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50년 전 세상 놀라게 한두 바위그림…반복된 '침수' 설움 떨칠까

50년 전 세상 놀라게 한두 바위그림…반복된 '침수' 설움 떨칠까
▲ 선명하게 보이는 반구대 암각화 속 동물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우리 고고학계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연이어 발견된 두 바위그림, 즉 암각화 때문이었습니다.

1970년 12월 24일 동국대 불교 유적 조사단은 울산 울주군 천전리 일대에서 동심원, 마름모 등 기하학적 문양을 비롯해 수많은 명문(銘文)이 새겨진 바위를 발견했습니다.

약 1년 뒤인 1971년 12월 25일에는 천전리 암각화로부터 약 2㎞ 떨어진 곳에서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 사냥 모습이 생생히 담긴 바위그림을 찾아냈습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여 온 기록이었습니다.

그제(1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표목록에 이름을 올린 국보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등장이었습니다.

특히 50마리가 넘는 고래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담긴 반구대 암각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흔적'으로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성과 달리 반구대 암각화는 오랜 기간 '문화유산 분야의 아픈 손가락' 혹은 '비운의 문화유산'으로 여겨졌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선물과도 같았던 소중한 유산을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댐이었습니다.

1965년 대곡천 하류에 사연댐이 들어선 뒤, 반구대 암각화는 많은 양의 비가 내릴 때마다 불어난 하천물에 잠겼다가 다시 물 밖으로 노출되기를 반복했습니다.

거의 60년째 이어지는 침수로 문화유산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컸습니다.

사연댐은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형태의 댐이어서 비가 많이 내려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상류의 암각화까지 잠길 수밖에 없는 구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암각화가 침수되기 시작해 57m가 넘으면 완전히 잠깁니다.

길게는 5∼6개월 가까이 물에 잠기는 데다, 빗물에 떠내려온 각종 오물에 뒤덮이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일각에서는 '물고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2014년부터 사연댐의 물을 추가로 방류하는 방식으로 댐 수위를 낮게 유지하는 '응급 대책'을 펼쳤으나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았습니다.

생태 제방 축조, 차수벽 설치 등 여러 대안이 나왔고 '가변형 임시 물막이'(카이네틱 댐) 구조물 건설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초기 단계에서 기술적 결함이 발견돼 중단됐습니다.

문화유산 보존과 지역 식수원 관리 간 갈등이 불거진 건 특히나 뼈아픈 부분입니다.

국가유산청과 문화 관련 단체는 '문화유산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게 우선'이란 입장이었으나, 울산시는 식수 확보를 내세우면서 대립이 상당 기간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물꼬가 트인 건 2021년이 되어서입니다.

정부는 반구대 암각화 발견 50년을 맞아 암각화가 더는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사연댐에 15m 폭의 수문 3개를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 국가유산청, 울산시 등을 주축으로 한 실무협의회가 구성됐고, 사업비 약 640억 원을 확정해 '사연댐 안전성 강화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수문 설치는 당초 계획보다 늦어져 2030년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구대 암각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당분간 유네스코에서도 다뤄질 전망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측은 '반구천의 암각화'를 신규 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을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개발 계획에 대해 세계유산센터에 알릴 것"을 권고 사항에 포함했습니다.

공사 주요 공정이나 단계별 상황, 암각화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공개해야 하는 셈입니다.

국가유산청은 "'반구천의 암각화'가 가진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충실히 보존하는 한편, 지자체 및 지역 주민과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