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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정상화의 열쇠…'숙청된 실력자' 중에 있다 [취재파일]

KAI 정상화의 열쇠…'숙청된 실력자' 중에 있다 [취재파일]
▲ 현역 중장 시절 강구영 KAI 사장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

2022년 9월 K방산 항공우주 분야의 절대강자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제8대 대표이사에 강구영 예비역 공군 중장이 임명됐을 때 국내외 방산업계는 경악했습니다. "아무리 수출입은행이 대주주라지만 김용현 경호처장의 절친이라는 이유로 항공우주산업 문외한을 KAI 사장에 앉힌 것은 정권의 폭력이다", "예비역 장군의 염치 없기가 이 정도인가"라는 국내 방산업체들의 쓴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아프리카 군부독재 국가에서나 나옴직한 인사가 한국 방산에서 벌어졌다"는 해외 방산업체들의 논평은 뼈아팠습니다.

김용현 군부의 일원으로 통하는 강구영 사장을 필두로 전 공군 인사장교, 전 국정원 간부 등 항공우주산업과 무관한 낙하산들이 KAI를 쥐락펴락한 오늘의 결과는 3년 전 예상대로입니다. '천재일우(千載一遇)' 폴란드 잭팟을 맞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 등은 비상했지만 KAI의 매출과 주가는 나홀로 옆걸음질입니다. 국산 전투기의 상징과도 같은 FA-50은 껍데기만 국산이고, 알맹이는 미국제가 됐습니다.

임기를 90% 이상 채운 강구영 KAI 사장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사퇴 의사만 밝힌 것이지, 사임한 것은 아닙니다. 차기 대표이사가 선임될 때까지 대표이사직을 유지합니다. 만나자는 해외 방산업체 대표는 없지만 이달 중순 프랑스 파리 에어쇼에 참석한다는 전언입니다. KAI 강구영 체제는 새로운 대표이사를 세워야 종료됩니다.

KAI 창사 이래 26년간 비전도 전문성도 없는 낙하산 사장들이 KAI를 어떻게 망쳐놨는지 방산업계는 잘 알고 있습니다. KAI의 제9대 대표이사를 골라야 하는 시점입니다. 지긋지긋한 낙하산이 또 내려올지, 아니면 KAI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항공우주산업 전문가가 취임할지 방산업계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진짜 대한민국'을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많습니다. "어떤 인물을 KAI 대표이사에 앉히는지를 보면 이재명 정부의 K방산 공약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는 전망이 방산업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강구영의 2022년 숙청…그 속에 열쇠 있다


강구영 KAI 사장은 김용현과 임관 동기입니다. 김용현은 작전본부장으로, 강 사장은 군사지원본부장으로 합참 근무도 함께 했습니다. 둘은 절친으로 알려졌습니다. 강 사장은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예비역들의 성명에도 매번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2022년 9월 5일 KAI 제8대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강 사장은 취임 사흘만인 2022년 9월 8일 방산업계의 어안을 벙벙케 하는 기행을 벌였습니다. 태풍 힌남노와 난마돌이 몰아쳐 KAI 조립동 지붕이 뜯겨 나갈까봐 전전긍긍하던 긴박한 시점이었습니다. KAI의 내밀한 실태는 고사하고 KAI 사천 본사 내 지리도 몰랐을 텐데 군사작전 하듯 부사장 2명, 전무 2명, 상무 1명을 전격적으로 내쫓았습니다. 고정익과 회전익 개발, 경영 관련 책임자들이 해고자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KAI 강구영 체제의 1차 숙청입니다.

경남 사천 KAI 본사 조립동

같은 해 연말 1차와 비슷한 규모로 2차 숙청이 벌어졌습니다. 수출을 책임지는 임원 등이 잘렸습니다. KAI 핵심 관계자는 "2022년 넉달 동안 KAI의 실력자, 선수들을 숙청한 다음부터 강구영 친정 체제가 굳어졌다"고 말했습니다. 2023년 말, 2024년 말에도 임원 여럿을 해고했는데 이때는 숙청이라기 보다는 연말 정기인사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2022년 강구영 사장에 의해 쫓겨난 10명 남짓의 전직 임원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KAI 핵심 관계자 말마따나 실력자와 선수가 그들 중에 있습니다. KAI 차기 대표의 자리는 항공우주산업 실력자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K방산의 위상을 봐도 그렇고, 또 그래야 이재명 정부의 K방산 공약에도 부합합니다.

숙청된 실력자들 중 숨은 진주는?


2022년에 숙청된 KAI 임원들 중에는 KF-21과 FA-50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정익 실력자, 수리온의 전설을 쓴 회전익 실력자, 수출과 경영 실력자 등이 망라됐습니다. 어떤 이는 강구영 사장으로부터 오전 회의 중 "그동안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는 치하를 듣고 오후에 문자 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KAI에 꼭 필요한 인물임에도 광주 대동고의 호남 딱지가 붙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었습니다. 언론의 하마평에 오른 탓에 미운털 박혀 쫓겨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KAI의 정상화를 바라는 방산업계의 의견을 취합해 보면 '실력자 중의 실력자'의 자격은 몇 가지 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손병호 배우의 '접기 게임' 룰을 적용하면 실력자를 분별하기 쉽습니다. 숙청된 임원들 중에서 낙하산 타고 내려온 적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접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접을 사람은 실적 나빠서 해임된 적 있는 사람입니다. 해고 이후 다른 방산기업에 픽업되지 못한 사람도 아쉽지만 KAI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접을 대상입니다. KAI의 고질병인 낙하산 줄타기의 명수도 반드시 접어야 합니다. 이렇게 접다보면 항공기를 속속들이 알고, 정치 놀음과 거리를 둔 항공우주산업 실전 전문가가 우뚝 남습니다.

KAI 대표이사 자리를 노리는 대선 캠프 출신들이 제법 많다는 말이 들립니다. 문지방 닳도록 민주당을 들락거리는 KAI 전직 임원 이름도 나옵니다. 과거와 다름없이 정치 낙하산을 노리는 이런 구악들도 당연히 접어야 합니다. 제9대 대표이사마저 무능한 낙하산이 차지하면 이재명 정부의 방산 공약은 시작부터 공수표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방산업계는 적임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는 방산업계에서 지혜를 빌릴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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