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 전부터 대미 정상 외교에 남다른 공을 들여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였던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부인을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에 급파해 대화의 물꼬를 텄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1천억 달러, 우리 돈 약 145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라는 선물 보따리도 미리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만나서는 무려 1조 달러, 우리 돈 약 145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그리고 방위비 2배 증액을 포함한 종합선물 세트도 안겼습니다.
당시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냐고 물어보는 기자에게 "We love Japan"이라고 외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는데요. 그로부터 다섯 달이 지난 지금 두 정상이 공개 석상에서 내놓는 발언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 미국 대통령
예를 들어서 일본은 쌀을 수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쌀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쌀을 받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일본은 쌀을 수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쌀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쌀을 받지 않아요.
이시바 시게루 | 일본 총리
(미국에) 깔보여서야 되겠습니까. 동맹국이라도 할 말은 정정당당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미국에) 깔보여서야 되겠습니까. 동맹국이라도 할 말은 정정당당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오는 7월 2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표를 얻기 위한 차원이다, 이런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참의원 선거 D-5…흔들리는 자민당과 이시바 내각

일본 NHK의 설문조사 결과, 자유민주당, 즉 자민당 지지율이 지난주보다 4.1% 포인트 떨어진 24%에 그쳤습니다. 이는 NHK의 역대 조사에서 자민당이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은 2012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데요.

자민당 이외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입헌민주당이 7.8%, 참정당이 5.9%, 그리고 국민민주당이 4.9%입니다.

이시바 시게루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률도 31%로 약 한 달 전의 39%보다 크게 떨어졌습니다. 반대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률은 같은 기간 42%에서 53%로 높아졌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요?
민심은 왜 등 돌렸나 ① 폭등한 쌀값, 멈추지 않는 물가
여러 이유 중 첫째는 쌀값 폭등을 비롯한 물가 상승 문제입니다. 지난해 1월 쌀 5kg에 2,440엔, 우리 돈으로 약 2만 2850원이었던 쌀값이 지난해 9월 '레이와의 쌀 소동' 때에는 3,285엔 우리 돈으로 약 3만 763원까지 치솟았습니다. 그 이후에 쌀 품귀 현상으로 일본 정부가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서 비축미를 풀었지만 이달 초 기준 쌀값은 여전히 5kg당 3,602엔, 우리 돈 약 3만 3732원을 기록하면서 아직도 소비자들이 체감할 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런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지진 발령에 따른 일시적인 쌀 사재기, 해외 관광객의 쌀 소비 증가, 그리고 유통 구조의 고질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하는데요.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표를 보면 2024년, 그러니까 지난해 12월부터 2025년 5월까지 6개월 연속 3%대의 상승률이 나타납니다. NHK는 이렇게 물가 상승률을 전하면서도 임금 상승률은 이러한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정부가 잘 대응할 거라고 보느냐, 이런 질문에 여론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집권 여당은 야당이 소비세 감세를 추진하니까 시간도 많이 들고 비용도 많이 든다고 하며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만 엔, 우리 돈 약 19만 원을 일률 지급하는 등의 공약을 내세웠거든요. 그러자 교도통신 여론 조사에서는 쌀값 급등에 대한 정부 정책이 충분하지 않다, 이런 대답이 87.1%나 나오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심은 왜 등 돌렸나 ② 비자금 문제와 쇄신 실패 비판
둘째, 자민당 비자금 문제를 비롯한 정치 불신 문제입니다. 이시바 총리가 집권하기 이전부터 자민당은 비자금 문제가 있었는데요. 집권 이후에도 쇄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가령 도쿄도 의회의 자민당 의원 그룹은요, 당 중앙 파벌과 마찬가지로 과거 '정치자금 모금 행사', 말하자면 '파티'를 주최하면서 수입의 일부를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걸로 드러났습니다. 이 비자금 문제는요.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 그러니까 하원 총선에서 패배한 주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도 역대 최소 당선자를 배출하는 '대패'를 했는데요. 물론 이 문제뿐만은 아닙니다만, 이러한 비자금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 일부 의원은 징계를 받았고 또 자민당 파벌은 대부분 해체했지만 여전히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불만은 상당한 걸로 보입니다. 아사히 신문이 2만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62%가 자민당 비자금 문제를 고려해서 투표를 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비자금 논란 이후에도 이시바 총리 사무소 관계자가 올해 3월 3일 초선 중의원 의원들 15명에게 인당 10만엔, 약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전달한 사건 역시 파장이 컸습니다.
민심은 왜 등 돌렸나 ③ 관세 협상 부진, 그리고 잇단 설화로 신뢰 하락
셋째는 미일 관세 협상 등에 대한 정부 대응 문제입니다. 총 7차례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기존에 제시가 됐던 것보다도 1% 포인트가 높아진 25%의 상호 관세를 8월 1일부터 부과받게 된 상황입니다. 아사히 신문의 여론 조사에서는 트럼프 관세로 일본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과 관련한 질문에 85%의 응답자가 불안감을 느낀다라고 답했습니다.
교도통신 5월 여론조사에선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재검토에 대해 응답자의 74.3%가 기대하지 않는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 관계자들의 잇단 설화도 여론의 불만을 더 키우는 양상입니다.
안 그래도 높은 쌀값으로 많은 일본 국민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터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농림수산상, 우리로 치면 장관인데 이 사람이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에토 다쿠 | 일본 전 농림수산상
저는 쌀을 사 본 적이 없어요. 지지자분들이 쌀을 많이 주시니까 우리 집 창고에 팔 수 있을 만큼 쌓여 있거든요.
저는 쌀을 사 본 적이 없어요. 지지자분들이 쌀을 많이 주시니까 우리 집 창고에 팔 수 있을 만큼 쌓여 있거든요.
이시바 총리가 며칠간 계속 고개를 숙였지만 분노한 여론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고요. 결국 이 농림상은 경질됐습니다.
에토 다쿠 | 일본 전 농림수산상
아내가 전화해서 화내더라고요. 저는 웃자고 한 얘기인데 아내가 팔 쌀이 어디 있냐고요.
아내가 전화해서 화내더라고요. 저는 웃자고 한 얘기인데 아내가 팔 쌀이 어디 있냐고요.
최근에는 이시바 총리 본인이 먹었던 라면의 고명이 너무 많았다고 이른바 '황제 라면'을 먹었다면서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자민당 쓰루호 요스케 의원의 지난 8일 "운 좋게도 노토에서 지진이 났다"라는 상식 밖의 발언도 공분을 샀습니다.
참패하면 총사퇴 불가피…이시바 내각의 운명은?
이시바 내각은 '이번 선거에서 참패를 하면 총사퇴가 불가피하다' 이런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잃은 상황에서 중의원, 참의원 양원 모두에서 소수 여당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책임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6년 임기의 참의원은 3년마다 절반씩 선거로 뽑는데 이번에는 결원 1명을 포함해서 125명을 뽑습니다. 자민당과 공명당, 이 두 당이 연립 여당인데 만약에 50석 미만을 얻게 되면 전체 합계가 125석, 즉 과반에 미치지 못하게 되어서 소수 여당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