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새벽 당선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한 연설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평화롭고 공존하는 안정된 한반도"를 만들겠다면서, "남북 간에 대화하고 소통하고 공존하면서 서로 협력해서 공존, 공동 번영하는 길을 찾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보다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안보"라고 강조했습니다. 단절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에 적대적이었던 북한
북한은 윤석열 정부에 대해 적대적이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 2개월 만에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선제타격 시도 시 윤석열 정권은 전멸'할 것이라고 비난한 데 이어, 윤석열 정부의 대북 구상인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는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비아냥대기도 했습니다. 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는데, 김여정은 '그 인간 자체가 싫다' '천치바보' 같은 막말을 늘어놓았고, 2023년 5월에는 윤 전 대통령 허수아비 화형식을 했다는 북한 매체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북한은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남북관계의 완전 단절을 원하는 듯한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2022년 8월 김여정은 담화에서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북한이 남북관계의 완전한 단절을 원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2023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는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적대적 2국가론'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에서의 정권교체가 남북관계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북한이 극도의 거부감을 가졌던 윤석열 정부가 물러나고 윤석열 정부와는 대북정책 방향이 다른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만큼, 완전한 단절 상태에 처해 있는 남북관계가 다시 개선될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번 대선 이틀 뒤인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 당선 사실을 짧은 두 문장으로 보도했습니다.
북, '진보 세력'에 대해서도 실망 표시

하지만, 북한이 2023년 말부터 내세우고 있는 '적대적 2국가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한에서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복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23년 말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로 고착됐다고 주장하면서, 남한 내 보수 세력뿐 아니라 진보 세력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표시했습니다.
"역대 남조선의 위정자들이 들고 나온 《대북정책》, 《통일정책》들에서 일맥상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의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이었으며 지금까지 괴뢰 정권이 10여차나 바뀌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의 통일》 기조는 추호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 그 명백한 산증거이다. 총비서 동지께서는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하시면서"
<2023년 말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보도>
<2023년 말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보도>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이라는 문구에서 '민주'라는 단어는 문맥상 남한의 진보 세력을 의미합니다. 남한 내 진보 세력이든 보수 세력이든 북한에서 볼 때는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는 의미인데, 이는 북한이 남한 내 진보 세력에 대해서도 보수 세력만큼이나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 이는 북한의 '2국가론'이 진보 보수 정권을 망라한 남한 정권 전반에 대한 북한의 실망에서 나온 것이지, 남한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북한이 '진보 정권'에 실망한 이유
그렇다면, 북한은 왜 남한의 진보 정권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표시했을까요?
사실 진보 정권의 대북 포용 정책도 북한에 부담이 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진보 정권의 포용 정책도 궁극적으로는 교류와 접촉으로 북한을 변화시켜 남북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식량 지원이 급하고 남한의 여타 물자 지원이 달콤했기 때문에 북한은 한때 남한의 손길에 끌려 나왔습니다. 점점 더 남한에서 돈이 들어가면서 잠시 자본주의의 마력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관계가 경색되기도 했지만, 진보 정부 집권 시 재개될 대북 지원과 북미 협상에서의 남한 활용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를 아예 닫아놓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엄격해지면서 남한에 진보 정부가 집권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기 남북관계에 큰 비중을 두는 듯했지만, 일부 인도적 대북 지원은 몰라도 북한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인프라 지원 등은 전혀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유엔의 대북제재는 상수로 존재하는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라면 남한에서 어떤 정부가 집권해도 북한이 얻어갈 것은 별로 없는데, 남북관계의 유지는 한류의 전파로 북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굳이 남북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권교체 됐다고 북한 대남정책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듯
북한이 이런 중장기적 고민 끝에 남북관계의 완전한 단절을 결정한 것이라면, 남한에서 진보 정권이 집권한다고 해서 대남정책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재명 정부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유엔의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선상에서 운신할 수 있는 대북정책의 폭은 크지 않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최근 밀착 또한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을 가질만한 유인을 적게 만듭니다. 급한 대로 필요한 것은 러시아를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 보면 남한뿐 아니라 미국과도 관계 개선을 할 필요가 크지 않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