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권위주의 군사 독재정권 기간(1973∼1990년) 어린이들을 강제로 외국으로 입양 보내는 데 가담한 전직 판사가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습니다.
칠레 사법부는 1983년 빈곤층 부부에게서 아이를 납치해 미국으로 불법 입양을 보낸 이본네 구티에레스 파베스 전(前) 산페르난도 가정법원(소년법원) 판사를 범죄단체 조직, 미성년자 유괴, 직무 유기 혐의로 기소하기로 결정했다고 4일(현지시간) 밝혔습니다.
칠레 당국은 또 파베스 전 판사와 함께 불법 행위를 저지른 변호사 등 4명을 함께 재판에 넘기기로 하고 구금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살핀 알레한드로 아길라르 산티아고 고등법원 소속 특별방문 판사는 "1980년대 산페르난도(칠레 중부)에는 법조인, 성직자, 사회단체 회원, 의료진으로 구성된 불법 아동 입양 네트워크가 존재했다"며 "이들은 경제적으로 곤궁한 가정에 돈을 쥐여주고 데려온 아이를 외국으로 보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불법 입양범죄단은 "유럽과 미국 등에" 아이를 보내는 조건으로 최대 5만 달러(6천800만 원 상당)까지 받아 챙겼다고 아길라르 판사는 적시했습니다.
특별방문 판사 제도는 칠레에 있는 사법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칠레 법령집을 보면 '심각성과 해로운 결과로 인해 공공의 불안을 야기하고 즉각적인 판결을 필요로 하는 범죄 또는 위법 행위에 대한 조사 및 기소와 관련한' 특정 사건 등을 살피기 위해 고등법원 소속 판사가 기소 전 단계부터 지방법원 관할 지역에 파견될 수 있습니다.
아길라르 특별방문 판사는 "파베스 전 판사가 현재 이스라엘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정부에 범죄인인도 요청을 요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이어 "반인도적 범죄라는 게 명백하기 때문에 국제 협약 규정과 법리에 따라 이 사건 공소시효 기간은 별도로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부연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과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 군정 때 칠레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된 것으로 알려진 강제 입양과 관련한 첫 기소 사례라고 현지 일간 라테르세라는 보도했습니다.
'칠레 역사책의 어두운 챕터(장)'로 부르기도 하는 강제 입양 사건의 피해자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앞서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지난해 "진실을 확인할 때가 됐다"며 아이 유괴·매매·입양 사건 조사를 위한 태스크포스(TF) 팀 구성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칠레 정부는 유전자지문은행 설립 등 "부당하게 도둑맞은" 아이를 찾기 위한 별도의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미 CNN방송 스페인어판은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