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키프예곤의 '브레이킹 4' 도전은 실패인가 성공인가

초시계가 4분을 넘어서고, 6초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흘러갔습니다. 전광판에 4분 6초 42를 확인했을 때, 처음 든 기분은 허무함과 실망감 그 사이 어디쯤. 페이스 키프예곤은 그 자리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뱉어냈습니다. '4분 벽'은 여전히 너무 높아 보였습니다.

키프예곤 '브레이킹 4' 도전

기자회견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그곳 공기는 제 마음과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키프예곤은 세상 밝은 표정으로 입장했고, 사람들은 뜨겁게 환호했습니다. 위로나 격려는 없었습니다. 대부분 기자들은 "축하한다"는 인사로 질문을 시작했고, 키프예곤은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답했습니다.

키프예곤 '브레이킹 4' 도전

혼란스러웠습니다. '실패한 게 아니란 건가? 도대체 어째서?'

4분 안에 1마일을 뛰겠다는 키프예곤의 도전을 처음 들었을 때, 불가능한 시도라고 봤습니다. 자신의 세계 기록(4분 7초 64)을 7초 이상 당겨야 하는데, 이는 지난해 수립한 1,500m 세계 기록(3분 49초 04)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한 채, 마지막 109m를 10초 안에 뛰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나름의 기준을 미리 세웠습니다. 목표 기록과 자신의 세계 기록, 그 중간쯤. 그러니까 4분 3초 안쪽이 성공, 그 바깥쪽은 실패, 이 기준에 따르면 키프예곤의 도전은 명백한 실패였지요.

30분가량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홀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했습니다. 키프예곤이 벅찬 표정으로 마지막 질문에 답을 마쳤을 때,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저도 일어나 양손이 뜨거워지도록 박수를 쳤지요. '인지부조화'였습니다.

키프예곤 '브레이킹 4' 도전

그날 밤,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다수는 키프예곤의 도전을 '실패'로 보지 않았습니다. 키프예곤은 "나의 멘토 킵초게 역시 첫 도전에선 '2시간 벽'을 깨지 못했지만 마침내 깬 것을 교훈으로 삼겠다. 오늘은 배우는 과정이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키프예곤이 자신의 세계 기록보다 1초 22나 빨리 달린 데 의미를 뒀습니다. 남자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을 받았고,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특수 경기복과 키프예곤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스파이크가 기록 단축에 영향을 줬지만 누구도 성과를 깎아내리는 근거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키프예곤 '브레이킹 4' 도전

그러니까 이 모든 건, 머지 않은 미래, '4분 벽'을 깨는 여성이 나오는 그 순간을 향한 과정이며, 이번 시도로 인해 그 시점은 앞당겨졌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실패한 레이스'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키프예곤은 첫 바퀴를 1분 0초 02에, 두 번째 바퀴를 2분 0초 75에 돌았고, 세 번째 바퀴는 살짝 페이스를 당겨, 3분 0초 22에 주파했습니다. 이 속도를 유지했다면 4분 벽을 깰 수도 있었습니다.

키프예곤 '브레이킹 4' 도전

하지만 마지막 바퀴를 도는 데 1분 6초가 넘게 걸렸습니다. 페이스 조절에 완전히 실패한, 시쳇말로 '막판에 퍼진' 레이스입니다. 프로 선수가 마지막 랩타임을 기존보다 6초 이상 늦게 달리는 전략을 세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3바퀴를 돌았을 때, '사점'이 찾아왔을 거라 예상합니다. 심장이 요동치고, 극한의 고통 속에 마지막 한 바퀴를 뛰었을 겁니다.

'실패한 레이스'를 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키프예곤이 얼마나 이 도전에 진심이었는지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그는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이 4분 벽을 깨는 건 어렵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역산해 추정해 보면, 키프예곤은 자신이 가능한 최고 기록을 내는 대신, 마지막 순간까지 4분 벽 돌파를 꿈꿨던 것으로 보입니다. 첫 3바퀴를 살짝 늦추고, 스퍼트를 내는 전략을 세웠다면 4분 4초~5초까진 가능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다음 날, 그에게 레이스 전략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걸 쏟아냈어요. 그리고 이제 케냐에 돌아가 제 레이스를 분석할 거예요. 연구하고 개선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4분 벽을 깰 거라 확신합니다."

흔한 수사로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고 하죠.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최선을 다해 도전했다면, 그래서 교훈을 얻었다면 실패라 마침표를 찍기엔 이른 게 아닐까. 실패에 너무 엄격한 우리 사회가, 도전의 벽을 스스로 높이고 있는 건 아닌가. 결국 브레이킹 4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도전 정신'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키프예곤 '브레이킹 4' 도전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