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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이 형이랑 밥 먹다 같이 지었어요"…작곡가 이하느리가 제목 짓는 법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작곡가 이하느리

사진 : 이하느리 유튜브 채널
요즘 주목받는 19살 작곡가 이하느리를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서 만나봤습니다.

이하느리는 지난해 바르토크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한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음악 친구로도 알려져 있죠. 이하느리는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공연과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에서 1주일 사이로 잇따라 신곡을 발표했는데요, 마음에 드는 단어나 문장을 메모장에 모아두고, 그때그때 작품 제목으로 골라 쓴다고 합니다. 작곡가 이하느리의 범상치 않은 창작 방식에 대해 들어보고, 임윤찬이 연주한 'Round and velvety-smooth blend...'를 함께 감상해 봅니다. 
 

김수현 기자 : 이번에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말고도 예술의전당에서 최수열 지휘자가 하는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에서도 신곡을 발표하잖아요. 그 곡은 국악과는 관련이 없고.

이하느리 작곡가 : 관련이 없어요.

김수현 기자 :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에서 원래 현대음악을 많이 연주하시더라고요. 공연 기획 자체가 그런 거라서. 거기서는 어떤 곡을 하세요?

이하느리 작곡가 : 타악기와 앙상블을 위한 작품을 발표하고 타악기 솔로 주자로는 김은혜 선생님과 같이 하게 되는데, 이번 주부터 리허설 시작이라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 악기가 몇 가지 나오나요?

이하느리 작곡가 : 타악기 솔로와 10명인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길이가 얼마나 돼요?

이하느리 작곡가 : 10분 정도, 딱 적당한 길이. 원래 최수열 선생님이 요청하신 건 조금 길었는데 선생님이 저에게 자유를 주셨어요. 그래서 10분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려서 (웃음) 좋았습니다. 
이하느리

김수현 기자 : 제목이 뭐예요?

이하느리 작곡가 :  ‘As if……I’. 저는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단어가 있으면 메모장에 모아두고, 곡을 쓰기 전에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제목이 이거랑 어울릴 것 같아' 그러면 그 제목을 붙이는 식으로 제목을 짓거든요. 알파벳 모양도 신경을 쓰는데, 이번에 쓴 곡이 원래 적어놨던 'As if'라는 단어와 잘 맞을 것 같아서.

김수현 기자 : 어떤 면에서요?

이하느리 작곡가 : 알파벳 모양이요. 

김수현 기자 : A와 f가 양쪽에 딱 서 있고 (웃음) 어떤 면에서 맞는 건가요? 

이하느리 작곡가 : 그냥 직관적으로. 그리고 이 작품이 제가 계속 쓰던 아이디어와 조금 다른 작품이에요.

김수현 기자 : 어떤 식으로?

이하느리 작곡가 : 아이디어가 발현하는 방식 자체가, 새로운 걸 써보자는 생각으로 썼기 때문에. 제목도 종류가 있거든요. 제가 자주 쓰는 것을 할 때 쓸 수 있는 제목들이 있고, 다른 것을 할 때 쓸 수 있는 제목들이 있어요.

김수현 기자 : 단어들을 분류해놨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그 메모장을 보고 싶습니다. (웃음)

이하느리 작곡가 : 지금 다 떨어져서 제목이 몇 개 안 남았어요 (웃음) 빨리 모아야... 

김수현 기자 : 주로 어디서 모으세요? 

이하느리 작곡가 : 책에서 볼 때도 있고, 시집을 읽는 걸 좋아하던 때가 있었는데 시에서 가져오기도 하고.

박재현 기자 : 라틴어 많이 쓰지 않아요? 글씨가 멋있고.

이하느리 작곡가 : 다 폐기한 작품들인데 (웃음) 저는 한동안 불어 제목을...

김수현 기자 : 왜요? 불어가 멋있어서?

이하느리 작곡가 : 그랬던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였으니까. 그러다가 너무 겉멋 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웃음) 그런 것 상관없이, 지금은 일본어로 짓기도 하고.

김수현 기자 : 작년에 바르토크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셨잖아요. '현기증' 

이하느리 작곡가 : 'Vertigineux'. 'Vertigo'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쓰니까 형용사로 바꾼 거였어요. 불어인데, 전에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갈아엎어서 만든 거였거든요. 

이전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Vertigo'에 대한 거였어요. 그래서 'Vertigo'가 두 번째 작품 부제였는데 이미 폐기했고요. 그 아이디어도 거의 완성된 아이디어니까 제목을 다시 짓지 않고 그냥 이거 써야겠다 해서 썼습니다.

김수현 기자 : 지금 아이디어라고 하신 건 어떤 아이디어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하느리 작곡가 : 재료. 조직이나 주가 되는 콘셉트. 그걸 제가 아이디어라고 해요.

김수현 기자 : 작업하는 과정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는 과정인가요?

이하느리 작곡가 : 네. 머릿속의 생각은 지금 할 수도 있고 걸어 다닐 때 할 수도 있고 잘 때도 자주 하고, 그걸 꺼내는 작업이죠.

김수현 기자 : 꺼내는 작업도 일필휘지로 되지는 않잖아요. 모차르트는 굉장히 빨리 썼다는 얘기가 있는데 머릿속에 있던 게 후루룩 나온 거고, 베토벤은 계속 고쳐 썼다고 하잖아요.

이하느리 작곡가 :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쓰는 것은 어렵지 않거든요. 근데 물리적으로 악보가 다르니까 조금 오래 걸리긴 하죠.

김수현 기자 : 편성이 커질수록 더 오래 걸리나요?

이하느리 작곡가 : 네, 맞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현대음악 악보는 기호도 특별하고 못 보던 것이 많던데,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가 알고 있는 기호로는 표현할 수 없을 때도 있잖아요.

이하느리 작곡가 : 그렇기 때문에 다른 특수 주법을 쓰거나.

이병희 아나운서 : 나만의 기호를 새롭게 만들어요? '이렇게 표시한 건 이렇게 해달라.'

이하느리 작곡가 : 보편화된 기호도 있고, 악보 표기에 대해서 '이건 이거다' 정해지지는 않았어요. 일단 리허설 하기에 효율적인 표기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고, 직관적일수록 연주자들은 보기 편한 것 같아요. 리허설 시간도 단축할 수 있고. 저도 사보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쓰는 노테이션(표기법)들이 좀 정리가 된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작곡가들마다 노테이션들이 조금씩 다르겠네요.

이하느리 작곡가 : 네, 많이 달라요.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 현존해 있는 음악가의 곡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있을 때 하는 게 제일 좋겠네요.

이하느리 작곡가 : 아무래도 그렇죠.

김수현 기자 : 그래야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니까, 아무리 적어서 전달한다 해도.

이병희 아나운서 : 보니까 악보에 설명도 많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진은숙 선생님이 서울시향에서 연주할 때, 리허설을 취재하러 카메라 기자와 같이 갔거든요. 새우깡 상자 같은 데 종이가 있는데 그걸 다 구겨서 쓰는 거였어요. 그게 이를테면 악기잖아요. 근데 카메라 기자가 쓰레기인 줄 알고 '새우깡 상자 치워라' 한 거예요. 진은숙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안 돼요!' (웃음)

이병희 아나운서 : 새로운 소리를 찾아야 되니까 기존의 악기를 여기도 뜯어보고 여기도 긁어보고 하시겠네요. 집에 악기가 많으세요?

이하느리 작곡가 : 아니요, 많진 않아요. 현악기가 있고 피아노가 있고 플루트가 있고 한데, 그런 주법들은 이미 너무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걸 악기에서 찾는 작업은 요즘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공연할 때 신곡을 같이 연주했잖아요. 제가 통영에서 뵀거든요. 끝나고 나서 작곡가가 현장에 있으니까 올라오라고 해서 무대에서 같이 인사해서 '임윤찬 씨가 형님 같았다' 이런 얘기들이. 그렇게 현장에서 작곡가로서 관객들한테 직접 인사하는 일이 많이 있나요?

이하느리 작곡가 : 그때는 초연이 아니었지만, 초연 때는 보통 인사해요.

김수현 기자 : 얼마 전에 유튜브에 올리셨더라고요. '라운드 앤드 벨브티-스무드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 이거는 어디서 나온 제목이에요?

이하느리 작곡가 : 윤찬이 형과 같이 정한 제목이에요. 밥을 먹다가 그런 문구가 써 있어서 '이거 제목 할래?' '좋은 것 같다' 해서 그냥 그렇게 정했어요.

김수현 기자 : 위스키 선전에 나올 것 느낌도 있어요. (웃음)

박재현 기자 : 저 곡도 그렇고, 몇 곡 들어봤는데 '네오 로맨틱'이라고 분류하는, 조성이 있지는 않은데 낭만주의 음악에서 쓰일 법한 울림들이 자주 등장해서, 현대음악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걸 타깃으로 쓰신 건 아니죠?

이하느리 작곡가 : 그건 아니었고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들, 그리고 골드베르크 프로그램도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게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저런 작품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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