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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수치가 성공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숫자만큼 성공을 객관화할 수 있는 지표는 없다.
장성호 감독은 한국 영화가 북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성적표로 보여줬다. 한국의 순수 기술력으로 완성한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로 북미에서만 6,000만 달러(한화 약 827억 원)의 극장 수입을 거두며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킹 오브 킹스'는 영국의 뛰어난 작가 찰스 디킨스가 막내아들 월터와 함께 2000년 전 가장 위대한 이야기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그린 작품. 디킨스의 소설 '우리 주님의 생애'(The Life of Our Lord)에서 영감을 받은 기독교 애니메이션 영화다.
종전 최고 흥행작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북미 누적 매출 5,384만 달러)이었다. (북미 기준) 외국어 영화인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 출품 요건을 갖추기 위해 북미 극장에 제한적으로 상영했다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석권하며 이른바 '영화제 버프'까지 받은 경우다.
'킹 오브 킹스'는 사례가 다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북미 시장을 겨냥했고, 영어 영화로 제작됐다. 북미 개봉 역시 제한 상영이 아닌 와이드 릴리즈였다. 여타 북미 영화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출발해 박스오피스에서 기념비적인 성적을 거뒀다.

성공의 뒤편에는 모팩 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의 피, 땀, 눈물이 있었다. 국내 VFX(시각 특수효과) 분야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장성호 대표는 약 10년간의 연출 준비를 끝에 이 영화를 완성했다.
장성호 대표는 영화 감독이기 전에 기술자였고, 사업가였다. 그는 영화 산업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북미 시장에 '맨땅에 헤딩'하듯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 영화 제작에 대한 노하우, 소재와 이야기에 대한 확신, 기술에 대한 자신감, 시장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기반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했고, 보란 듯이 성공했다.
인터뷰 시작부터 끝까지 그는 '할리우드 스탠더드 퀄리티'라는 말을 자주 썼다. 말은 쉽다. 미국 관객의 눈에 맞춘 스탠더드 퀄리티라는 것은 그 기준이 모호하다. 영화라는 건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기에 공식 인증도 받기 어렵다. 결국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에게는 '좋은 이야기에는 반응을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장성호 감독의 성공 비결을 따라가 봤다.
Q. 북미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난 후, 드디어 한국 관객과 만나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
A. 미국에서 개봉할 때는 좀 담담했는데, 오히려 국내 개봉을 앞두고는 긴장이 된다. 미국에서는 배급사가 흥행 지표가 될 만한 데이터를 계속 제공해 줘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는데 국내 시장은 예측 불가다. 국내 극장 체인들도 우리 영화가 레퍼런스가 없는 특이 사례다 보니 예측이 어렵다고 하더라. 오늘 다행히 예매율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어 조금은 안심이 된다.
Q. 북미에서는 지난 4월에 개봉했는데 국내 개봉은 7월에서야 이뤄졌다. 양국 개봉 시기를 각각 4월과 7월로 잡은 이유가 있나?
A. 미국은 부활절 시즌이 대목이다. 게다가 예수 소재의 영화다 보니 부활절에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었다. 국내 개봉 시기는 미국 개봉 때도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연말에 해야 하나 하다가 북미에서 큰 성공을 거두다 보니 빨리 개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도 한국은 더빙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하게 됐다.

Q. '킹 오브 킹스'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북미를 타깃으로 한 작품인데 이례적인 기획이다. 또 VFX 분야의 1인자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영화에 참여한 경력은 없다. 애니메이션을 연출 데뷔작으로 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A. 영화감독을 하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처음 하는 사람이 헬스장에 가서 3대 500을 칠 순 없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다렸다. 2015년쯤부터 연출에 대한 마음을 먹었다. 실사 영화를 하지 않은 건 크리에이터로 증명되지 않은 내게는 저예산 규모 수준의 투자밖에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봉준호, 박찬욱이 아니지 않나.
그러나 애니메이션을 하면 기대치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기술적인 자신감이 있었고 시장 조사도 오랫동안 했다. 기독교 콘텐츠가 절대로 돈을 잃지 않을 시장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 정도면 투자자들에게 민폐를 안 끼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국 애니메이션은 영유아물에 특화돼 있었고 예산을 많이 써도 50억 원을 내외일 것 같았다. 완성도를 높이려면 그보다 큰 예산이 필요했다. 그래서 북미 시장을 메인 타깃으로 하게 됐다.
Q. 성경 기반의 이야기를 첫 영화의 소재로 잡은 것도 북미 시장을 공략하는데 주효했던 것 같다.
A. '애니메이션은 오리지널 작품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천하의 디즈니도 오리지널 작품 중 성공한 사례가 없다. 픽사가 나오고 나서야 오리지널이 잘 됐다. 그들(북미 관객)에게 친숙한 원작 베이스로 가야겠다고 해서 소재를 찾았다. 미국은 청교도가 세운 나라다. 이 소재라면 시장에서 충분히 반응하겠다고 생각했다.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는데, 이 작품이 잘 만들어지면 큰 상징성도 갖겠다고 생각했다.
Q. 찰스 디킨스의 소설 '우리 주님의 생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어떤 것을 활용했고, 어떤 점이 다른가?
A. 디킨스의 오랜 팬이라 모든 작품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이 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다만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지, 원작으로 한 건 아니다. 디킨스는 예수의 이야기를 도덕주의적인 관점으로 썼다. 그러나 나는 그게 입체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의미보다 재미, 신앙보다 이야기. 관객이 먼저 다가올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다만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은 재밌다고 생각해 그건 차용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예수의 기적과 모험이 환상적인 여정이 될 거라 생각했고 이 형식이 뻔한 이야기를 재밌게 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Q. 성서 기반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북미에서 와이드 릴리즈로 개봉한 게 '이집트 왕자' 이후 27년 만이라고 들었다. 그간 왜 이렇게 북미에서 제작이 뜸했다고 생각하나?
A. 미국 영화의 수익 구조가 국내와 해외가 비슷했을 때는 성서 기반의 영화가 많이 제작됐다. 그러나 해외 시장의 비중이 커지면서 할리우드도 해외 시장을 겨냥한 작품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영화 콘텐츠 제작이 줄었다. 나로서는 오히려 메인 스트림에서 만들지 않기 때문에 틈새 공략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애니가 아무나 공략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할리우드 스탠더드 퀄리티를 맞출 수 있는 건 미국에서도 디즈니, 소니, 유니버설 등 5대 배급사뿐이다. 이걸 한국의 작은 회사에서 만들었다고 하니 미국에서도 놀라더라.
Q. '킹 오브 킹스'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했고 약 4주간 박스오피스 10위권을 유지하며 북미에서만 6000만 달러 이상의 극장 수입을 거뒀다. 영화 자체의 힘도 있지만 와이드 릴리즈의 힘도 컸다고 생각한다. 미국 현지 배급사는 엔젤 스튜디오(Angel Studios, Inc.: 미국의 인디 기독교 미디어 회사이자 영화 배급 스튜디오)라는, 한국에는 사소 생소한 회사다. 이곳과 손잡게 된 배경은?
A. 영화를 제작할 때부터 이 소재가 미국인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좋다고 생각했고, 만듦새가 좋으면 시장이 반응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모두 완성한 후에 (배급) 비딩을 걸자는 오만함이 작동했다. 물론 메이저 배급사랑도 접촉했는데 엔젤 스튜디오의 조건이 더 매력적이었다. 과거 기독교 영화인 '사운드 오브 프리덤'을 와이드 릴리즈로 배급한 경험이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우리가 갑의 위치에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내 요구사항은 ▲ 부활절 개봉 보장 ▲ 개봉 첫 주 최소 북미 2천 개 이상의 스크린 확보. 이 두 가지였는데 그들이 모두 수용했다. 영화 완성 후 북미 극장 체인들 대상으로 배급 시사를 열었고 반응이 좋아 개봉 첫 주에 3,200개 스크린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2주 차엔 3500개까지 늘어났다. 사실 초반 흥행 지표만 보면 더 잘될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인크래프트 무비'와 '시너스'가 복병이었다.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아니었으면 개봉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 2위가 아닌 1위로 데뷔했을 거고, 2주 차에 '시너스'가 개봉하지 않았다면 박스오피스 1위를 했을 거다.
Q. '킹 오브 킹스'의 성공엔 두 파트너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공동 제작자이자 촬영감독으로 함께한 김우형(한국 영화계 촬영 분야의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로 '암살', '1987', '카트' 등을 촬영했으며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도 작업)감독과 기획자인 제이미 토마슨이다.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하다.
A.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 유이한 인물들이다. 감독이라서 인터뷰를 많이 하고 다니다 보니 '내가 다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영화는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노력과 보이지 않은 운들이 작용한 결과다. 김우형 감독이나 저 모두 애니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실사 영화를 하면서 쌓아온 경험치가 많았다. 기존 제작방식을 애니메이션에서도 활용하기로 했다. 실사 영화와 같은 퀄리티 구현을 위해 버추얼 프로덕션 시스템과 카메라를 자체 개발했다. 언리얼 엔진 기반의 이 시스템은 배우의 실사 연기를 가상공간에 적용해 실제 촬영과 유사한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조이스틱 형태의 제어장치를 연결한 카메라를 자체 제작해 김우형 촬영감독이 직접 조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애니메이션에서는 보기 드문 섬세하고 역동적인 카메라 무빙을 구현할 수 있었다. 김우형 감독의 경우 이 영화를 준비할 동안 본업(촬영)을 접고 저희 회사로 들어와서 일을 했다.
제이미 토마슨은 디즈니에서 15년 넘게 일한 업계 최고 전문가다. 할리우드 인맥을 통해 업계의 탑 전문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렇게 소개받은 사람이 토마슨이었다. 그와 처음 미팅을 했을 때 '좋은 기획이고, 잘 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에이전트에 다이렉트로 대본을 보낼 순 있지만 대본이 후지면 끝이다'라고 하더라. 아시다시피 할리우드는 에이전트에게 대본을 보내면 바로 배우에게 건네는 게 아니라 검수부터 한다. 별로면 바로 쓰레기통행이다. 그걸 통과했다.

Q. 할리우드 인맥은 어떤 인연과 사연을 통해 구축하게 된 건가?
A. 과거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VFX 작업에 참여하며 할리우드 스태프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 드라마 '태왕사신기' 작업을 했는데 그때 스태프 중에 '반지의 제왕'팀이 있어 또 인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후 영화 '전사의 길'을 하면서 이 스태프들과 다시 만나 친해졌다. 이들은 아카데미에서 받은 오스카 트로피만 24개인 업계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선수는 선수들을 알아보다고 하지 않나. 그분들과의 관계가 좋았다. 그때부터 "장 대표는 할리우드에 와서 일해도 잘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연출을 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할리우드가 막연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고, 역량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Q. '킹 오브 킹스'에는 3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이 중 소위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자본은 하나도 없다. 어떻게 이 자본을 조달한 건지 투자유치 과정을 듣고 싶다.
A. 국내 투자 배급사들은 다 외면할 거라 투자를 받으려는 시도조차 안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법에 저촉되지 않은 선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자를 받았다. 초기에는 주변 지인들에게 부탁해 회사로 투자를 받았다. 그렇게 모으니 꽤 큰돈이 되더라. 그걸 종잣돈으로 활용해 콘텐츠 펀드에 투자했고, 그 레버리지로 초기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중국 영화 시장에서 VFX 수주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회사의 매출도 커졌다. IPO가 가능한 업종이다 보니 회사의 지분을 팔아서 투자금에 보탰다. 여기에 개인 자산까지 투입했다. 장기 파는 거 빼고는 다했다고 볼 수 있다.
Q. 지금까지의 말을 종합해 보면 '실력과 인맥, 운이 있다면 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로 들린다. 그러나 국내 수많은 영화인이 할리우드 시장에 문을 두드렸다가 실패했다. 당신은 어떤 점이 달랐다고 생각하나?
A. '좋은 콘텐츠는 반응이 온다'고 생각한다. 좋은 기획을 했고, 그들의 허들을 넘을만한 시나리오를 썼기에 그들이 반응했다. 과거에 시도한 분들은 할리우드 인맥도 없고,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다 보니 그들이 소개해 주는 브로커, 로비를 거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두세 다리씩 거치면 핵심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나의 경우 A리스트를 통해서 상황을 꾸려냈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Q. 개인적으로 국내 애니메이션의 글로벌화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작화라고 생각한다. '킹 오브 킹스'는 이를 극복했고, 국내외 관객들에게 소구할 만한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A. 그렇다. 우리뿐만 아니라 해외 관객들 역시 디즈니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외에는 다 마이너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트웍에도 많은 시간을 쏟았다. 기조는 '디즈니의 수준에 도달하되, 아류가 되지 말자'였다. 저의 경우 미술을 전공했고, 이미 여러 작품의 VFX 작업을 통해 많은 경험이 있었다. 작업을 진행해 가면서 각본뿐만 아니라 아트웍 파트에서 할리우드 지인들의 의견을 구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며 수준을 높였다.
Q. '킹 오브 킹스'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아버지인 디킨스와 아들 월터의 관계 회복, 두 번째는 월터가 예수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이 둘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 나갔나?
A.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회복도 중요한 동시에 예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월터가 깨닫게 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다. 서브 플롯이 메인 플롯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관객이 온전히 예수의 이야기를 보고 나온 느낌을 줘야 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자마자 월터와 눈을 맞추는 것을 시작으로 천천히 예수를 알아가는 과정이 나온다. 처음엔 디킨스가 개입을 많이 하는데 나중에는 서서히 빠진다. 그 자연스러움에 신경을 많이 썼다.
Q. 캐릭터 중에선 고양이 윌라가 사랑스러웠다. 실제 고양이의 행동 양식을 관찰한 끝에 완성한 듯한 섬세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A. 실제로 디킨스가 고양이를 키웠고, 이름도 윌라였다고 한다. 이 영화는 월터가 예수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인 동시에 아버지 디킨스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보통 어른들은 아이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에게 소중한 존재면 어른들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킨스가 윌라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월터도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애니메이션적인 재미를 위해서도 윌라는 필요한 캐릭터였다. 과거 고양이를 세 마리 키운 적 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윌라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만들고자 했다.

Q. 더빙 캐스팅을 할 때 영어판, 국내판에서 어떤 것을 고려했나. 국내 더빙의 경우 전문 성우가 아닌 스타 캐스팅에 주력했는데 그 이유는?
A. 물론 성우들의 전문성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애니에 고정된 느낌보다는 생활 언어, 톤으로 편안하게 연기를 하는 방향을 원했다. 그래서 국내의 경우 배우 캐스팅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물론 영어로 쓴 대본이라 미국 배우와 한국 배우의 느낌이 같을 순 없다. 그러나 한국 배우분들이 워낙 더빙을 잘해 주셔서 배우들이 참여한 더빙판 중에서는 최고의 퀄리티라고 자부한다. 이병헌, 이하늬, 진선규, 양동근, 차인표 등 최고의 배우진이 캐스팅 됐는데 이분들 모두 미국 개봉 전에 이미 캐스팅이 완료됐다. 주변 지인들의 도움도 많았지만, 대부분 시나리오를 읽고 선뜻 참여해 주셨다.
Q. 한국 애니메이션이 미국 영화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것에 대한 현지 언론의 반응도 뜨거웠던 것으로 안다.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했을 때 그들이 가장 흥미로워 한 건 어떤 것이었나?
A. 한국 작품, 그것도 북미 메이저 배급사의 지원을 받지 않은 작품이 와이드 릴리즈로 개봉하고 대성공을 거둔 것에 가장 놀라더라. 우리나라로 치면 독립영화가 천만 영화를 한 것 같은 결과다.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보편적인 게 세계적인 게 아닐까요?'라고 답하곤 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한국적인 게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런 작품을 만들 생각이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으로 알 수 있듯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한 미국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고, '뮬란'과 '쿵푸팬더'처럼 중국의 문화와 캐릭터를 활용한 미국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 소재를 누가 사용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서구를 향한 문화적 열등감은 사라진 것 같다. 그들과 같은 시선에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편적인 정서는 어느 세상이나 통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이야기가 소구된 역사는 유구하지만 결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 귀결되더라. 소재 활용에 있어서도 경계나 거부감 없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세상이다.
Q. 한국 VFX 분야의 선구자로서의 견해도 궁금하다. VFX가 21세기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지금은 AI 시대가 도래했다. AI가 사람의 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건데 이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A. 제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 해에 150편의 영화가 제작된다고 치면 CG가 들어간 영화가 1,2편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 들어가는 영화가 1,2편밖에 없을 정도로 CG 사용이 보편적이다. 이제는 AI 시대가 돼서 모든 걸 대체하리라고 본다.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접근성이 좋아진다는 건데 그건 반대로 누가 해도 똑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변별력이 없으면 관심도 떨어질 것이다. 실행은 쉬워지나 유니크한 아웃풋을 내긴 어렵다. 창의적이고 독특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각광받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Q. 어떻게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됐나. 그리고 영화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을 '장성호의 인생 영화'도 궁금하다.
A. 어려서부터 워낙 영화를 사랑했고, 많이 봤다.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좋아했다. 영화인을 하는 것은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의 토토로'를 가장 좋아한다. 그의 작품 중 최고 걸작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토토로'다. 또 '톰과 제리', '루니툰'도 좋아한다. 대사 없이 상황을 전달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극영화 감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스탠리 큐브릭이다.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다. 일단 영화를 한 번 보면 끝까지 보게 되는 마력을 보여준다. 지금 봐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은 걸작들이 많지 않은가.
Q. 애니메이션으로 영화 연출의 첫발을 뗐는데, 실사 영화 연출에 대한 계획도 있을 것 같다.
A. 극영화로 구상해 놓은 게 있긴 하다. 그러나 오리지널 콘텐츠를 하려면 제가 더 유명해져야 할 것 같다. 남의 돈을 투자받아 개인 예술을 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건 내 돈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계획은 아직 구체화진 않았지만 성서 기반은 아니다. 제가 즐겁고 재밌을 만한, 그러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 또한 중국 시장에서도 개봉할 수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