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 방화 60대 구속기소 "테러 준하는 살상행위"…CCTV 공개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8시 42분, 여의도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5호선 열차가 1.6km의 한강 하저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승객들 사이로 흰색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열차 가운데 칸인 4번 칸에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백팩 안에서 페트병을 꺼냈습니다.
남성은 페트병에 든 노란 액체를 바닥에 쏟아부었습니다.
휘발유였습니다.
6.8m가량 바닥에 퍼진 기름에 놀란 승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서로 부딪치며 옆 칸으로 뛰었습니다.
한 임신부는 달리다 휘발유에 미끄러져 넘어졌습니다.
신발 한 짝을 포기하고 기어서 겨우 도망치던 무렵, 이 모든 소동에 무심한 듯 방화범은 라이터로 휘발유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시간은 불과 20초였습니다.
불길은 삽시간에 번져 4번 칸을 집어삼켰습니다.
임신부가 2∼3초만 늦게 도망쳤어도 몸에 불이 붙을 수도 있었습니다.
자칫 대형 참사로 번질 뻔했던 지난달 31일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의 아찔한 순간은 서울남부지검이 25일 공개한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방화범 원 모(67)씨는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살인의 의도가 명확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문이 닫힌 지하철 구조상 화재 및 유독가스 확산으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481명(인적 사항이 특정된 승객은 160명)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지하철 내장재가 불연성 소재로 교체돼 불길이 옮겨붙지 않았고, 승객들이 신속히 대피한 덕분입니다.
일부 승객들은 비상 핸들을 작동시켜 열차를 비상 정차시킨 후 출입문을 열어 유독가스를 외부로 배출했고, 객실 내 비치된 소화기로 잔불을 껐습니다.
검찰은 "화재 재연 실험 결과 급격하게 화염이 확산하는 휘발유 연소 특성상 승객 대피가 늦었다면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기관사도 승객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대피로 안내를 했습니다.
열차를 빠져나온 승객들은 지하터널을 걸어 나와 목숨을 건지게 됐습니다.
성숙한 시민 의식도 돋보였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자기 한 몸 챙기기도 쉽지 않은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몸이 불편한 노약자를 부축하거나 업어서 대피를 돕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4번 칸에 뛰어 들어가 소화기로 불을 끈 시민들이 대표적입니다.
출퇴근하던 경찰관 4명은 방화범 검거에 일조했습니다.
이들은 방화를 저지른 후 옆 칸에 쓰러져있던 원 씨를 일반 승객으로 인식하고 들것에 실어 여의나루역까지 이송했습니다.
그의 손에 그을음이 많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추궁한 끝에 현행범 체포까지 이르렀습니다.
(사진=서울남부지검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