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발생한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의 피해자인 고(故)정은희 씨의 아버지 정현조 씨.
무려 27년이 지난 지금, 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책 '아빠의 전쟁'을 출간했습니다.
책은 사건 발생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를 유족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1998년 10월 17일.
정현조 씨의 딸 은희 씨는 전날 학교 축제에서 귀가하던 중 실종되어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정은희 씨가 무단 횡단 중 23t짜리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당시 시신에는 속옷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유족은 사고 지점에서 30 여 미터 떨어진 풀 숲에서 고인의 속옷을 발견하고 강간 살인 사건을 주장했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정현조/故 정은희 양 아버지(지난 2015년): 경찰들이 '채소(장사)하는 주제에 네가 뭐 안다고', 부검감정서를 달라 하니까 '네가 부검감정서 볼 줄이나 아느냐고 말이야 볼 줄도 모르는 게 우리가 교통사고라 하면 교통사고인 줄 알지 그러면 교통사고 (아니라는 걸) 증명해 와라 증명해 오면 우리가 수사할게' 한 거죠.]
사건 발생 15년이 지난 2013년, 증거로 제출했던 속옷에서 한 남성의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그 주인은 사건 당시 근처 공장에서 근무하던 40대 스리랑카인 남성 K씨.
검찰은 특수강도강간혐의로 이 남성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증거 불충분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종길/대구지방법원 당시 공보판사 : 특수강도 강간죄에 대해서 증거가 부족하다는 얘기입니다 검출된 DNA 증거는 강간에 대한 증거는 될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특수강도나 특수강간에 대한 증거로는 부족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강간죄로 왜 기소 안했느냐 강간죄로 기소는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이에요.]
경찰이 처음부터 교통사고로만 보고 수사했고 이것이 당시 현장의 다양한 증거들을 모두 놓친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겁니다.
아버지는 지난 2017년 6월 국가를 상대로 부실한 초동 수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1심에서 유족에게 5,500만 원을, 2심에선 위자료를 올려 7,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습니다.
[정현조/故 정은희 양 아버지(지난 2015년): 처음부터 초동수사를 부실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공소시효 운운하면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하면... 자기들 말로는 증거가 불충분하대 그런 것들이 참 억울하죠 억울하고 분하지.]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바뀐 건 없었습니다.
범인인 스리랑카인 K씨는 성폭행도 아닌 성추행으로 자국에서 5년 형을 받았다는 소식만 전해졌습니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지난 2015년): 그러니까 처벌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소시효라는 터무니 없는 행정조치 때문에 범인을 뻔히 잡고서도 지금 처벌을 할 수 없는 무력한 사법 제도에 어떻게 보면 약점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거죠.]
어느덧 사건 발생 27년, 아버지 정현조 씨는 70대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빠의 전쟁'을 발표하며 "지금이라도 다시 재수사가 시작되고 다시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책을 내는 이유에 대해 "피해자와 유족들이 가지고 있는 그 숱한 의혹을 국가가 해소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며 "국민이 어떠한 의혹을 가지고 있다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풀어주고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정현조/故 정은희 양 아버지(지난 2015년): 내 삶은, 우리 (가족들) 삶은 진짜 참 그 뒤로는 뭐 즐거움은, 완전히 웃음은 가버렸지 전부 다 그 답답함을 어디 풀지도 못하고 말이야 서로 집에 와서도 웃음이라고는 없어져 버린 거야.]
(취재 신혜주(인턴) / 영상편집 김수영 / 디자인 백지혜 / 화면출처 그것이알고싶다 / 제작 디지털뉴스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