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동판화는 동판을 긁거나 부식시키고 잉크를 부어서 찍는 서양의 미술 기법인데요, 강승희 판화 작가는 그 동판화 기법에 우리 수묵화의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이주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새벽, 여백을 열다 / 30일까지 / 노화랑]
살짝 굽었지만, 쭉 뻗은 줄기 위로 검푸른 소나무 잎이 우산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길가의 강아지풀은 가느다란 줄기가 휘어진 채로 바람에 몸을 맡깁니다.
길게 늘어진 나뭇잎들은 짙거나 옅은 색채로, 붓에 먹물을 적게 묻혀 그리는 갈필과 먹물을 충분히 적셔 그리는 윤필을 동시에 사용한 수묵화 같습니다.
실제로는 동판을 긁어내거나 산으로 부식시킨 뒤 잉크를 묻혀 찍는 동판화입니다.
서양미술에서 유래한 동판화 기법에 수묵화 분위기를 더한 겁니다.
특히 나무와 풀 같은 주변 자연의 소재를 담으면서 대상은 최소화하고 여백의 미를 강조했습니다.
[강승희/작가 : 그림 소재보다도 여백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고요. 그러다 보니까 사물 자체, 주제 소재는 점점 단순화되고 없어지고 여백이 크게 남는 그런 형태로.]
화면의 남은 부분이어서 여백이지만 작가는 그 여백을 부각시킵니다.
언뜻 한지의 흰빛처럼 보이지만 옅게 푸른빛이 돌게 했습니다.
긁히거나 부식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평평한 동판에서 묻어나는 겁니다.
수묵화처럼 보이게 하는 먹빛에도 여러 색이 섞여 짙은 청색의 느낌을 줍니다.
청색도 여러 층위로 대상의 깊이를 다르게 합니다.
[강승희/작가 : 청빛은 또 배경을 갖다가 약간의 여운을 주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블랙이 아니고 우리가 그 저기 동양화에서 청묵이라고 하잖아요. 그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꼿꼿한 소나무 줄기가 새벽녘 푸르스름한 빛 속의 떨림을 전해줍니다.
동판화 기법과 수묵화의 감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고 있습니다.
(영상편집 : 김준희, VJ : 오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