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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버스 'ITC 계획' 무산 수순…"에어버스에 모두 속았다" [취재파일]

에어버스 'ITC 계획' 무산 수순…"에어버스에 모두 속았다" [취재파일]
▲ 2019년 1월 김해공군기지에서 열린 에어버스의 공중급유기 전력화 행사

유럽의 초대형 방산업체 에어버스DS(Defence&Space)와 산업통상자원부가 1년 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출범을 예고했던 에어버스 ITC(International Technology Center) 계획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터를 잡는 에어버스의 첫 첨단 우주항공 R&D 센터로 기대를 모았지만 예상과 달리 에어버스DS 측은 돈도 기술도 인력도 내놓지 않았고, 참여를 희망했던 방산업체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등을 돌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ITC는 에어버스DS가 우리 공군에 공중급유기를 공급한 데 대한 반대급부로 수천억 원 상당의 방산 관련 기여를 제공하는 절충교역의 일환으로 알려졌습니다. 황당하게도 에어버스 ITC는 우리 지자체와 방산업체들이 땅과 시설, 인력, 돈을 대고 R&D 프로젝트도 스스로 알아서 확보하는 구조였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에어버스DS는 ITC에 에어버스 이름만 빌려주는 꼴입니다. 이런 식의 '립서비스' 절충교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ITC 유치에 애썼던 지자체들로부터 "ITC가 빈껍데기인 줄 몰랐다", "에어버스에 농락당했다" 등 험한 소리가 쏟아지고 있고, 방산업계에서는 "중앙 정부, 방산업체들이 모두 에어버스에 속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판입니다. 절충교역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산자부와 방사청은 오히려 에어버스DS와 부적절한 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ITC 계획은 어려워졌다!"

산자부와 에어버스DS는 작년 5월 10일 에어버스 ITC의 한국 설립 MOU를 체결했습니다. 산자부는 "2022년부터 공들여 이룬 성과"라면서 "국제 R&D 협력을 기대한다"고 자랑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에어버스 ITC는 한국과 에어버스의 R&D 협력 플랫폼으로 확장될 것"이라며 장밋빛 청사진을 펼쳤습니다.

ITC가 들어설 곳은 작년 중에 선정될 참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국제적인 R&D 시설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들이 제안서를 내면 산자부가 평가해서 고르면 될 텐데 산자부는 입지 선정 용역을 모 업체에 맡겼습니다. ITC 유치를 추진했던 지자체의 관계자들은 "용역 업체는 에어버스DS가 수억 원을 들여 골랐다", "믿음도 안 가는 업체에 수억 원 혈세를 퍼주면서 입지 선정한다고 했을 때부터 수상했다"고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대전, 부산, 인천, 경남이 경쟁한 결과, 작년 11월 대전이 선정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상이라면 산자부, 에어버스DS, 대전시 중 어느 한곳이라도 입지 결정을 발표했어야 했습니다. 모두 입을 다물었습니다. 기자가 거듭 질문하니까 에어버스DS 측은 "업데이트된 내용이 없다"고 했다가, "코멘트할 것이 없다"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산자부 측은 "에어버스DS의 내부적인 사정이 있는 것으로 안다", "처음에 계획했던 것은 힘들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에어버스DS의 내부 사정이란 에어버스DS가 ITC에 내놓을 것이 없는 상황으로 추정됩니다. "ITC를 위해 에어버스DS가 돈이나 기술, 인력을 내놓을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산자부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팩트를 정리하면 ITC 계획은 작년 11월 입지 선정 이후 멈췄습니다. 산자부에 따르면 1년 전 펼쳤던 ITC 계획 이행은 어렵습니다. 대전시는 닭 쫓던 강아지 신세가 됐습니다.

"에어버스에 놀아났다!"

우리 방산업체들은 작년부터 ITC에 냉소적이었습니다. 한 방산업체 임원은 "업체들한테 10억 원, 5억 원씩 내고 액수에 따라 골드, 실버, 브론즈 회원의 자격으로 ITC에 들어오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에어버스DS는 한국의 국방과학 R&D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아마추어"라고 꼬집었습니다. 통상적으로 국방과학 R&D는 정부가 예산을 내고 발주하면 기업들이 참여하거나, 순수하게 민간 분야의 R&D라고 해도 먼저 특정 과제를 세워놓고 시작합니다. 무턱대고 돈부터 깔고 가는 법은 없습니다.

ITC의 파행을 바라보는 지자체들 속내는 참담합니다. 대전시 측은 유치에 성공했지만 발표도 못합니다. "에어버스DS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전긍긍할 뿐입니다. 유치에 실패한 지자체 관계자는 "예산과 인력, 시간을 투자해 에어버스의 갑질을 견디며 몇 달을 뛰었다", "그런데 ITC가 빈껍데기라니 우리는 에어버스DS에 놀아난 꼴"이라며 분개했습니다. 모 지자체는 "농락당했다", "사기당했다"며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이와중에 김영란법 위반 구설수


에어버스DS는 우리 공군에 공중급유기 4대를 수출한 반대급부로 2015년 7월부터 2026년 3월까지 6억 6천3백만 달러 상당의 절충교역을 해야 합니다. 절충교역이란 우리 정부가 외국의 고가 무기를 구매하면 외국 업체는 기술 이전, 부품 구매 등을 의무적으로 이행하는 절차입니다. 이행하지 못하면 제재가 따릅니다.

에어버스DS의 10년 간 절충교역 이행률은 24.4%입니다. 3년 전에도 같은 수치였습니다. 남은 시간은 1년도 안 됩니다. 에어버스의 경쟁사인 미국 보잉의 대형공격헬기 절충교역 이행률이 98.2%인 것과 비교하면 에어버스DS의 불성실이 두드러집니다.

ITC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지자체들은 "ITC는 에어버스DS의 절충교역"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에어버스DS가 ITC에 기술이나 부품 또는 돈, 인력을 내놓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습니다. 절충교역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방산업체와 지자체들, 방사청이 단체로 에어버스DS한테 속았다"는 지적이 방산업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절충교역을 관리하는 산자부와 방사청이 애초에 교통정리에 실패했습니다. 심지어 방사청은 에어버스DS코리아에 코가 꿰여 김영란법 위반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에어버스DS코리아 대표가 김영란법이 규정한 공무원 조의금 한도의 몇 배에 달하는 돈을 방사청 절충교역 관련 당국자가 상을 당했을 때 낸 것입니다. 방사청은 "돌려줬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 해도 에어버스DS코리아 대표가 법정 한도를 몇 배 초과하는 조의금을 준 행위는 실정법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 절충교역 미이행에 더해, ITC 파행과 김영란법 위반 논란까지… 세계적인 방산업체 에어버스의 신뢰도가 한국에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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