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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혀 안 말리게" 아빠 돌보는 9살…일찍 철든 3만명

<앵커>

가족 돌봄을 책임지고 있는 청년들 이야기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희가 정부 기관에서 처음으로 작성한 가족 돌봄 아동 실태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는데 이런 처지에 놓인 13살 미만의 어린이들이 많게는 3만 1000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권지윤, 정성진 기자가 차례로 전해드립니다. 

<기자>

방과 후 학원을 가거나 또래들과 놀 시간, 9살 은지는 동생과 함께 강아지와 시간을 가집니다.

[이은지 (가명, 9살) : 얘가 한 살이잖아요. 사람 나이로는 열 살이래요. 저랑 친구 같아요.]

편도암 수술을 받은 아버지, 4살 어린 동생과 3명이서 살며, 동생 한글 공부도 챙깁니다.

[이은지 (가명) : 이렇게 쓰지 말고, 이렇게 써.]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 부족한데, 아버지의 아픈 몸으로 일은 벅찹니다.

금방 목이 붓는 아버지를 챙겨주고, 돌봄에 익숙한 모습입니다.

[이은지 양 아버지 : (목이) 부어올라서 그때는 숨을 못 쉬잖아요. (은지가) 제 등을 막 두드리면서 해주고 입을 벌려서 혀를 안 말리게 잡아주고 (그렇게 해줘요.)]

딸을 보는 아버지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이은지 양 아버지 : 제가 그게 제일 미안한 거예요. 자기 또래들하고 놀면서 지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엄마의 빈자리를 자기가 채우려고 그러다 보니까.]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만화 캐릭터를 두곤 또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은지 양 동생 : ((아저씨는) 나그네핑을 제일 좋아해요.) 저는 행운핑이 좋아요.]

[이은지 양 : 근데 오로라핑도 있는데….]

조심스럽게 작은 바람도 말합니다.

[이은지 양(가명, 9살) : 미술학원 수학학원 국어학원(다니고 싶어요.) 맨날 60점 60점 60점 받으니까….]

가족에 대한 돌봄을 책임지게 된 아동은 은지 양뿐만이 아닙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이번에 처음 13세 미만 가족돌봄아동을 파악했는데, 지난 2021년 기준 최소 1만 7천600여 명에서 최대 3만 1천300여 명으로 분석됐습니다.

연령대를 돌봄이 가능한 6세~12세로 좁혀도 1만 3천500여 명에서 2만 4천100여 명에 달합니다.

경기도 3천 900여 명, 서울 2천500여 명 등 전국에 분포해 있습니다.

(영상취재 : 김한결, 영상편집 : 박나영, 디자인 : 장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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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돌봄청년 A 씨(음성 대독) : 기억도 안 날 때부터 엄마가 계속 아프셨어요. 또래들이 하지 않는 경험을 먼저 해서 어른스럽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증이 심하게 왔어요. 제가 돌봄에 종속되어 있었던 거죠.]

어린 가장이었던 한 청년이 조사 기관의 면담에서 털어놓은 이야기입니다.

어린 가장들은 이런 우울증 외에도 아픈 엄마가 떠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감, 긴급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았고, 자신의 적성을 찾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위기였습니다.

6세에서 12세까지 아동이 가족을 돌보고 있는 가구 가운데 근로소득이 있는 경우는 44%로 아동이 있는 전체 가구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부동산, 금융 자산, 각종 지원금까지 모두 합한 가구 소득 격차도 컸습니다.

가족 돌봄 아동 가구의 연소득은 2천200만 원대로 전체 아동 가구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습니다.

또 65세 이상 노인과 함께 사는 비율도 전체 아동가구의 7배나 됐는데, 노인 장기요양이나 장애인 활동 지원 등 돌봄 지원 제도 이용률은 오히려 크게 떨어졌습니다.

아이 돌보미 서비스도 있지만, 이용률은 1%대에 그칩니다.

잘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걸로 보입니다.

현재 가족 돌봄 아동. 청소년을 전담 지원하는 정부 기관은 단 한 곳, 이마저도 13세 이상에 초점을 맞춰, 지원받은 사람 중 13세 미만은 16명에 불과했습니다.

아동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학교 내 사회복지사를 의무 배치하는 등 가족 돌봄 아동을 선제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승현/초록우산 아동옹호본부장 : 본인의 장래나 미래나 이런 것들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해서 이 아이들에게 돌봄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지원 체계 마련하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어린 가장'들이 꿈을 잃고 돌봄에 매몰되지 않도록, 돌봄과 학습, 정서 지원 등에 국가와 지자체가 함께 나서야 한단 지적입니다.

(영상취재 : 한일상, 영상편집 : 안여진, 디자인 : 김한길·최재영, VJ : 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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