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와인과 페어링>의 저자 임승수 작가가 와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소믈리에는 와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다. 주로 레스토랑, 호텔, 와인 바 등에서 일하며 손님에게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위해 산지, 품종, 생산자, 빈티지 등 와인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음식과 와인의 조화에 대한 깊은 이해도 요구된다.
소비자는 소믈리에의 도움을 통해 방대한 와인 리스트 앞에서 느끼는 부담을 덜고, 자신의 취향이나 식사 메뉴에 어울리는 와인을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음식과 와인의 조화를 고려한 추천을 통해 식사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와인에 대한 이해도 함께 넓어진다.
하지만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무슨 와인이 좋을지, 과연 고른 와인이 음식과 어울릴지, 하나부터 열까지 막막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소믈리에 출장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럴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도구가 있다. 바로 챗GPT다.
챗GPT는 세계 각국의 와인 생산지, 포도 품종, 양조 방식, 빈티지 차이, 생산자별 특성은 물론이고, 음식과의 페어링, 서빙 온도, 디캔팅 여부 등 실전에서 필요한 실무 지식까지 폭넓게 학습했다. 지식량으로만 따지자면 마스터 소믈리에 뺨치는 수준이다. 이름이 어려운 이탈리아 토착 품종이나 한정 생산 내추럴 와인, 오래된 빈티지의 특이한 기후 조건까지도 설명할 수 있으며, 초보자를 위한 쉬운 설명부터 애호가를 위한 심화 정보까지 폭넓게 제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24시간 상시 대기 중인 소믈리에라는 점에서, 그 편의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챗GPT를 어떻게 소믈리에처럼 활용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상황별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오늘 온 가족이 삼겹살 구이를 먹을 예정인데 어떤 와인이 좋을까?

삼겹살은 이미 해동 중이고, 상추와 마늘도 넉넉히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와인이 문제다. 막상 곁들일 만한 와인이 집에 없다. 마트에 가서 하나 사 올까 싶지만,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지 막막하다. 고기니까 레드 와인? 돼지고기는 화이트 와인이 낫다는 말도 들은 것 같은데… 뭘 고르지? 이럴 때야말로 챗GPT 앱을 구동해서 음성 대화 기능을 켜고 물어보면 될 일이다.
"너 와인 좀 알지? 한국인의 소울푸드 삼겹살 구이를 먹으려고 해. 그런데 어떤 와인을 곁들여야 좋은지 모르겠어. 네가 몇 가지 추천해 줄래? 실패하면 구독 취소할 거야!"
그러면 챗GPT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삼겹살처럼 기름진 돼지고기에는 산도가 살아 있는 와인이 잘 어울려요. 예를 들어 화이트 와인인 독일 모젤 지역의 드라이 리슬링은 고기의 느끼함을 깔끔하게 잡아주고, 상큼한 과일 향이 입맛을 돋워줍니다. 같은 화이트 와인 중에서는 샤르도네도 좋은 선택이에요. 고소한 삼겹살의 풍미와 잘 어울리고, 입안을 산뜻하게 정리해 줘서 전반적인 밸런스를 잡아줍니다.
레드 와인을 원한다면 이탈리아의 산지오베제를 추천할 수 있어요. 산도가 높고 탄닌은 부드러워서 삼겹살의 기름기와 잘 어울리고, 마늘이나 고추 같은 양념과도 조화를 이룹니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칠레산 피노 누아, 프리미티보, 또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도 괜찮아요. 그리고 한 가지 팁! 와인을 살짝 차갑게 칠링 해서 마시면 삼겹살과의 조화가 훨씬 더 좋아집니다."
선물로 들어온 와인이 있는데, 어떤 음식하고 먹어야 하지?
라벨에 뭔가 잔뜩 쓰여 있는데, 와인 문외한 입장에선 외계어 같다. Gewürztraminer? 이건 사람 이름인가, 회사 이름인가? 길쭉하니 병은 멋져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맛이고, 뭘 곁들여야 하는지도 감이 안 잡힌다. 괜히 잘못 먹었다가 와인만 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도 든다. 챗GPT 음성 대화 기능을 켜고 카메라로 병 라벨을 비추며 물었다.
"이거. 무슨 와인이야? 나 그냥 삼겹살이랑 먹으려고 하는데… 괜찮은 선택이야?"
챗GPT는 화면 속 라벨을 순식간에 알아보더니, 마치 전문 소믈리에처럼 조곤조곤 설명을 시작했다.
"이 와인은 Hugel Classic Gewürztraminer예요.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자인 위겔(Hugel) 가문에서 만든 와인이죠. 위겔은 1600년대부터 알자스에서 와인을 만들어온 명문 생산자예요. 특히 게뷔르츠트라미너, 리슬링, 피노 그리 같은 아로마틱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죠.
이 와인의 품종인 게뷔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는 향이 아주 풍부한 화이트 와인입니다. 리치, 장미, 열대 과일 같은 향이 특징이고, 단맛이 은근히 있으면서도 도수가 높은 편이에요. 산도는 낮고 향이 강해서, 담백한 음식보다는 향신료가 강하거나 매운 음식, 또는 부드럽고 향이 있는 치즈와 잘 어울립니다. 예를 들어 태국식 커리, 인도식 버터치킨, 김치찜, 중국식 마라 요리처럼 풍미가 복합적인 음식과 함께하면, 와인의 향이 음식과 어우러지며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어요. 단, 회, 샐러드, 소금구이 삼겹살처럼 향이 약하고 깔끔한 음식과는 잘 어울리지 않으니 주의하세요."

때는 2024년 2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있는 한 태국 음식점. 챗GPT의 고견을 받아들여 와인을 들고 방문했다. 윤슬이 보일 듯 반짝이는 연노랑 게뷔르츠트라미너가 잔 속에서 일렁인다. 코를 대고 숨을 들이켜는데, 감귤 느낌의 신선한 과실 향에 은은한 연기 향이 피어오른다. 한 모금 머금으니 적당히 떫은 타닌과 연기 뉘앙스 사이로 은은한 단맛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거 기대 이상인걸?
와인과 만나 침이 가득 고인 구강이 어서 빨리 음식을 투척하라고 재촉한다. 마침 와인과 비슷한 색을 띤 푸팟퐁커리가 눈앞에 먹음직스럽게 놓여있다. 바삭바삭 아삭아삭 튀겨진 작은 게를 집어 들어서 연노랑 커리에 푹 담가 웅덩이 물처럼 고여 있는 침 위에 덩그러니 올려놓았다. 와우! 부드러운 튀김옷 안에는 치아가 약한 어린아이도 무리 없이 씹어댈 수준의 앙증맞은 바삭함이 숨어 있다. 커리 특유의 향신료 향이 게뷔르츠트라미너의 개성 있는 타닌, 매캐한 연기 향, 은은한 단맛과 끝내주게 어우러진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