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이 영화 속 사건, 지명, 인물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영화 '신명'은 오프닝 크레딧을 통해 앞으로 시작될 이야기가 허구임을 명시한다. 그러나 이런 고지는 그저 법적인 보호막일 뿐이라는 듯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과 사건을 대놓고 재현한다.
여타 정치 다큐멘터리처럼 품위 있는 척, 객관적인 척하지 않는다. 제작진은 문제적 영화임을 자처하며 거침없는 풍자와 조롱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는데 집중한다. 또한 오컬트 정치 스릴러라는 혼종 장르를 내세워 창작과 묘사의 폭을 넓혔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 김석일(주성환)과 주술에 심취한 그의 영부인 윤지희(김규리)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인터넷 언론 기자 정현수(안내상)가 그들의 비밀과 비리를 추적한다. 허구의 매체인 영화에서 현실에 거울을 들이댄 것 같은 강력한 기시감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신명'은 모큐멘터리(Mockumentary) 영화다. 모큐멘터리는 허구의 내용을 마치 실제 상황인 것처럼 보이도록 제작한 영상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말로 통용되기도 한다. 이는 관객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높인다. 다만 다큐의 톤으로 진행되는 만큼 관객이 실제인 것처럼 오해할 소지도 있다.
이태원 참사를 연상케 하는 사건을 보여주고 이 참사의 배경으로 영부인의 주술 행위를 제시한다. 또한 대통령이 관저를 옮기고도 3개월 후에나 들어간 행동은 액운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한다. 실제 사건으로 몰입감을 높인 뒤 음모론에 가까운 상상력으로 긴장과 충격의 강도를 높이는 식의 전개다.
인물을 다루는 방식도 거칠다. 영화가 초점을 맞춘 건 윤명자에서 윤지희로 이름을 바꾸고 영부인의 자리에까지 오른 한 여성의 드라마틱한 인생이다.
윤지희는 어린 시절 '분신사바' 사건을 시작으로 주술에 심취하게 된다. 성인이 된 뒤에는 남자를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형으로 얼굴을 바꾼 뒤 이름, 학력, 신분까지 위조한다. 그녀의 의심스러운 과거 행적과 현재의 비밀스러운 행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근거로 악마화한다. 또한 이런 행위가 개인의 종교 활동이나 일탈이 아닌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줬다는 설정이다.

특히 영화는 중, 후반부에 이르러 영부인과 대통령이 심취해 있다는 일본의 종교와 주술 의식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이때 오컬트라는 장르적 특징을 부각하며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강조된다.
영화의 구성에서 후반부는 아주 중요하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해소의 카타르시스로 이어지는 이 구간에서 '신명'은 오컬트 장르의 분위기를 적극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진실 추적에 집중하던 정치 다큐로서의 색깔은 희미해지고 소재주의와 선정성이 강화된다. 영화의 완성도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신명'은 최근 약 10년간 개봉한 모큐멘터리 영화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개봉 3주 만에 전국 7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제작비 15억 원이 투입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약 30만 명. 개봉 10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넘긴 이 영화는 투자 대비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며 여전히 극장가에서 순항 중이다. 현재의 흐름이 4주 차까지 이어진다면 '마의 100만' 돌파도 가능하다.
"완성도로 보는 영화가 아니"라는 관람객의 평가에는 이 작품을 둘러싼 대중의 환호에는 영화 외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적 혼란, 검찰에 대한 불신, 언론의 무능 등으로 지친 대중들에게 이 영화의 날것의 통쾌함을 선사했고, 이는 상업적 성공으로도 이어졌다.

발 빠른 기획과 실행의 승리다. 영화는 지난 3월 14일에 촬영을 시작해 48일 만인 4월 30일 촬영을 마쳤다. 반드시 21대 대통령 선거 전에 개봉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반영돼 영화는 대선 전날인 6월 2일에 개봉했다.
'신명'은 '열린공감TV' 산하 열공영화제작소가 제작, 배급한 영화다. 영화 전문 제작사 아닌 유튜브 채널 기반의 언론이 영화 제작에 나선 케이스다. 뉴스타파와 뉴스공장도 정치 다큐멘터리를 만든 바 있어 특기할 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신명'의 경우 확실한 차별화를 이뤄냈다.
'열린공감TV'는 20대 대선 후보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떠오르고 있을 때 처음으로 '쥴리 의혹'을 보도한 곳이기도 하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오랜 취재로 이름을 알린 매체가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취재 기록을 기반 삼아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어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지 관심이 집중됐다. 정권 교체 이후 위축된 보도 여건으로 인해 차마 다루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이번 영화를 통해 밝힐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열공영화제작소는 팩트 기반의 드라이한 보도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단적 상상력으로 점철된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노선을 정했다.
물론 영화가 제시하는 극단적 상상력을 모두 진짜라고 받아들이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저주의 굿판을 벌이는 후반부 윤지희의 발악을 보면서도 놀랍지 않은 건 '현실이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영화보다 더 자극적인데?'라는 생각이 다수의 머릿속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라는 매체는 창작을 기반으로 하며, 창작에는 성역도 경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성에 집중한 빠른 공정만큼이나 영화의 완성도에도 공을 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기획의 성취과 영화의 도구화가 남긴 씁쓸한 뒷맛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