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가족과 저녁시간을 보낼 때, 눈치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그냥 두지 못할 때가 많다. 가끔 아이가 "누구야? 아빠 또 일해야 돼?"라고 물을 때마다 핸드폰을 덮고 뒤돌아서지만, 여전히 집에 오면서 일을 끊어내지 못한 채 그대로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 직업적 특성도 있겠지만, 이미 나에겐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The Right to disconnect)'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명 '퇴근 후 카톡 금지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퇴근 후 업무에 관한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필자의 경우는 사실 본인이 원해서 연락을 받는 것도 있지만, 문제는 끊어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연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건 오래전이다. 경기연구원이 2021년 11월 경기도 거주 노동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87.8%가 퇴근 후 업무 연락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2023년 3월 직장갑질119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5%가 퇴근 이후 직장에서 전화나 SNS 등을 통해 업무 연락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임시직은 69.2%,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은 66.3%로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더 많았다.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근무시간이 아님에도 쉴 권리를 침해받고 있으며, 법과 제도는 조직문화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업무시간 외 연락은 직장 내 괴롭힘과 결합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정말 급하거나 업무상 중요한 연락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누군가를 괴롭힐 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자 또는 전화를 퍼붓는다. 아래는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다.
야간 근무 끝나고, 잠을 자야 하는데 끊임없이 울리는 카톡 소리에 잠을 자기 힘들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응답을 안 한다는 이유로 단톡방에서 강퇴당했습니다. 저는 기계가 아닙니다. 잠을 자고, 먹기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23년 3월, 이메일)
퇴근 이후 연락은 기본이고, 주말에도 업무를 하지 않으면 카톡을 계속 보내고, 공식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하라고 압박을 줍니다.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시달리는 것이 지쳐 퇴사를 하고 싶습니다. (23년 5월, 이메일)
심지어 사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에서도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휴일에 연락을 잘 받는 것으로 공식화하기도 했다. 공공기관도 이러한데, 사기업은 심하면 더 심했지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통용되는 조직에 가깝지는 않을 것이다.
저는 OO부 O급 공무원입니다. 상급자가 퇴근 후 혹은 공휴일에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를 공론화시켜 국과장회의에서 언급이 되었고, 주변 사람에게 제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데 이것도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을까요? 결국 회의에서는 공휴일에도 전화 잘 받아야 하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23년 3월, 카카오톡)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실근로시간 단축의 일환으로 휴식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하여 퇴근 후 카톡 금지법, 즉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현재 국회에도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으나, 보장 방식, 금지 범위, 제재 여부 등에 대한 쟁점이 있다.
게다가 아니나 다를까 아직 시행도 하기 전에 조직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 자발적으로 야근을 해서 성과를 높이려는 이들에게는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주5일제를 시행할 때 재계에서 반대 목소리를 냈던 것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 누가 주5일제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과 성과가 둔화되었다고 하겠는가.
이미 다른 나라는 조금씩 형태는 다르지만 '연결되지 않을 권리'와 관련된 법과 제도가 시행 중이다. 2016년 프랑스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 최초 입법 이후 2018년 스페인, 2022년 벨기에, 포르투갈, 2024년 호주, 그리고 이탈리아,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에서 입법화되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