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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처럼 북한도?"…미국의 '북폭 계획' 현실화되기 어려운 이유 [스프]

[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미, '북폭' 세 가지 방안 고려했었다

영변 핵시설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전격적으로 폭격하면서 북한에도 이런 사례가 적용될 수 있을지 짚어보는 관측들이 많습니다. 북한의 핵 문제는 이란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란의 사례가 북한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이란은 핵을 개발하는 중이므로 핵무기가 없었던 반면,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개발해 각종 미사일에 장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선제공격할 경우 북한도 핵미사일로 반격할 것이기 때문에 핵무기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감안하면 북한 폭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이었다면 북폭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요?


1994년 당시 '북폭' 현실적으로 논의됐다
북한에 대한 폭격이 실제로 현실적인 군사적 선택지로 등장한 때가 있었습니다.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당시입니다.

1993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으로 표면화된 북핵 위기는 점점 악화해 1994년 6월에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북한과 IAEA, 미국과의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면서 외교적 해법은 점차 힘을 잃게 됐고, 군사적 행동 즉 북폭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퇴임 후 기술한 자서전 'My Life'를 보면, 이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전쟁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N코리아 정식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자서전 ʻMy Life'

미국은 실질적인 군사적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1994년 5월 18일 윌리엄 페리 당시 미 국방장관은 미군의 전 4성 장군들을 펜타곤의 비밀 회의실로 소집해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고, 한 달쯤 뒤 다시 소집된 회의에서는 한반도 전쟁과 관련한 세부 사항들이 게리 럭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에 의해 보고됐습니다.

1994년 6월 14일 열린 미국의 장관급 회의에서는 영변에 대한 폭격 방안이 처음으로 논의됐습니다. 당시 미국은 북폭 방안으로 세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영변의 재처리 시설만 공격하는 방안, 둘째, 재처리 시설과 함께 5메가와트 원자로 등 영변의 다른 핵시설도 공격하는 방안, 셋째, 영변의 모든 핵시설과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을 함께 파괴하는 방안.
N코리아 정식 북한의 영변 핵시설


미국의 '북폭' 계획 현실화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1994년의 북핵 위기는 당시 방북했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타협점을 찾아내면서 진정됐지만, 당시 카터의 역할이 없었다고 해도 미국의 북폭이 현실화되기 어려운 조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제임스 레이니 당시 주한 미 대사가 한국에 체류 중인 미국 민간인들을 철수시키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의 북폭이 임박했다는 생각에 레이니 대사에게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적혀 있는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면 그 즉시 우리 남한도 북한의 포격으로 초토화됩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있는 한 전쟁은 절대 안 되고 가족 등 미국인들의 소개도 안 됩니다. 지금 바로 클린턴 대통령에게 연락해 내 이야기를 분명히 전하세요. 나는 한국군의 통수권자로서 우리 군인 60만 중에 절대 한 사람도 동원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이 우리 땅을 빌려서 전쟁을 할 수는 없어요. 전쟁은 절대 안 됩니다."

-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중에서
N코리아 정식 김영삼 전 대통령

아무리 미국이라도 한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를 수는 없습니다. 한국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한반도로의 병력 증강 등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고, 한국 체류 미국인들의 철수 또한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국 대통령이 한국군에게 미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 전쟁을 수행하라고 할 때 작동하는 것이지, 한국 대통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미군 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어떤 대통령도 '선제공격 통한 한반도 전쟁' 결정하기는 어려워
그렇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왜 이렇게 강력하게 북폭에 반대했을까요. 회고록에도 적혀있듯이 한반도에서의 선제공격은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반도 전쟁이 초래하는 결과를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을 통해 한반도 전역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초토화됐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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