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 조각의 지평을 넓혀온 원로 이형우 작가가 나무를 깎을 때 나오는 대팻밥으로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조형언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주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편백나무 / 6월 11일까지 / 노화랑]
얇게 깎여진 나무의 속살이 유려하게 휘어진 채 캔버스에 얹혀졌습니다.
대패로 나무를 깎을 때 나오는 대팻밥입니다.
길쭉한 대팻밥에 먹물을 입혀 캔버스에 붙이면 마치 단색화 회화처럼 보입니다.
원로 조각가 이형우는 조각을 위해 나무를 깎으면서 나오는 부산물을 새로운 조형언어로 부활시켰습니다.
버려지던 대팻밥에 생명을 부여한 겁니다.
[노세환/노화랑 대표 : 나무를 깎아낼 때 형태에서 나오는 그 자연스러움에 굉장히 집중을 많이 하셨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서.]
얇은 대팻밥을 실처럼 가늘게 만들며 이형우의 조형언어는 한 차원 더 진화합니다.
채색된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물든 대팻밥을 이리저리 올려붙이면서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겁니다.
캔버스에 색을 칠할 땐 화가였고 나무를 깎을 땐 조각가였습니다.
대팻밥을 통해 캔버스에 공간이 생기고 캔버스는 대팻밥의 그림자까지 담아냅니다.
작가는 나무라는 재료의 본성에 집중합니다.
전시 제목도 군더더기 없이 '편백나무'.
[노세환/노화랑 대표 : 미니멀리스트의 아마 전형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 여기에 뭔가 그 장식적인 단어들을 더하는 것보다는 이것 자체가 무엇인지를 딱 제시하는 게 아마도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작가로 선정되는 등 한국 조각의 지평을 넓혀온 작가가 70대를 맞아 새로운 화두를 들고 나온 겁니다.
우연성에서 찾아낸 조형미를 통해 평면과 입체의 경계는 어디인지, 우리가 감각하는 '공간'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 줍니다.
(영상편집 : 조무환, VJ : 오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