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54년 만에 만나는 20살 청년 김민기…'아침이슬' 실린 1집 다시 세상으로 [스프]

[커튼콜+] 김민기 1주기…나만의 추모행사로 기린다

김민기
 

김수현 SBS 문화예술전문기자가 전해드리는 문화예술과 사람 이야기.
 

김민기 전 학전 대표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습니다. 7월 21일이 1주기입니다. 최근 고인의 1집 앨범 '김민기'가 재발매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학전은 '고 김민기 대표의 1주기를 추모하며, 1971년 발매된 '김민기' 앨범을 복각 LP로 제작 발매한다'면서, '김민기가 20살의 나이에 발매한 이 음반은 이후 한국 현대사와 대중문화에서 독자적 상징성을 지닌 앨범으로, 54년 만에 LP로 정식 재발매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앨범에는 '아침이슬' '친구' '꽃 피우는 아이' '그날' '종이연'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들은 사랑과 이별 타령 위주에 팝송 번안이 많았던 당시 대중가요의 한계를 깨뜨리고, 삶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김민기 1집은 빼어난 노랫말과 음악성으로, 한국 포크송 계보에서 기념비적인 창작 음반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지난해 SBS 다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 공개된 '아침이슬' 영상 감상합니다. 1990년 '겨레의 노래' 공연에서 김민기가 '아침이슬'을 직접 부르는 희귀한 영상입니다. (바로가기)

'종이연'은 본래 제목이 '혼혈아'였지만, 검열 때문에 '종이연'으로 제목을 바꿨습니다. '아침이슬'과 '꽃 피우는 아이'는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한 아이가 무궁화 꽃밭을 가꿨지만 꽃이 시들어 떨어지고 아이도 앓아누웠다며 '누가 아이의 꽃밭을 망쳤는지' 묻는 노래는, '아침이슬'이 그랬듯, 자연스럽게 사회 비판을 담은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꽃 피우는 아이

무궁화 꽃을 피우는 아이
이른 아침 꽃밭에 물도 주었네
날이 갈수록 꽃은 시들어
꽃밭에 울먹인 아이 있었네
무궁화꽃 피워 꽃밭 가득히
가난한 아이의 손길처럼
꽃은 시들어 땅에 떨어져
꽃피우던 아이도 앓아 누웠네
누가 망쳤을까 아기의 꽃밭
그 누가 다시 또 꽃 피우겠나
무궁화꽃 피워 꽃밭 가득히
가난한 아이의 손길처럼
종이연

종이연 날리자 하늘 끝까지
내 손이 안 닿는 구름 위까지

간밤에 어머니 돌아오지 않고
편지만 뎅그마니 놓여있는데
그 편지 들고서 옆집 가보니
아저씨 보시고 한숨만 쉬네

아저씨 말씀 못미더워도
헬로 아저씨 따라갔다던데
친구도 없네 무얼 하고 놀까
철길 따라서 뛰어나 볼까

철길 저편에 무슨 소리일까
하늘나라 올라갈 나팔소리인가
종이연 날리자 하늘 끝까지
내 손이 안 닿는 구름 위까지

'종이연'의 화자는 아마도 주한미군을 상대한 성매매 여성의 아이인 것 같습니다. '혼혈아'가 제목이라면 의미가 확실히 전달됐겠지만, '종이연'으로 제목을 바꾸고 나니, '헬로 아저씨 따라갔다던데'라는 대목이 있긴 하지만 화자가 혼혈아라는 점이 부각되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1971년 음반 가사지에는 '헬로 아저씨 따라갔다던데' 대신 '어딘지 멀리 떠나갔다던데'로 표기됐습니다.

김민기의 많은 노래들이 당시의 사회 현실을 담고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민주화 투쟁을 위해 이런 곡들을 쓰고 부른 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음악인으로서, 내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세상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진솔하게 노래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대중음악 풍토에서는 달콤한 사랑 노래 대신 현실을 반영한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희귀한 시도였고, 이런 곡들이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서 즐겨 불리면서 '민중가요'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던 것이죠.
김민기

1971년 10월 초판, 1972년 재판을 찍은 이 앨범은 총 500장만 제작됐고, 지금도 중고 LP가 고가로 팔리고 있습니다. 이 앨범은 1972년 봄, 김민기가 서울 동대문 경찰서에 연행된 후 미판매분 전체가 회수, 판매 금지됐고, 오리지널 동판 프레스까지 압수 폐기됐습니다. 이후 여러 버전의 해적판 LP가 시중에 범람했습니다.

1984년 '아침이슬'이 해금된 이후 한 업체에서 김민기 1집 중 '꽃 피우는 아이' 대신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실어 무단으로 복각 LP를 발매했다가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자 발매 중단했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후 1990년 원 앨범과 동일한 곡 구성의 복각 LP를 한시적으로 판매한 적이 있으나, 김민기 대표의 뜻과는 상관없이 발매된 것으로 정식 재발매로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고 김민기 대표는 1993년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 설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네 장의 전집 음반을 새로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서울음반에서 나온 이 음반은 김민기 1집에 실렸던 곡들은 물론이고 다른 곡들을 모아 새로 부르고 녹음한 것인데요, 이때 발매된 음반이 김민기 1집, 2집, 3집, 4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후 2004년 서울음반에서 'Past Life of 김민기'라는 제목으로 6장짜리 CD 전집이 나왔는데, 여기엔 1971년 1집 복각 CD와 1993년 새로 불러 발매한 김민기 1~4집, 그리고 탄광촌 어린이들의 일기를 바탕으로 쓰인 노래극 '연이의 일기'가 포함되었습니다. 또 2004년에는 김민기가 1970년대 유신 치하 노조 탄압을 소재로 만들어 1979년 불법 테이프로 발매됐던 노래굿 '공장의 불빛'도 원작과 작곡가 정재일이 리메이크한 버전을 나란히 실은 두 장짜리 CD로 발매됐습니다.

학전은 1971년 발매된 '김민기 1집'을 김민기 데뷔 앨범이자 유일한 '정규 앨범'이라 했습니다. 1993년 발매된 음반이 김민기 2집, 3집, 4집으로 불리긴 하지만, 당시 신곡을 낸 게 아니라 후일 다시 불러 녹음한 것이라 '정규 앨범'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54년 만에 '정식 재발매'되는 '김민기 1집' LP는 오리지널 동판 프레스가 폐기됐기 때문에 1971년도에 나온 LP를 5장 이상 확보해 음원을 추출합니다. 2004년 CD 재발매 때보다 음향 기술이 진일보했기 때문에 노이즈를 제거하고 최대한 원 소스와 가깝게 복원한다 합니다. 1주기인 21일부터 8월 10일까지 주요 온라인 음반 판매사이트에서 사전 예약을 받아 제작하고, 11월 이후 예약자에게 순차적으로 배송할 예정입니다. 청년 김민기의 목소리를 깨끗한 음질로 다시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학전은 이번 김민기 1집 복각을 시작으로 '김민기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학전김민기재단'을 올해 안에 설립할 예정입니다. 김민기 1집뿐 아니라, 1993년 녹음 발매된 김민기 1~4집 음반도 재발매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1993년에 나온 이 전집을 사서 즐겨 들었는데, 여러 번 이사 다니면서 없어진 게 있어서 아쉬워하던 참이었습니다. 또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그동안 학전에서 공연한 뮤지컬이나 연극 수록곡들을 담은 OST 음반들도 정식 발매되기를 기대합니다.

학전은 "고인의 뜻에 따라 1주기 추모 행사나 공연 등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학전과는 별도로 후배 음악인들의 추모 공연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오랫동안 대학로 학전 소극장을 드나들었던 취재기자로서 저에게도 고인과 관련된 추억이 많습니다.

2023년 말 정재일 콘서트가 열렸던 날, 병색이 완연했지만 여전히 소탈하고 유머 넘쳤던 고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봤던 기억도, 고인의 유해가 장지에 가기 전 학전 소극장을 들렀던 그날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기를 닦아내며 합창했던 '아침이슬'의 기억도 생생한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네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