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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아스팔트서 머리 핑 돌아도…"배달 콜 끊기면 더 두려워"

뜨거운 아스팔트서 머리 핑 돌아도…"배달 콜 끊기면 더 두려워"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저 앞에 물 있잖아요. 어제는 12개를 먹었어요.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치솟은 11일 오전,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에 음료를 배달하던 김 모(56)씨의 오토바이 앞 바구니에는 빈 페트병이 한가득 쌓여있었습니다.

오전 7시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김 씨는 "밤에 페트병들을 분명 버렸는데, 벌써 이만큼 쌓였다"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유쾌하게 더위를 떨쳐내려고 애쓰는 그도 폭염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 정지신호를 받고 도로 위에 잠깐 서 있을 때 뙤약볕과 아스팔트의 열기에 승용차가 뿜어내는 열기까지 더해져 아찔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마치 불구덩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머리가 핑 돌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필사적으로 물을 들이켜며 버텼습니다.

벌이가 잘 안 되는 날엔 더욱 힘이 빠집니다.

애써 웃던 김 씨도 "오늘따라 배달주문이 잘 안 잡힌다"고 말할 땐 미간에 주름이 잡혔습니다.

나흘간 200건 이상 배달하면 배달의민족으로부터 추가금을 받는 '미션'을 수행 중이기에 압박감은 더욱 커 보였습니다.

물가는 치솟는데 배달 기사에게 1건당 지급되는 기본 배달료는 지난 4월 서울 지역 기준으로 3천 원에서 2천500원으로 인하됐다고 합니다.

2019년부터 배달을 해왔다는 김 씨는 "예전보다 일은 1.5배로 하는데 돈은 그때보다 못 버는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배달 기사들의 열악한 처우는 수치로도 드러납니다.

정홍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에서 일하는 배달 기사 1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한 달에 평균 293만1천 원을 벌어들였고, 오토바이 유지비용과 플랫폼에 지불하는 수수료 등 업무상 지출 비용을 모두 제하면 월 140만 5천 원가량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한 달 평균 21.4일, 출근일마다 약 17.8시간을 앱에 로그인해 일한 결과입니다.

1년 전과 비교해 수입이 줄어들었다는 응답률은 59%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이날 점심시간까지 12건을 배달했다는 김 씨에게 쉼터에서의 휴식은 사치나 다름없었습니다.

불볕더위가 본격화되는 정오 무렵 그는 다음 배달을 위해 다시금 오토바이에 올랐습니다.

그의 웃옷엔 벌써 소금기가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더운 것과 일이 없는 것 중에 무엇이 더 힘드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답을 내뱉고는 바삐 배달길에 올랐습니다.

"더워도 콜이 많은 게 낫죠. 먹고살아야 하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배달이 적은 게 두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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