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산시성(陝西省) 고고연구원이 발표한 발굴 조사 보고서에 공개된 사진. 묘지석 뚜껑돌 탁본.
약 1천200년 전 중국 당나라에 머물렀던 신라 왕족의 무덤이 발굴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죽은 이의 이름, 신분 등을 기록한 묘지(墓誌)가 온전히 남아 있어 향후 연구가 주목됩니다.
오늘(16일) 학계에 따르면 중국 산시성(陝西省) 고고연구원은 시안(西安)시 옌타(雁塔)구의 'M15호' 무덤을 발굴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최근 공개했습니다.
이 무덤은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長安·시안의 옛 명칭)성에서 북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과거 도굴 피해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2022년 6월 진행한 조사에서 돌로 된 묘지를 비롯해 80여 점의 부장품이 새로 확인됐습니다.
연구원 측은 출토 유물과 묘지에 새겨진 글자 등을 토대로 "당나라에 신라 출신의 '질자'(質子)로 있던 김영(金泳)의 무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질자는 외교적 관계를 위해 상대국에 보내는 군주나 유력 대신의 자제를 뜻합니다.
중국 현지에서 발굴 조사를 거쳐 신라 왕족 출신 인물의 무덤이 확인된 건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구원 측은 "(묘지) 비문을 통해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해졌다"며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최초의 사례여서 가치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무덤 주인의 삶을 기록한 묘지는 무덤 방 입구 안쪽에서 발견됐습니다.
묘지의 가로·세로 길이는 약 38㎝로 정사각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덮개(뚜껑) 돌과 몸통 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위·아래가 합쳐진 채로 나왔습니다.
공개된 탁본 사진을 보면 덮개돌 윗면에는 '대당고김부군묘지명'(大唐故金府君墓誌銘)이라고 9자를 새겼고, 주변 부분은 구름과 보상화무늬로 장식돼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몸통 돌에는 총 557자를 새긴 것으로 파악됩니다.
보고서를 검토한 김영관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언론 통화에서 "첫 줄에 '당 신라국 고 질자 번장 조산대부 시위위 소경 김군 묘지명'(唐新羅國故質子蕃長朝散大夫試衛尉少卿金君墓誌銘)이라고 새겨 무덤 주인의 출신과 관직, 성씨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고대사 및 금석학 전문가인 김 교수는 공개된 탁본 사진을 본 뒤 "무덤 주인은 747년에 태어나 794년 5월 1일에 향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황궁의 무기와 의장을 담당하던 시위위에서 이주민, 상인 등을 관리하고 공물 등을 주관하던 외국인 출신 관원인 번장 직무를 맡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그의 묘지는 중국에서 정식 발굴로 출토된 최초의 신라인 남자 귀족의 묘지"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발굴 조사 내용이 공개되자 국내 학계에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간 신라 출신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묘지가 중국에서 나온 바 있으나 무덤과 함께 명확하게 확인된 건 처음입니다.
학계에서는 묘지에 기록된 가족 관계를 특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무덤 주인인 김영의) 조부는 신라에서 와서 황제를 숙위(宿衛)하던 김의양으로 돼 있는데, 신라 국왕의 당형(堂兄·사촌 형)으로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의양은 당에서 세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이 김영의 부친이라고 전합니다.
숙위는 우호 관계를 위해 파견된 인사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당나라에 상주하는 외교사절로서 임무하며 양국 간 문물을 교류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김 교수는 "김영 무덤과 묘지명은 8세기 신라와 당 사이의 외교 관계와 인적 교류를 증언해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안정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김영은 질자 임무를 계승한 것으로 전하는데, 신라 출신이 질자를 세습해 온 사례는 기존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안 교수는 "신라 왕족 출신으로서 3대에 걸쳐 질자를 세습하며 대(對)신라 외교 임무에 참여하기도 했던 가문 사례를 뚜렷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역시 김영의 묘지가 "문헌 기록에서 찾기 어려웠던 역사의 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하 교수는 묘지와 함께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도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무덤에서는 흙으로 만든 각종 동물과 사람 형상 조각, 탑 모양을 한 항아리, 금속 화폐인 개원통보(開元通寶) 등이 나온 바 있습니다.
그는 쥐, 토끼, 뱀 등 십이지신상이 나온 점을 언급하며 "중국식의 작은 문인·무인상과 함께 나왔다는 점을 보면 두 문화의 조화도 주목된다"고 말했습니다.
보고서는 연구원이 펴내는 학술지 '고고여문물'(考古與文物) 최신 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진=김영관 교수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