어. 경찰은 피해자가 실종된 시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어. 그러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와.
"97년부터 경기가 워낙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공장도 멈춰 있었어요. 그때 마침 누가 지하실을 쓰겠다고 해서 빌려준 일이 있어요."
땡처리라고 하지? 여성의류를 무더기로 사들여서 판매하던 지인이 있었는데, 그가 "옷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다"면서 세입자 김 씨에게 부탁을 했다고 해. 피해자가 실종됐던 97년 5월이면 지하실 공장을 그 사람에게 빌려준 시기라는 거야. 경찰은 당시 지하실 공장을 사용했던 지인의 이름이 뭔지 물었어.
"그 남자 이름요? 주상철인데요."
피해자가 실종되기 전 만나러 나갔던 남자, 그리고 피해자가 연락이 끊겼던 그 시기에 지하실 공장을 빌려 썼다는 남자. 두 사람의 이름이 일치해.

"그때 당시에 임차인이었던 분을 만나서 확인해보니까 이런 피의자한테 빌려줬다는 얘기도 나왔고. 차용증에 나온 인물하고 그 다음에 그 김 모 씨가 빌려줬다는 그 부분은 이제 인적사항이 맞으니까. 그 두 가지 루트를 통해서 사람이 이제 특정이 됐고."
-우남준,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수사팀은 유력한 용의자 주상철의 행방을 수소문했어.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 주 씨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거든.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등록된 주소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게 확인되는 경우, 주민등록이 말소가 된다고 해. 주로 가출이나 행방불명의 경우, 그리고 주소지를 허위로 신고한 경우가 해당이 돼. 그럼 주 씨도 실종된 건 아닐까?
수사는 다시 한번 벽에 부딪혔어. 이제부터는 발로 뛰어야 해. 수사팀은 주상철의 행방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어.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어. 주상철의 행방을 아는 사람을 만난 거야. 그런데 그가 있다는 장소가 아주 예상 밖이야.
"주상철이요? 모래내 쪽에 신당에 있다고 하던데요?"
모래내에 무속인이 운영하는 신당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한곳에 있다는 거야. 게다가 최근 내림굿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돼. 피해자가 사라진 지 5년이 지났잖아. 그 사이, 주 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었어.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런 의문을 풀려면 일단 그를 잡아야겠지.
수사팀은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결정해. 만약 낌새를 채고 달아나면 다시 찾는 건 어려울 거야. 형사들은 주상철의 주민등록 사진을 들고 모래내 신당 근처에서 잠복하기 시작했어. 하루, 이틀...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주 씨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 제보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주 씨가 눈치를 챈 걸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김 반장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어. 주상철이 있다는 신당으로 들이닥친 거야.
"경찰입니다. 주상철 씨, 여기 있죠?"
그러자 신당에 있던 무속인이 이런 말을 해.
"며칠 전까지는 여기 있었어요. 근데 산에 기도하러 간다고 나갔어요."
김 반장은 형사들과 함께 주상철이 있다는 파주 감악산으로 향해. 감악산은 무속인들 사이에서 영산으로 불리는 곳이야. 전국의 무속인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굿을 한다고 해. 주 씨도 이곳 감악산의 한 굿당에 있어. 김 반장과 형사들은 주상철이 있다는 굿당에 들어섰어.
굿당 안쪽에서 절을 하고 있는 50대 남자가 보여. 주민등록 사진을 대조해봤더니, 맞아. 주 씨야. 형사들이 다가가자 주 씨가 절하는 걸 멈췄어.
"주상철 씨? 이정혜 살인혐의로 체포합니다."
주 씨는 별다른 저항 없이 체포에 응했다고 해. 지하실에서 시신이 발견된 지 보름 만에 유력한 용의자를 검거한 거야. 그럼 주상철은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을까?

"저는 강력 전담을 하다보니까 뭐 여러 가지 흉악한 사건들을 좀 해보는데, 조사를 할 때 살기가 느껴지는 피의자들이 있고 그냥 평범한데 우발적으로 한 분들도 있고 한데. 이분은 약간 좀 순한 느낌? 살기나 이런 게 느껴지는 사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수사받는 태도도 성실하게 다 받았고. 그냥 굉장히 뭐 후련하게 자기가 뭐 잘못했다는 얘기는 다 하고.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그걸 숨기려하거나 이런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잡히기를 잘했다 이런 내용의 진술까지 했던 사건이어서 기억에 좀 많이 남죠."
-우남준, 당시 사건 담당 검사
주 씨는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어. 오히려 잡히고 나니 후련하다는 말까지 해. 이럴 거면서 왜 피해자를 살해했던 걸까? 지금부터 그가 진술한 이야기를 들려줄게.
▲ 지하실 살인 사건의 전말
1997년 5월 27일, 주 씨는 응암동에 있는 극장 앞에서 피해자를 만났다고 해. 그녀에게 빌린 1,200만원을 갚지 못해 독촉을 받는 상황이었어. 그는 피해자와 함께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고는 아무도 없는 공장 지하실로 데려갔어. 믹스커피를 한 잔 타주고는 변제 기일을 늦춰달라고 부탁했대.
하지만 이사를 앞두고 있던 피해자는 무조건 돈을 갚으라고 했대. 결국 두 사람 사이에 몸싸움까지 벌어지게 돼. 주 씨는 피해자가 멱살을 잡고 할퀴자 순간 화가 치솟았대. 그때 공교롭게도 주 씨의 눈에 들어온 게 있었대. 이 물건이었어.

돌을 쪼개거나 부술 때 쓰는 쇠정이야. 주 씨는 쇠정을 들고 피해자의 머리를 내리 찍었어. 단 한 번의 가격으로 피해자는 사망했다고 해. 주 씨는 그제서야 덜컥 겁이 났대. 자신이 판매하던 여성용 겨울 코트로 시신을 쌌어. 아까 들었던 의문이 풀리지? 이 겨울 코트 때문에 피해자의 사망시기를 추정하는 데 혼선을 빚었잖아. 피해자의 사망시기는 실종된 5월이 맞았던 거야
주 씨는 김장용 비닐로 시신을 감싸서 계단 밑 틈새에 밀어 넣었어. 그리고 벽돌을 쌓아서 막았다고 해. 인근 교회 공사현장에서 모래와 시멘트를 훔쳐온 그는 시신 위에 부었어. 가로 1미터, 세로 40센티미터, 높이 60센티미터. 한 사람을 숨기기엔 너무 작은 공간이지? 그 공간에 끔찍한 비밀을 묻어버린 채 살아왔던 거야.
그런데 그는 왜 무속인이 된 걸까? 진술을 마친 주 씨는 우 검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꺼내.

"결국은 자기가 이제 그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니까, (피해자가) 꿈에서 자꾸 나타나면 보통 나타나는 게 그 사체를 이렇게 은닉해 놓은 거기서 뭐 튀어나와서 막 이렇게 하는 그런 느낌들이 있잖아요. 계속 꿈에도 나타나고 해서 무섭고 두렵고 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서 계속 뭐 굿도 하고 그러면서 이제 무속인하고 같이 살면서 굿당에서 계속 기도하고 그렇게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그렇게 죄책감만 갖고 하루하루를 지냈던 것 같아요."
-우남준, 당시 사건 담당 검사
그는 지난 5년간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렸대. 어두운 계단 밑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피해자가 나타난다고 해. 그를 노려보면서 원망과 저주의 말을 쏟아낸다는 거야. 건장한 체격이었다는 주 씨는 검거될 당시에는 30kg 가까이 빠진 상태였다고 해.
"자기 말로는 그러더라고요. 밤마다 악몽을 꿔서 몸무게가 이렇게 빠졌다고. 저희한테 왔을 때는 굉장히 좀 약간 좀 마른 형태였는데, 굉장히 몸집이 건장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우남준, 당시 담당 검사
그날의 범행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하지만 절대 속일 수 없는 사람이 있지. 바로 주 씨 본인.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는 끊임없이 고통받아왔던 거야.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무속에 의지했던 것 같아. 이제 그가 왜 후련하다고 했는지 알겠지?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어. 주 씨가 범행에 사용한 쇠정 말야. 경찰이 범행에 쓰인 쇠정을 찾았는데, 5년이 지나 시신이 발견될 당시까지 그 지하실에 그대로 있었대.

"네. 그대로 있었어요. 거기에 리모델링을 하러 간 상태에서 발견이 됐고 거기서 쇠정이 나와서 리모델링 하는 분들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들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계속 5년 전부터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우남준, 당시 담당 검사
그 후 지하실에는 네 번째 세입자 최 씨와 직원들이 들어왔어. 매일 오르내리던 계단 밑에 시신을 두고 살인의 도구가 있는 곳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내왔던 거야. 직원들의 연속된 죽음, 그리고 사장 최 씨가 악몽에 시달리며 쇠약해졌던 이유, 혹시 이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경찰은 5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주 씨를 검찰에 송치해.

"나도 그때 당시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멍해가지고요. 도망갈라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돈을 달라고 자꾸, 책임을 지고 돈을 달라고 그래서. 제가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막 욕을 하고 그래서 나중에 우발적으로 그렇게 된 거 같습니다."
-범인 주 씨
그런데 말야. 주 씨가 진술한 내용, 모두 사실일까?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후, 피해자의 부검 결과가 나왔어. 사망원인이 어떻게 나왔을까.
"해부 소견만으로 단정키 어려우나, 두부에 가해진 외력에 의해 사망을 하였거나 혹은 완전히 사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소결핍에 의한 질식의 기전 등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배제키 어려움."
-국과수 부검 결과
국과수에서 밝힌 사망원인은 두 가지였어. 두개골 골절로 인한 사망, 그리고 질식사의 가능성. 주 씨는 쇠정으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했다고 했잖아. 하지만 부검 결과 살아있는 채로 시멘트에 덮여 질식사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야.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단정할 수 없어. 시신의 상태 때문에 정확히 밝혀내기는 어려웠다고 해.
얼마 후, 주 씨에 대한 재판이 시작돼. 그동안 홀로 죄책감에 시달려 왔지만 이제는 세상의 심판을 받을 차례야. 우 검사는 그를 강도살인, 사체은닉 혐의로 기소했어. 채무를 면탈한 목적으로 살해한 것은 강도살인에 해당하다고 본 거야. 일반 살인의 경우, 대개 5년에서 10년의 형이 내려진다고 해. 하지만 강도살인의 경우,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게 돼. 무기징역 또는 사형. 우 검사는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해.
하지만 피고인 주 씨는 강도살인 혐의를 적극 부인했어. 자신은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상해치사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상해치사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어. 만약 상해치사가 인정된다면 훨씬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되는 거야. 과연 1심 판결, 어떻게 나왔을까?
"주문. 피고인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한 게 아니라고 해도 쇠정으로 머리를 찍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미필적 고의를 인정한 거지.
"우발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인의 고의가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거든요? 실제로 살해의 고의가 있다고 본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25cm 나 되는 쇠정을 들고 이렇게 내리찍어서 사람을 사망하게 했기 때문에 머리를 이렇게 내리찍었다면 충분히 살해의 고의를 가지고 그렇게 했을 거라고 이제 보여지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사망을 했고요."
-우남준, 당시 사건 담당 검사
강도살인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지만 한 단계 감경해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고 해. 피고인은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어. 이번에는 강도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어. 채무를 면탈하려고 죽인 게 아니라는 거야. 만약 강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죄가 인정된다면 형량을 낮출 수가 있는 거지. 과연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졌을까?
"범행 당시에는 피해자를 살해함으로써 채무를 면탈하려는 강도살인의 범의가 순간적으로나마 발생하였다고 보여지고 오히려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므로 원심이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피고인에게 범행 당시 강도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고 달리 피고인의 주장과 같은 사실 오인이나 강도살인의 고의에 관한 법리 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항소심 판결문
항소심 법정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어. 피고인의 강도살인 혐의를 입증한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다고 해. 그 증거가 뭐였을까? 피해자의 여동생이 주 씨에게서 받았던 차용증.
"수첩에다가 이렇게 차용증 써서 가지고 왔더라고요. 그게 강도 살인으로 의율하는 데 아주 중요한 증거가 됐죠."
-우남준, 당시 사건 담당 검사
그후, 피고인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결국 이대로 형이 확정돼.
▲ 응암동 괴담, 그 후
으스스한 괴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이 사건에는 안타까운 피해자들이 많았지. 가족을 잃은 유족들, 평온한 일상 대신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주민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사건을 마주하고 마음 고생한 건물주 장 씨. 장 씨는 경찰이 수사를 하는 동안 지하실에서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고 해.

"그동안 쓸쓸하게 쪼그리고 굶은 생각에 안타까워서 된장국 푸근히 끓이고 밥 한 바가지 해서 과일 놓고, 포, 그런거 차려놓고. 억울한 것을 내가 발견해줬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범인 빨리 잡게 해주고 당신도 가족 찾아서 영혼이나마 편안하게 쉬라고... 편히 잠들라고..."
-건물주 장 씨
그는 지하실을 깨끗하게 리모델링하겠다고 밝혔어. 누구든 입주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1년 동안 무료로 방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어. 하지만 그 지하실에 살겠다는 세입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 사건이 일어나고 3년 후, 장 씨는 다세대 주택을 팔고 동네를 떠난 걸로 전해져. 2017년 이 건물은 재건축으로 헐리고 그 자리에는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해.
이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응암동 암매장 사건은 마침표를 찍게 돼. 하지만 응암동 괴담은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괴담들이 떠돌고 있잖아. 아까 잠깐 소개했던 대한민국 3대 흉가. 그곳에 관한 괴담들은 사실일까?
흉가로 알려진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수소문해봤거든. 그리고 그중 한 분과 연락이 닿았어.


전 거주자 : 저는 제천 OO식당, 2012년도 봄부터 수리를, 리모델링을 하고 2015년 겨울에 이사를 나왔습니다.
피디 : 그럼 3년 거주를 하셨네요.
전 거주자 : 네. 만 3년. 계약을 하고 들어가니까 거기가 유명한 곳이더라고요. 오랫동안 흉가로 쓰고 있었고 사람이 못 살고 귀신이 나온다고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고. 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진짜. 차 밖으로 다 이러고 쳐다볼 정도였으니까. 다 나와서. 밤에는 또 학생들이 거기가 예전에 막 흉가 체험들을 하고 막 이렇게 많이들 하셨나봐요. 오면 이제 불 켜고 내가 내려가보면 귀신인 줄 알고 막 도망가다가 넘어지고.

피디 : 건물에 대한 소문 뿐 아니라 이제 선생님에 대한 소문도 좀 있었나요?

전 거주자 : 많았죠. 뭐 어디 뭐 신문에 나왔대요. '여기서 끝내 못 참고 목매달아 죽었다', '남편도 그러고 죽었고 다 죽었다' 저 죽은 사람이에요.(웃음) 그게 그냥 말이 자꾸 돌다보니까 점점점점 더 와전돼서, 막 번지다보니까... 귀신은 사람 해치지 않아요. 사람이니까 머리를 많이 쓰고 다른 생각도 하니까 뭐 모든 일이 벌어지다 보니까 범죄도 나고 하는데... 사람이 문제죠.
남들이 흉가라고 부르는 곳이었지만 저 분은 그곳에서 둘째도 낳고 아주 잘 지냈대. 하지만 사는 동안에도 황당한 소문들이 계속 생겨났대. 결국 자녀들 교육환경 때문에 겸사겸사 이사했다고 해.
이곳뿐 아니라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야. 확인 결과, 모두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했어. 재미로, 혹은 불안해서. 너도나도 이야기를 더하다 보니 무시무시한 괴담이 탄생한 거지. 결국 괴담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