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계엄과 탄핵을 거치면서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지만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만큼 다시 힘차게 달려나가야겠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대선 토론에서는 한 가지 키워드가 유독 자주 언급됐습니다. 바로 AI였죠. 오늘 오그랲에서는 우리나라가 AI를 위해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해야할지, 주변 국들의 상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아시아 AI의 허브를 노리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국가들의 정책을 살펴보고,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통해 우리나라 AI 정책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고민해보겠습니다.
AI로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중국
첫 번째 국가는 중국입니다. 뭐 사실 중국은 누가 뭐래도 AI 글로벌 2위 강국으로 우뚝 서 있죠. 중국은 아시아 1위를 넘어서 글로벌 1위를 노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모든 정보 기능을 감독하는 국가정보국장실이라는 데가 있어요. 지난 3월에 미국 정보공동체들이 모여서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CIA, FBI 같은 정보기관 18곳이 정보를 모아서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들을 분석한 겁니다.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를 살펴보면 중국 AI에 대한 언급이 상당합니다.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는 내용부터, "203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AI 강국이 되려 한다.", "이미 중국은 음성 인식과 이미지 인식 등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등 이미 중국이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평가가 단순히 정보기관의 과대평가라고 보기도 어려운 게 젠슨 황도 인터뷰에서 중국이 뒤에 있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뛰어난 AI 기술력을 갖추게 된 배경엔 중국 정부의 엄청난 투자와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5년에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전략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당시 리커창 총리는 기존의 노동집약적인 중국 제조업에서 벗어나 기술집약적인 제조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AI에 대한 언급이 처음으로 담겨 있었어요. 이 때를 기점으로 중국은 꾸준히 AI 개발에 투자를 이어오고 있고요.

중국 AI 정책의 핵심은 ‘인재’에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80년대부터 이공계 교육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는데요.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에 많은 인재를 배출해 오고 있습니다. 2020년 중국의 STEM 졸업생 수는 357만 명으로 인도, 미국을 제치고 1등을 기록하고 있죠. 이렇게 배출된 많은 이공계 인재들은 AI 연구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오그랲 첫 번째 그래프로 살펴보겠습니다.

세계적인 AI 연구 인력들의 이동 흐름을 분석한 매크로폴로 데이터가 있습니다. 2019년 중국은 최상위급 AI 연구자는 전 세계에서 10%, 상위급 연구자는 29% 정도를 배출했습니다. 2022년엔 그 수치가 각각 26%, 47%로 급증했어요. 이들은 중국에서 활동하며 중국 AI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죠.
기술 인재의 중요성을 중국 정부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중국 기업들도 AI 인재를 육성하고 영입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사례가 화웨이입니다. 화웨이는 매년 선전에서 ICT 경진대회를 개최하며 인재들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추진력, 그리고 그것에 발맞춰 움직이는 기업들 14억 명의 인구가 생산하는 방대한 데이터와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배경으로 중국 AI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 결과가 세계 2위 AI 국가 중국을 만들었고, 근미래엔 미국을 넘어서 1위 자리도 넘보고 있는 겁니다.
해외 인재, 자본 다 들여와! 일본의 AI 전략
중국의 AI 전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건 중국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구 규모도 그렇고요. 정치적인 상황도 다른 만큼 당장 우리가 중국의 전략을 따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배경과 상황이 비슷한 일본과 타이완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야 현실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일단 대한민국, 일본, 타이완의 체급부터 비교해 보겠습니다. 오그랲 두 번째 그래프입니다.

IMF에서 올해 4월에 발표한 자료입니다. 한, 일, 타이완의 1인당 GDP를 비교해 보면 아주 다닥다닥 붙어있어요. 2024년 기준으로는 대한민국이 가장 앞서고 있죠. 미래 전망치에선 세 나라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미래 먹거리인 AI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갈리게 될 겁니다.
두 나라 가운데 먼저 일본의 상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오그랲에서 자주 언급했던 구글의 논문 이야기를 다시 해보겠습니다. 딥러닝의 혁신을 불러온 트랜스포머 구조를 제시한 ‘Attention is All you need’ 입니다. 지난 ‘AI 상담’ 편에서 이 논문의 공저자 중 한 명인 노암 샤지어가 설립한 캐릭터닷AI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사실 여기 적혀있는 공저자들 모두 구글을 퇴사해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주목할 인물은 8명 중 가장 늦게 구글을 퇴사한 일리언 존스입니다. 일리언 존스는 구글의 다른 연구진 데이비드 하와 함께 AI 스타트업을 창업합니다. 어디인고 하니, 바로 일본에서 말이죠. 이들이 만든 기업은 바로 사카나AI입니다. 2023년 8월 도쿄에서 문을 연 사카나AI는 창업 1년 만에 기업 가치 10억 달러를 넘겨 유니콘에 등극합니다.
이들은 왜 일본에서 창업했을까요? 일단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하가 일본에서 오랜 시간 거주했다는 것도 작용했겠지만, 또 하나 살펴봐야 하는 건 일본 정부의 지원입니다. 사카나AI는 초기 모델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GPU를 일본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지원받았어요. 일본 경제산업성은 작년 2월부터 GENIAC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요, 이 프로젝트에 발탁되는 기업에겐 GPU도 빌려주고, 데이터도 사용하게 해주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줬습니다. 그 첫 대상자 중에 사카나AI가 포함되었던 거죠.
이런 투자만 보면 일본이 AI와 상당히 가까워 보이지만 의외로 일본은 여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AI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조사가 됩니다.

호주 멜버른 대학교와 KPMG가 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조사국 47개국 가운데 일본은 뒤에서 2번째로 상당히 신뢰도가 낮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AI에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일본 정부가 선택한 건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거였습니다. 일본은 2022년을 스타트업 창출 원년으로 선언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엔의 예산을 배정해 지원했습니다. 기존엔 사무실과 출자금 같은 조건이 있어야 외국인 창업자가 체류할 수 있었다면 이젠 이런 조건도 다 없애고 사업 계획만 인정되면 2년간 체류토록 해주고 있고요. ‘특별고도인재’라는 비자도 신설해서 해외 인재에게는 5년짜리 비자를 바로 내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일본 스타트업 시장은 꾸준히 성장했고 가장 큰 혜택을 본 게 AI와 소프트웨어 영역이었습니다.

2024년 일본 스타트업의 분야별 자금 조달 규모입니다. 중간 라인은 전체 평균이고요. 자금이 많이 몰린 분야를 보면 생성형AI와 IoT, SaaS 분야입니다. 반면 전자상거래나 콘텐츠, 헬스케어는 평균 대비 투자 금액이 적었어요.
일본의 현재 AI 전략은 세상에서 가장 AI 개발과 활용이 쉬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은 AI 규제를 강하게 취하고 있지 않아요. 일본하면 콘텐츠인데도 불구하고 저작권에 대해서도 AI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두고 있죠.
그 영향인 걸까요? 빅테크들이 일본을 향하고 있습니다. 일단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소프트뱅크, 오픈AI, 오라클. 이 멤버 그대로 일본에 자금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와 오픈AI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고요. 오픈AI는 도쿄에 아시아 거점 오피스를 꾸리기도 했습니다. 오라클은 10년간 데이터센터 증설에만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죠. 이뿐만 아니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도 일본에 대규모 자금 투자 계획을 이미 공개했습니다.
물론 일본이 단순히 해외 자본을 들여와서 해외 기업만 좋은 일 시켜주려는 건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해외 자본과 기술력으로 AI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본만의 AI 생태계를 꾸리려는 전략을 가동하고 있죠.

2022년 정부 주도로 설립한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선 AI 전용 칩을 만들고, 일본 특화 LLM은 사카나AI 같은 기업이 담당하고 또 데이터센터는 소프트뱅크가 일본 곳곳에 짓고 있습니다.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AI 가치 사슬을 만들어 나가려는 거죠.
반도체 생산기지를 넘어, 아시아 AI 허브를 노리는 타이완
이번엔 타이완입니다. 지난 5월에 타이완의 컴퓨텍스가 있었죠. 미국에 CES, 유럽에 IFA가 있다면 아시아엔 컴퓨텍스가 있다고 할 정도로 대표적인 산업 박람회입니다.
이번 2025 컴퓨텍스에서 단연 이목이 쏠렸던 건 엔비디아의 키노트 발표였습니다. 이 발표에서 젠슨 황은 타이완 정부와 폭스콘, TSMC와 손을 잡고 타이완에 AI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이미 일찍부터 엔비디아는 타이완의 다양한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점점 그 규모가 늘어나자 엔비디아 입장에선 아예 타이완에 신사옥을 지어버리기로 결정했어요. 이름하여 엔비디아 Constellation, '엔비디아 별자리'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와 맞먹는 규모로 지어질 예정입니다.
엔비디아는 타이완에게 매우 중요한 기업입니다. 일단 TSMC가 엔비디아 AI용 GPU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죠.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빅테크들의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조자로서도 충분히 세계를 호령할 수 있다는 걸 TSMC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올해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의 매출이 25조 1,000억 원인데요. TSMC가 8,393억 5,000만 타이완달러, 우리 돈으로 약 37조를 찍었습니다. 매출 격차가 10조 원 넘게 벌어져 있어요.

TSMC 뿐이겠습니까? 미디어텍, 폭스콘, 콴타 등 다양한 타이완의 회사들이 엔비디아의 공급망 곳곳에 들어가 있어요. 엔비디아가 성장하면 자연스레 이 기업들도 함께 성장하겠죠. 마치 대기업과 그 기업에 연계된 수많은 중소기업들처럼 미국의 엔비디아가 타이완의 기업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이완은 ‘하청 공장’, ‘공업 중심’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컴퓨텍스에서 이뤄진 발표를 살펴보면 타이완은 기존의 ‘세계의 반도체 공장’ 역할을 넘어서 그 이상을 노리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일단 엔비디아가 타이완 정부와 함께 손잡고 연구개발 역량까지 더해줄 계획을 발표했거든요. 타이완에 새롭게 지어질 엔비디아의 아시아 신사옥은 글로벌 연구개발 본사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젠슨 황은 ‘타이완의 엔비디아 별자리’에서 AI 반도체도 설계하고, 양자컴퓨팅 같은 미래 AI 핵심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 얘기했어요.
글로벌 기업들은 타이완과의 협력을 늘려오고 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테그리스도 가오슝에 공장을 지었고요, 마이크론도 타이중에 공장 규모를 더 넓히고 있습니다. 미국을 제외하면 타이완에 위치한 구글의 R&D 센터가 가장 큽니다.
많은 기업들이 타이완으로 오는 핵심 이유, 바로 타이완에는 고품질의 공학 인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그랲 마지막 그래프는 타이완의 인재 경쟁력입니다.

타이완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하는 인재 경쟁력에서 최근 아시아 1위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다 제치고 있어요. 2024년 순위를 보면 타이완이 18위, 한국은 26위, 중국이 38위, 일본이 43위입니다.
타이완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AI 인재 20만 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까지 추진 중입니다. 100억 타이완달러를 10년간 투자해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인재 양성을 통해 미래 AI 시장에 대응하겠다는 겁니다. 미국과 중국이 R&D 중심의 연구 인재에 집중되어 있다면 타이완은 산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길러내 차별화를 꾀하고 있죠.
양질의 공학 인재풀을 탐내는 기업들을 더 많이 끌어들여서 타이완을 글로벌 AI 공급망의 한 축으로 만들고, 연구 개발 영역까지 투자를 늘려 AI 영토의 범위를 넓히려는 게 타이완의 계획인 겁니다.
일본, 타이완과의 경쟁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일본과 대만의 AI 전략, 뭔가 설명만 들으면 착착 준비가 되는 모습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일본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실제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올라오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가령 AI 반도체 라피더스를 통해서 자립하려 하지만 실제 상용화는 2027년은 넘겨야 해요. 또 일본인들이 AI에 보수적이라는 것도 걸림돌입니다. 내수 시장 규모는 있지만, 실제 AI 서비스가 확산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죠.
타이완은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미국 의존성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가 갑자기 바뀔 일도 없고요, 그러면 TSMC도 살아남기 위해서 미국에 공장을 지어서 생산해야 합니다. 트럼프가 아예 대놓고 타이완이 미국의 반도체 사업을 훔쳐가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 불안감은 계속 남아 있는 겁니다. 타이완이 생산기지 이상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설계, 모델 개발을 위한 연구에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야 해요. 즉 타이완도 종속성을 벗어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대한민국 환경을 따지고 보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일본, 타이완과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기업들만으로 AI 생태계를 꾸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일단 메모리반도체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압도적이죠. 거기에 AI 전용 칩 개발 능력도 높이고 있습니다. 퓨리오사나 리벨리온이 대표적이죠. 또한 네이버와 LG 등 대기업이 나서서 한국어 특화 LLM을 개발해서 오픈소스로 공개했고요. AI가 적용된 서비스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주요 기업들은 자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플랫폼도 보유하고 있죠. 칩과 데이터센터, 그리고 모델과 서비스까지.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 자체 기술력만으로 AI 가치사슬을 꾸리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아시아 AI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말 그대로 ‘허브’가 되려면 사람도 모이고 기업도 모이는 환경이 꾸려져야 할 겁니다.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잡아둘 무언가가 필요하고요. 또 해외의 고급 인재를 우리나라에 눌러 앉힐 매력적인 당근도 있어야 할 겁니다. 대기업이 만든 한국어 특화 모델을 활용해 다양한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