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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안 쓴다던 그 나라들…슬금슬금 돌아오는 이유 [스프]

[오그랲]

원전



안녕하세요? 데이터를 만지고 다루는 안혜민 기자입니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을 보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원전 기업들이 힘을 받는 모양새입니다. 원전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한다는 소식이 연이어 나오고 있고요. 11일(현지시간)엔 미국의 대표적 원전업체인 오클로가 한국의 한수원과 기술 개발을 위해 MOU를 체결, 공군 기지 전력 공급을 따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역대 최대인 28% 폭등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워런 버핏, 빌 게이츠 같은 큰 손들도 투자를 이어오고 있죠.

한편, 독일과 이탈리아 등 탈원전을 선택했던 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주목해 볼만합니다. 체르노빌 사고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 유럽 국가들에게 원전의 위험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런데도 탈원전을 선택한 유럽 국가들이 다시 원전으로 돌아서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요? 오늘 오그랲에서는 5가지 그래프를 통해 원전의 화려한 귀환과 차세대 원전 SMR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탈' 탈원전에 나서는 전 세계 국가들
유럽은 체르노빌 사고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는지라 오랫동안 탈원전의 선두주자였습니다.

그런 유럽이 지금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탈원전 국가인 이탈리아는 1990년 마지막 원자로가 폐쇄된 지 35년 만에 다시 원전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벨기에도 22년 만에 탈원전 정책을 접었고,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불리는 덴마크도 40년 만에 정책을 뒤집었습니다. 스위스, 스웨덴, 크로아티아 등 다른 유럽국가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사실 유럽의 탈 탈원전은 지난 2022년 그린 택소노미 발표 때 이미 예정된 거였습니다.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에 '친환경' 딱지를 붙여줬죠. 탈원전 대표주자 독일은 원전의 위험성과 폐기물 문제를 지적하며 반대했지만 유럽의 원전 대국 프랑스에선 원전의 탄소 배출이 적은 점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EU에선 당장 급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원전과 천연가스를 받아들였죠.

탈 탈원전의 속도를 가속시킨 건 최근 발생한 두 사건 영향이 큽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최근 발생한 유럽 정전 사태가 그 주인공이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유럽 국가들에 에너지 안보 문제가 심화됐습니다. 유럽 각국은 탄소 중립 목표를 지키면서 동시에 에너지 공급 안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어요. 친환경 에너지도 좋지만 여전히 변동성이 커서 안정적이지 못한 약점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최근 스페인을 비롯한 대규모 정전 사태까지. 정전 사태의 원인이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재생에너지에 그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페인 당국과 전력 회사들은 이번 정전 사태가 재생에너지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바로 반박을 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건 프랑스와 맞붙었던 독일마저도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겁니다. 최근 독일의 메르츠 총리가 프랑스 측에 손을 내밀었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이제 더 이상 원자력을 재생에너지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프랑스 입장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친 원전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미국은 훨씬 더 많은 지원이 원전을 향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동되는 원전은 모두 94개인데요, 규모만 보면 원전 대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친원전 국가라고 얘기하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아주 오래전에 지은 것들이기 때문이죠.

사실 미국은 1979년에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를 겪고 난 이후 지난 46년 동안 단 2개의 원전만 추가할 정도로 신중했어요. 이곳에 위치한 보글 3호기와 4호기가 그것들이죠. 그런 미국이 다시 원전 종주국이 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에 원전 관련 4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말이죠.

원전 승인을 가속화하고, 실험용 원자로에 대해선 규제도 완화하고, 원자력 규제 위원회도 개편하고, 산업 투자도 확대해서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량을 현재의 4배로 늘릴 계획입니다.

유럽은 여전히 체르노빌의 상처가 가시지 않았고,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를 겪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왜 탈원전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으로 돌아간 걸까요?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엄청난 피해를 본 일본마저도 탈원전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원전에 대한 위험성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전 세계가 확 바뀐 이유가 뭘까요? 그 중심에는 차세대 원전이라 불리는 SMR이 있습니다.


SMR이 불러올 원전 르네상스?
SMR, 풀어보면 Small Modular Reactor로 소형 모듈형 원자로라는 뜻입니다. 기존의 원전과 비교해서 크기가 작고 모듈로 만들어서 현장에서 조립하는 원자로가 바로 SMR입니다.

우리나라가 개발 중인 혁신형 SMR의 부지 규모를 보면 축구장 넓이 수준에 불과합니다. 가장 최근 상업운행을 시작한 한울 원전부지와 비교하면 무려 570배 차이가 나죠. 일반적인 원전은 용량이 1,000메가와트인데 이렇게 작은 SMR은 300메가와트 이하입니다.

애초에 기존의 원전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전력 생산의 경제성을 높이려고 대형화되었어요. 산업화가 고도화되고 그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하지만 대형화된 원전은 사고가 날 경우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는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체르노빌이 그랬고, 후쿠시마가 그랬듯이요.

하지만 SMR은 소형이고 모듈형이라는 특징 때문에 기존 대형 원전 대비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어요. 또 기존 사고에서 반복되었던 인간의 실수를 막기 위해 SMR에는 능동형 안전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죠. 기존 대형 원전 대비 안전성도 높아졌죠, 또 소규모 모듈이나 보니 부지도 적게 차지하죠. 원전의 저탄소 특성에 더해 안전성까지 갖춰진 SMR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다시 원전을 선택하는 거죠.

앞서 살펴본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돌아선 주요 국가들이 하나같이 얘기하는 게, SMR을 짓고 SMR에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당장 독일도 기존의 대형 원전을 재가동할 계획은 없고 SMR에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고, 스웨덴도 SMR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어요.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ARIS라는 걸 만들어서 전 세계 국가들이 어떤 SMR을 설계하고 만들려 하는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스템에 등록된 SMR은 모두 123종입니다. 그중 미국이 30종으로 가장 앞서있어요. 미국 뒤에는 러시아가 22종으로 2위를 차지했고 프랑스와 일본이 13종으로 공동 3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바로 그 뒤인 5위입니다.

SMR도 1등인 미국은 일찍부터 SMR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해 왔어요. 2010년 오바마 정부에선 SMR을 저탄소 원자력에너지로 따로 구분해 지원했는데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SMR을 기존의 대형원전과 분리해 '대체 에너지'에 포함시켰죠. 바이든 정부 시절에도 이러한 투자는 이어집니다. 탄소 중립과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한 혁신 기술로 SMR를 설정해 투자와 지원을 꾸준히 해왔어요. 거기에 트럼프의 4종 행정명령까지 더해진 거죠.

정부의 지원과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SMR 기업에 대한 주가도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SMR 상용화에 앞서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뉴스케일 파워는 지난 연초와 비교하면 10배 이상 올랐어요. 또 다른 SMR 종목인 오클로 역시 주가가 쭈욱 오르고 있죠.

SMR의 주가 상승에는 정부 발 호재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빅테크의 투자죠.


AI 기업들이 SMR에 투자하는 이유
AI 인프라에 빠져서는 안 될 것, 바로 전력이죠. 지난 GPU 편에서 다루었듯이 GPU가 워낙 전력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GPU가 가득 찬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크게 늘 수밖에 없어요. AI 주도권 싸움에서 빅테크들이 승기를 잡으려면 전력을 확보하는 게 필수입니다.

AI 개발도 개발이지만, 동시에 기업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환경 규제를 지켜야 합니다. 이를테면 데이터센터 전력의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식으로요. 하지만 기존의 에너지로는 AI 발전과 탄소 감축, 이 두 개를 같이 가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구글의 탄소배출 현황입니다. 구글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런데 생성형 AI 붐이 시작된 이후 탄소배출량이 급증했죠. 그 결과 목표치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2023년 탄소배출 목표치는 6.2 메가톤이었는데, 실제 배출량은 14.3 메가톤으로 계획 대비 130% 이상 넘어버렸죠.

구글만 그런 건 아닙니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AI 개발 투자가 늘어난 이후 탄소 배출량이 30% 늘어났어요.

빅테크들이 원전 특히 SMR에 투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원전은 다른 화석 연료와 비교해서 탄소 배출량도 적으니 탄소 감축 목표도 달성하고 또 재생에너지와 비교해서 훨씬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니 데이터센터용 에너지로는 알맞은 거죠.

AI 기업들에게 전력 확보는 사활을 거는 일이 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심지어 스리마일섬 원전과 20년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1979년에 사고가 난 건 원전 2호기였는데, 사고 이후 원전 1, 2호기 모두 중단되었다가 1호기만 재가동되었어요. 재가동된 1호기도 2019년에 결국 운영이 중단됐는데, 이걸 되살릴 정도로 긴급했던 거죠.

마이크로소프트뿐 아니라 주요 테크 기업들은 최근 1년 사이에 원전과 관련된 발표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요.

가장 최근엔 메타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을 맺은 콘스텔레이션과 20년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구글은 카이로스파워라는 SMR 기업과 협력했습니다. 카이로스파워는 SMR 설계 초기부터 구글의 AI를 기반에 두고 전력 최적화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아마존은 에너지 노스웨스트와 계약을 체결했고요, 에너지 노스웨스트의 SMR에서 만든 전력 구매 권리를 얻었습니다. 아마존은 2030년대부터 자신들의 데이터센터에 이 SMR에서 구매한 전력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앞서 살펴본 오클로는 오픈AI와의 끈끈한 인연이 유명하죠. 오클로의 이사회 의장이 바로 오픈AI의 샘 올트먼입니다. 2014년부터 올트먼이 투자한 오클로는 2027년 SMR을 상업화하기 위해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올트먼이 오클로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는데요, 일각에서는 이게 오픈 AI와의 본격적인 협업 준비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을 피하기 위한 선제 조치라는 해석인 거죠.


SMR과 함께, 대한민국 AI 도약 가능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원전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일단 새롭게 들어설 정부는 AI 인프라 투자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AI 데이터 클러스터도 만들어야 하고요, 또 GPU도 5만 장 사 와서 AI 데이터센터에 투입될 예정이죠. 이러한 인프라가 실제 작동하려면? 당연히 많은 전력이 필요하겠죠.

현재 대한민국 에너지 상황을 살펴보면 원전이 30%에 재생에너지는 10%에 못 미칩니다. 석탄, LNG 등 화석연료가 60%가 넘는 상황입니다. 지난 정부가 세운 11차 장기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원전 비중은 2038년까지 35.2%로 확대될 계획입니다. 또한 최소 1기의 SMR을 포함해서 신규 원전도 들어설 예정이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SMR 예산도 편성해서 정책적, 재정적 재원을 집중했습니다.

문제는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다는 거죠. 일단 지난 대선 토론에서 이재명 당시 후보는 대형 원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안전성을 지적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원전을 없애야 한다고 얘기한 건 아닙니다. 단순히 탈원전으로 가거나 혹은 아예 원전 중심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죠.

AI 발전을 위해 인프라도 늘리고, 또 그로 인해 늘어난 에너지 수요를 화석연료로 늘릴 순 없을 겁니다. 그러면 선택지는 재생에너지와 원전뿐이죠. 일단 이재명 대통령은 SMR에 대한 투자와 연구 의지를 꾸준히 밝혔습니다.

우리나라는 SMR 분야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ARIS에서 대한민국은 총 9개의 SMR을 등록해서 전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고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SMART100은 지난해 설계 안전성을 인정받아 상용화 첫 단계를 통과했습니다. SMR 도입을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에 한국의 SMR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SMR 개발해서 우리나라에 지으려고 해도, 일단 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텐데요. 원전을 지으려면 EPZ라는 걸 설정해야 합니다. EPZ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으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방사선 누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구역이에요. 현재 대한민국의 EPZ는 대형 원전 기준 최대 30km입니다. 이 기준대로라면 AI를 연구하는 산업단지 근처에 배치하기가 까다롭겠죠.

참고로 미국에선 SMR에 맞춰서 비상계획구역을 탄력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규제를 변경했거든요. 일단 원안위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고려한다고 하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핵폐기물 문젭니다. 이건 조금 더 복잡해요. SMR은 태생적으로 기존 원전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중성자가 튀어나와 더 많은 핵폐기물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동일한 전력 생산에 대형 원전보다 SMR이 많게는 30배 더 많이 생성된다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연구도 있죠. 물론 업계에서는 최근 설계에서 개선된 지점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긴 합니다만, 문제는 우리나라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 쌓여있는 핵폐기물이 거의 포화 직전이거든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고리원전은 사상 처음으로 사용 후 핵연료 저장률이 90%를 넘겼고, 한빛원전은 2030년이면 포화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방폐장 부지 선정을 못하고 있고 늘어나는 핵폐기물을 임시로 발전소에 쌓아두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SMR을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보다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습니다. SMR이 기존 원전보다 안전하기에 대안이 될 것이라는 것, 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SMR 도입이 필요하다는 건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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