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팔 들어올리는 이재명 후보
민심은 비상계엄 이후 이어진 나라의 혼란에 분명한 책임을 물었습니다.
불과 3년 전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며 '윤석열 시대'를 열어줬지만, 온 나라를 뒤흔든 비상계엄과 그 뒤로 악화한 민생의 책임에까지 면죄부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이처럼 선거는 오늘(4일)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는 이재명 후보의 승리로 끝났지만, 8년 사이 두 번의 정권교체를 결심한 민심의 명령은 준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을 초래한 비상계엄 사태를 심판했지만, 여기에는 새 대통령이 독주 대신 소통과 포용, 통합 행보에 나서 달라는 민심의 요구도 담겨 있습니다.
이 후보의 대선 승리로 더불어민주당은 입법권에 이어 행정권력까지 거머쥐게 됐습니다.
민주당은 단독으로 171석을 점한 가운데 국민의힘과 이준석 후보의 개혁신당을 제외하더라도 진보 성향 정당과 손잡고 190석에 육박하는 진용을 꾸릴 수 있습니다.
이 후보는 마음만 먹으면 수적 우위를 동원해 그간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벽에 막혀 번번이 좌절됐던 입법 과제를 손쉽게 완수할 수 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도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인사청문 절차도 사실상 장애물 없이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환경입니다.
대선 기간 국민의힘이 '독재'를 외쳤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민생 회복과 경제 성장을 위한 입법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쟁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입법에 독주하는 모습을 보이면 여권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수 의석을 점한 상황에서도 대화와 타협의 원칙은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정치권을 바라보는 민심의 요구입니다.
이 후보는 야당 대표 시절 누구보다 윤 전 대통령의 '불통'을 비판해 왔습니다.
이 후보가 처지가 바뀐 자신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면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오만과 독주를 지적한 목소리는 스스로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야가 평행선을 달렸어도 포기하지 않고 상대를 설득해 접점을 찾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난 3월 여야가 마라톤협상 끝에 국민연금 개혁안에 합의한 것은 이 후보에게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대선은 끝났지만 정치권 안팎의 대결 양상은 큰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진영 갈등이 대표적입니다.
비상계엄 직후 국민의힘과 보수 정권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으나, 윤 전 대통령의 관저 정치와 '버티기'로 극우 진영이 결집했습니다.
그 결과 윤 전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였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주당과의 지지율 차이도 크지 않았습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놓고 이에 찬성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간 갈등은 극에 달했고 과격한 양상도 표출됐습니다.
탄핵에 찬성한 세력은 매주 거리로 나아가 탄핵 촉구 집회를 열었고, 탄핵심판 결정이 늦어지자 헌재를 향한 거센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탄핵에 반대해 온 세력 역시 매주 집회를 열었고 이 중 일부 과격한 성향의 군중은 법원에 난입해 민주주의를 위협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이 후보로서는 이처럼 양극단으로 갈린 진영을 통합하지 않고서는 국정에 필요한 동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 후보는 우선 민주당을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규정하며 극우를 제외한 건전한 보수까지 포용한다는 계획으로 보입니다.
대선 기간 이 후보가 민주당에서 '진짜 보수'의 역할을 해보라며 국민의힘 출신인 김상욱 의원과 김용남·허은아 전 의원을 영입한 것이 이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당적을 옮긴 후 이들에게는 여지없이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진영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증거였습니다.

정치 지형이나 사회적 갈등과 별개로 정권교체는 큰 틀에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민심의 '비토'로도 볼 수 있습니다.
3년 만의 극적인 정권교체만큼이나 정책 기조의 변화도 큰 폭으로 예상되지만, 충격을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후보가 공언한 사법·검찰개혁 분야가 특히 그렇습니다.
이 후보는 검찰개혁과 관련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한편, 대법관 증원을 공약으로 공식화했습니다.
무리한 기소 등 정치 검찰의 폐해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평소 문제로 지적해 온 검찰 정권에 대한 반발 심리의 발로로 읽힌다면 지지를 얻기 쉽지 않습니다.
이 후보 자신의 의혹에 대한 공판기일이 모두 대선 뒤로 밀려나 사법 리스크가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은 점도 이 후보에게는 부담스러운 대목입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고, 집중투표제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 등도 관심사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물론 재계의 반대가 컸던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설득하고 관철하느냐도 경제 분야의 핵심 과제입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