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은 여러가지 요인 때문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미간 외교 협의에 정통한 이 고위 관계자는 이날 워싱턴의 주미대사관에서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변화의 요인으로 "국제정세 변화, 기술적 변화, 중국의 전략적 부상" 등을 거론했습니다.
6ㆍ25전쟁 정전에 이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주한미군은 주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고 대비하는 역할을 해온 상황에서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가능성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됩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모색중인 가운데, 미측은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타이완해협 유사시 등으로 넓히는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중국 견제를 위해 주한미군 일부를 괌 등으로 재배치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정부 고위 관계자의 주한미군 역할 변화 언급은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역할 확대 추진 가능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위 관계자는 "동맹국이 다 완벽하게 의견일치를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뒤 자신의 발언이 "미국이 왜 그렇게 하는지 (배경, 동기, 의도 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취지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됐는지에 대해 "거기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고위 관계자는 또 '한미동맹 현대화' 논의에 대해 "계속 협상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어려운 과제여서가 아니라 관세 (협상) 때문에 그런 것들은 뒤로 늦춰졌던 것이라서 여러 이슈들을 갖고 좋은 방향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에게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 국방비 지출 약속을 받은 미국이 한국에도 유사한 요구를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며 "국방비와 관련해 여러가지 계산법(국방지출로 계산하는 범위를 넓게 잡는다는 취지)을 달리하는 것을 포함해서 논의해오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이야기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한미간에 추진중인 조선협력과 관련한 함정 수리 비용 등도 넓은 의미의 국방비 지출에 포함할 수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고위 관계자는 또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이라면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는 입장을 (미측에) 전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이재명 정부 출범후 주미대사를 포함해 윤석열 정부때 임명됐던 주요국 주재 대사들을 귀임시키면서 다수의 대사 자리가 공석인 상황에 대해 "한국은 계엄으로 인해 비상 상황이 수 개월간 지속됐고, 지금까지 여진이 남아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공관장이 공석인 공관이 있는 것도 현실이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것을 빨리 정상화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