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계 삼겹살
여름 휴가철 단골 메뉴이자, 한국인이 사랑하는 삼겹살이 비계 논란으로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부담 없는 외식 메뉴로 통하던 시절이 옛이야기가 되고, 경제 불황이 이어지면서 고물가 속 '비계 삼겹살'에 대중의 분노가 모이는 모양새입니다.
서울 지역 음식점 삼겹살 1인분(200g) 평균 가격은 지난해 5월 2만 원대에 진입했습니다.
최근에는 울릉도의 한 식당이 집중포화를 맞았습니다.
유튜버 '꾸준'은 지난 19일 올린 '울릉도는 원래 이런 곳인가요? 처음 갔는데 많이 당황스럽네요' 영상에서 1인분 120g에 1만5천 원인 삼겹살 2인분을 시켰는데 비계의 양이 고기보다 많은 삼겹살 두 덩이를 제공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조회수 280만여 회를 기록한 해당 영상에는 "찌개용도 저렇게는 안 먹겠다. 불판 코팅용으로 쓰는걸"(네이버 이용자 'cbro***'), "저거는 고기를 굽기 전에 불판 기름칠하는 비계덩이 아닌가요?"(happ***) 등의 분노성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영상에 등장한 식당은 식품위생법 위반을 이유로 울릉군으로부터 영업정지 7일 처분을 받았습니다.
울릉군수 명의의 사과문도 나왔습니다.
앞서 지난해 4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제주도에서 지방이 대부분인 삼겹살을 15만 원어치 먹었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글이 게시돼 해당 음식점 사장이 댓글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또 2023년 12월에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지역에 기부한 후 받은 답례품에서 비계가 다량 섞인 삼겹살·목살 한돈 세트를 배송받은 기부자가 관련 사진과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하며 공분이 일었습니다.
결국 해당 답례품을 보낸 업체는 대면 사과와 새 상품 교환을 진행했고, 지난해 미추홀구 답례품 협약업체에서 제외됐습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삼겹살이란 살코기와 지방이 교차해 세 겹을 형성한 돼지고기 부위를 뜻합니다.
본래 세겹살이라고도 불리던 삼겹살은 소고기에 밀려 선호되는 부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냉장·냉동 기술의 발전과 돼지 품질 개량 등의 노력과 더불어 저렴한 가격, 고기와 비계의 배합을 통한 고소한 맛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소고기에 비해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겹살의 비계 비율에 대한 규정은 존재할까? 2023년 6월 농림축산식품부는 돼지고기(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을 배포했고, 인천 미추홀구에서 비계 삼겹살 논란이 일자 지난해 1월 2차 배포를 진행했습니다.
해당 매뉴얼에 따르면 일반 삼겹살은 지방을 1cm 이하로 손질하되, 상품성에 손상이 없는 수준으로 고기의 지방을 제거해야 합니다.
다만 이는 권고안일 뿐, 강제성을 띠지는 않습니다.
정구용 상지대 동물자원학과 명예교수는 "삼겹살 손질에서 규정을 강제할 경우 유통에서 많은 손실이 생긴다"며 "예컨대 3㎏의 삼겹살에서 1.5㎏의 비계를 덜어낸다면 삼겹살로 1만6천 원에 팔릴 것을 800원 정도의 비계로 처분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 교수는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돼지고기의 경우 손님이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먹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지방이 너무 적을 경우 고기가 다 타버리고 김치 등을 함께 굽기도 힘들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식당은 어느 정도 지방이 있는 부위를 내놓을 경우 해당 부분에 대한 설명과 홍보를 충분히 해야 한다"며 "돼지의 6번 흉추에서 8번 흉추 사이의 부위는 삼겹살 구이로 썼을 때 맛있는 부위지만 두꺼운 '떡지방'은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비계 삼겹살' 논란은 삼겹살이 수십 년간 '보통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서민 음식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합니다.
쉽게 사먹을 수 없는 '한우 투뿔등심'과 삼겹살은 분명히 다르며 그 맛은 우리를 배신(?)해서는 안된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삼겹살값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고, 그런 상황에서 고기보다 비계가 많다는 논란이 터지면 대중의 분노가 폭발하는 양상이 이어집니다.
지난 30일 서울 동작구 한 재래시장의 정육점에는 국내산 대패삼겹살 600g에 1만3천800원, 벨기에·오스트리아·네덜란드산 삼겹살 600g에 9천 원이라는 팻말이 내걸려 있었습니다.
이곳은 국내산 냉장 삼겹살을 100g당 3천 원에 판매했습니다.
같은 무게에 목살은 2천833원, 앞다릿살은 1천633원으로 돼지고기 중 국산 삼겹살이 가장 비쌌습니다.
해당 정육점 주인은 "국산은 목살보다 삼겹살이 조금 더 비싸다"며 "수입산 삼겹살도 1년 전 정도부터 가격이 10퍼센트는 올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날 동작구의 한 체인형슈퍼마켓에서는 목살과 삼겹살을 본래 600g당 2만4천980원에서 1만7천486원으로 할인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두 부위 모두 100g당 2천914원으로 동일했습니다.
바로 옆 진열대에는 캐나다산 구이용 삼겹살이 100g당 2천497원으로 판매 중이었습니다.
국산을 할인판매 하면서 국산과 수입산의 가격 차가 약 400원밖에 안 났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냉장·냉동 삼겹살 수입량은 2020년 12만2천t에서 2023년 14만9천t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마트몰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수입산 삼겹살은 1㎏ 기준 약 1만5천 원으로, 국산 구이용 삼겹살에 비해 절반 정도로 저렴하지만 이 역시 오름세입니다.
유튜브 이용자 'sign***'는 "예전에는 서양에서 삼겹살 부위를 잘 찾지 않아 수입산 삼겹살을 싸게 살 수 있어 애용했지만 지금은 수입산 삼겹살의 가격도 계속 비싸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고 썼습니다.
한편, 이런 가운데 K컬처의 인기를 타고 삼겹살 구이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전통적으로 서구권에서는 삼겹살을 직접 구워 먹기보다 건조 후 염장한 베이컨 형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한국식 구이를 내세운 음식점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K 드라마·영화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 모습이 담기자 외국인들이 군침을 다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해 4월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은 '뉴욕에서 솥뚜껑 삼겹살? K-고기가 해외에서 인정받는 이유?'라는 영상에서 뉴욕에서 삼겹살을 판매하는 식당과 그에 대한 요리 평론가의 호평을 소개했습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필수 먹거리로도 올라섰습니다.
한식 제작기와 레시피를 틱톡에 게시하며 인기를 끈 캐나다 인플루언서 로건 모핏이 한국을 찾아 친구들과 야외에서 솥뚜껑 삼겹살을 즐기는 영상 '이게 바로 K-야장이지!! 솥뚜껑 삼겹살 처음 맛본 로건'(유튜브 채널 'JohnMaat')은 지난해 10월 공개돼 조회수 약 42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해당 영상에는 "생마늘 조합도 아는데 양파쌈까지, 전생에 한국에 살았을 듯"(유튜브 이용자 'SYH-***')·"유튜브 보는데 삼겹살 냄새가 난다"('Kura***') 등의 반응이 달렸습니다.
이외에도 틱톡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삼겹살'(samgyupsal)을 검색하면 외국인이 삼겹살을 즐기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