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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출 나오면 버려"…'폭탄 떠넘기기'로 수십억 빚

<앵커>

몇 년 전, 지식산업센터 투자 열풍이 불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 여기에 돈이 많이 몰렸었는데 그 뒤에 경기 침체로 분양이나 임대가 여의치 않자 사기 사건도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저희 취재 결과, 최근 분양대행사 직원들이 교묘한 수법으로 사무실을 여러 개 떠넘기고 수십억 원의 대출 빚까지 사람들한테 떠안게 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김민준 기자, 박수진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김민준 기자>

경기도에 있는 한 지식산업센터입니다.

지식산업센터 분양 사기 관련

50대 A 씨는 지난 2021년 3억 원대의 사무실을 분양받았는데 잔금이 부족해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분양대행사 직원으로부터 잔금 문제를 처리해 주겠다는 솔깃한 제의를 받았습니다.

[A 씨 : 한 세 차례 갔어요, 처음에.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다가 이제 뭐 합법적이라는 얘기도 수차례 하고…]

그가 제시한 방법은 '부가세 환급'을 이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지식산업센터 같은 사업용 사무실을 사면 이전 주인이 낸 부가세를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무실 여러 개를 넘겨받은 뒤 부가세를 환급받아서 부족한 잔금을 치르라고 했다는 겁니다.

당시 상담 내용입니다.

[대행사 직원 : 환급받을 수 있는 부가세가 (한 물건당) 976만 원 이거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부족했던 잔금은 4천여만 원.

그가 확보해 놓은 사무실 5개만 넘겨받으면 환급받을 부가세로 잔금을 충분히 치를 수 있다는 겁니다.

A 씨가 만일 5개 사무실을 다 떠안았다가 잘못되면 어떡하느냐고 하자 그 직원은 이렇게 안심시킵니다.

[대행사 직원 : 저랑 약속된 내용은 (잔금 내시고) 등기 치시는 게 아니라 그저 부가세 수익만 빼고 실입주 기업들 대상으로 명의 변경이잖아요.]

여러 개 사무실이 필요한 기업을 섭외해 놨는데, A 씨가 받은 사무실들을 모두 그 기업에 넘길 수 있다며 거듭 안심시킵니다.

[투자자 : 안전한 거에요?]

[대행사 직원 : 실입주 기업들이 사라지는 거 그리고 제가 사라지는 거 이거 두 개 말고는 (위험할 게) 없습니다.]

다만, 중도금 대출까지는 받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대행사 직원 : 중도금 대출이 실행이 안 된다, 그럼 내가 받을 수 있는 부가세가 0원이라는 소리와 똑같습니다.]

결국, A 씨는 5개 사무실을 더 받았고, 중도금 대출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안을 받은 건 A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B 씨 : (부가세) 9천200만 원을 (환급)받게 해주고 잔금을 치를 수 있게 도와주겠다 이런 식으로 한 거죠.]

B 씨도 부가세 환급을 미끼로 무려 11개 사무실을 떠안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A 씨가 중도금 대출로 떠안게 된 빚은 9억 2천만 원.

B 씨는 무려 20억 원의 대출 빚을 떠안게 됐다는 겁니다.

[B 씨 : 나중에는 연락 두절이 되고 엄청 힘들죠. (법원에서) 지급 명령 날아오기도 하고, 월급도 이미 다 가압류된 상태이고, 퇴직금까지 다 (잡혀 가지고...)]

이런 식으로 이 분양대행사 직원들이 경기도 양주의 한 지식산업센터에서만 떠넘긴 사무실이 무려 150여 개.

분양대금 600여억 원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박수진 기자>

A 씨와 B 씨 두 사람에게 떠넘겨진 사무실은 무려 16개나 됩니다.

그런데, 이 사무실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요?

저희가 B 씨에게 사무실 2곳을 넘긴 30대 청년을 어렵게 만나봤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 역시 잔금이 부족해 고민하던 중 같은 분양대행사 직원이 비슷한 방식을 설명하며 접근했었다고 말합니다.

[30대 남성 투자자 : 부가세 환급금을 3천만 원을 받으려면 4개 호실이 필요하다. 이거를 나중에 실입주 기업한테 전매를 하면 된다.]

그렇게 청년이 떠안은 지식산업센터 사무실은 총 8개.

그런데 이 중 2개 사무실에 대한 중도금 대출이 어려워졌고, 대행사 직원은 이런 제안을 해왔다고 합니다.

[30대 남성 투자자 : (8개 사무실 중) 2개가 (중도금 대출) 부결이 났어요. 이거는 (다른 사람에게) 전매를 해주겠다.]

중도금 대출이 막히면 또 다른 사람에게 사무실을 다시 넘기는, 일종의 '폭탄 떠넘기기'입니다.

[대행사 직원 : 만약에 (중도금 대출이) 부결 나면 아버님이나 어머님께 드렸던 것처럼 다른 분으로 명의 변경 해드리는 거고…]

이 20대 여성도 사무실 4개를 떠안았는데, 2개가 중도금 대출이 막히자 대행사 직원이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다고 합니다.

[20대 여성 투자자 : (4개인데 2개는 중도금 대출이 나왔고, 2개는 안 나왔고.) 네, 그게 그분에게 간 거에요.]

분양대행사 직원들이 이렇게 폭탄 떠넘기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분양대행사는 분양 실적에 따라 시행사로부터 일정한 수수료를 받습니다.

대행사 직원들은 분양률을 높이려고 이렇게 폭탄 떠넘기기를 하는 것이고, 여기에, 중도금 대출까지 받으면 수수료를 더 받는다는 겁니다.

[대행사 전 직원 : 중도금 대출이 실행되면 그때 시행사에서 대행사에 나머지 3~5% 수수료를 내리는 거예요.]

대행사 직원들이 서로 주고받은 SNS입니다.

사무실을 떠넘기고 중도금 대출이 나오면 그냥 버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대행사 직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부했고, 대신 서면 답변을 통해 "입주할 기업이 정해져 있다거나 전매를 약속한 일이 없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분양대행사 대표도 "전매를 약속한 일은 없던 걸로 알고 있으며, 만일 있었다면 일부 직원들의 일탈로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답했습니다.

경찰은 이들이 다른 지식산업센터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폭탄 떠넘기기를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최대웅, 영상편집 : 윤태호, 디자인 : 조수인·박태영·서승현·장예은·이연준,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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