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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끝까지 전쟁 기록한 우크라이나 작가…'여성과 전쟁'

생의 끝까지 전쟁 기록한 우크라이나 작가…'여성과 전쟁'
▲ 소설가 빅토리아 아멜리나의 생전 모습

2022년 2월 24일 이른 아침, 우크라이나 소설가 빅토리아 아멜리나는 열 살짜리 아들과 이집트 룩소르에서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몸을 싣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아멜리나는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려 하지만, 택시가 사막을 달리는 탓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초조한 마음에 계속 휴대전화를 보던 아멜리아의 눈에 가까스로 화면에 뜬 짧은 뉴스가 들어왔습니다.

"키이우에서 전쟁 발발."

아멜리아는 숨이 턱 막히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를 누비면서 전쟁범죄를 조사하고 전쟁의 참상을 기록했던 빅토리아 아멜리나(1986∼2023)의 유작 '여성과 전쟁'이 번역 출간됐습니다.

아멜리나는 조지프 콘래드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시인, 에세이스트, 동화 작가였습니다.

그런 아멜리나는 러시아가 전면전을 일으키자 소설 집필 대신 전쟁범죄를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결심합니다.

이유는 '피해자와 영웅뿐 아니라 살인자도 이름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쟁범죄 보고서를 쓰기 위해 아멜리나는 비정부기구인 '트루스하운드'에서 훈련받은 뒤 전쟁 피해자들을 만나는데, 이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것이 '여성과 전쟁'의 원고입니다.

다만 이 책은 아멜리나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 미완인 상태로 작가 사후 출간됐습니다.

'여성과 전쟁' 표지 이미지 (사진=파초 제공, 연합뉴스)

아멜리나는 2023년 6월 27일 우크라이나 크라마토르스크의 한 식당에 있다가 러시아 미사일이 덮쳐 중상을 입고 나흘 만인 7월 1일 생을 마감했습니다.

편집자에 따르면 아멜리나가 남긴 원고는 당초 예상한 분량의 60%가량이며 원고 대부분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작가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게 된 편집자들은 기존 원고를 최대한 살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완의 부분은 그대로 남겨둔 채 책을 펴냈습니다.

책은 두 갈래의 이야기가 서로 번갈아 펼쳐집니다.

한 갈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부터 아멜리나가 경험한 일을 상세히 서술했고, 다른 갈래는 각자의 방식으로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활약을 소개했습니다.

책이 소개하는 여성 영웅들은 다양합니다.

유명 인권변호사였으나 군에 자원입대해 드론 조종사가 된 예우헤니아 자크레우스카,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한 러시아군에 납치돼 고문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고도 2022년 예순의 나이로 의무부대에 입대한 이리나 도우한, 전쟁범죄 조사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뢰를 제거하는 일에 뛰어든 '카사노바'(활동명) 등등.

아멜리나의 행보를 기록한 부분은 다소 혼란스럽게 서술돼 있지만, 전쟁에서 느낀 긴박감이 생생하게 담겼습니다.

이집트 여행에서 귀국 항공편이 취소되자 아멜리나는 체코와 폴란드를 거쳐 어렵사리 귀국하고 전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섭니다.

특히 뉴스에서 다루지 않는 평범한 이들이 전쟁으로 인해 어떤 고통을 겪는지, 우크라이나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용기를 내 전쟁에 맞서는지 등이 기록됐습니다.

책의 종반부에 아멜리나는 마치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나는 더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글에서 묘사하는 모든 여성이 내 장례식에 모이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모두 정의를 위해 싸우느라 바빠서 그런 경우는 거의 유일한 기회임이 틀림없다"고 썼습니다.

(사진=파초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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