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우리 회사는 병가가 없다며 상담을 원하는 전화를 종종 받는다. 예전 회사에서는 병가가 있었는데, 지금 다니는 곳은 개인 연차휴가를 사용해서 병원에 가야 한다며 신고할 수 없냐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노동관계법령에는 병가를 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기계적인 대답과 함께 혹시 모르니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을 찾아보라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법적으로 병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연차휴가, 출산·육아휴가 등은 법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만, 병가는 회사의 규정에 따라 보장 여부가 결정된다. 즉, 주면 좋은 거고, 안주면 어쩔 수 없는 그런 휴가다.
실제로 직장인의 38.4%는 유급휴가를 못 쓴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2025.2, 직장갑질119) 유급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된 공무원이나 교사 등 공공기관종사자들은 어떠할까? 2022년 전교조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중 55%가 아파도 병가를 쓸 수 없었다고 답했다.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병가를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다.
병가와 관련한 직장 내에서의 차별, 괴롭힘도 많다. 아래는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들이다.
아침에 하혈을 해서 급하게 당일 연차를 사용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얼마 후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당일 내원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관리자에게 오후에 반차를 사용하겠다고 하자 미리 계획된 연차가 아니니 안된다고 했습니다. 아파도 미리 계획을 안 했으니 안된다니요. (24년 6월 카카오톡)
괴롭힘으로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입어 중증 우울 진단으로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규정상 병가는 무급이니 유급휴가를 줄 수 없다고 하는데, 저는 무급으로는 쉴 수가 없습니다. (24년 5월 카카오톡)
과도한 업무로 정신과 소견서를 받아 병가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대표는 다들 그렇게 일하는데 왜 문제냐며 그냥 출근하라고만 합니다. (24년 5월 카카오톡)
몸이 좋지 않은데 남은 연차가 없어 진료확인서와 함께 병가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관리자는 검토 후 판단하겠다며 시간만 끌고 있습니다. 회사 재량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신청건은 검토 없이 승인하고 어떤 신청건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시간을 끄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병가 승인을 해야 할 관리자가 괴롭힘 가해자인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24년 5월 카카오톡)
왜 우리는 아프면 아프다고, 쉬겠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울까. 아직까지 노동자가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낮은 이유가 한 몫한다. 관리자나 직장 동료로부터 눈치를 보고 핀잔을 들으면서 병가를 쓰는 것보다 그냥 참고 일하는 게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편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산재는 일하다 다쳤기 때문에 보호받을 수 있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질병이나 사고까지 사업주나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 코로나19 때, 우리는 코로나에 걸려 아파서 쉬는 동안 소득의 일부를 국가로부터 보전받았다. 이른바 상병수당이라고 부른다. 몇몇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잠깐 시행했었는데, 당시 왜 지급하냐는 의문은 없었다. 오히려 상병수당을 지급받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만 있었다. 코로나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한다고 했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으며, 이번 대선 공약으로 얼핏 나오긴 했으나 이 역시 지켜봐야 한다.
세계 184개국 중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인하여 경제활동이 불가한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 코로나19 당시 시범적으로 시행한 적이 있음)이 없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하여 11개국에 불과하다고 한다.(2020, 민주노동연구원) 특히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낮은 153개국이 유급병가 또는 상병급여를 시행 중이라고 한다. OECD 국가 중에서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모두 없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이 유일한데, 미국은 각 주별로 유급병가를 법으로 의무화하는 하는 추세라고 한다. 사실상 유일하게 한국만이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인한 소득 손실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