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성장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한국은행이 오늘(22일) 소개했습니다.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단기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이 논의되는 가운데 급격한 정부부채 증가의 부작용을 지적한 연구여서 눈길을 끕니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최신 해외 학술 정보'를 통해 스페인 국제경제연구센터(CEPR)의 루카 포르나로선임 연구원과 스위스 장크트갈렌 대학의 마틴 울프 교수가 공동 작성한 '재정침체'(Fiscal Stagnation)라는 제목의 논문을 소개했습니다.
재정침체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장기적인 경기 부진이나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경제학 용어입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과도하게 누적된 공공부채는 성장 둔화와 조세 왜곡의 악순환을 유발해 경제를 재정침체 상태에 고착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공공부채가 임계점을 넘어설 경우 투자 위축과 생산성 저하로 인한 세수 감소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형성돼 경제의 장기 성장률이 점진적으로 하락하는 이력 현상(후유증)이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채가 늘어 미래 조세 부담 우려가 커지면 민간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생산성과 세수가 나란히 떨어지고, 재정침체가 한층 가속한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또 "재정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한 신뢰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신뢰성이 결여되면 재정침체 탈출에 요구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민간 투자 심리를 회복시켜 부채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신뢰성 있는 재정정책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례 없는 저성장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적절히 공조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거듭 피력해 왔습니다.
다만, 지난달 국회에서 "올해 성장률이 낮으니까 무조건 추경이 많아야 한다는 논리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나친 재정 확장에 거리를 뒀습니다.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환자가 힘들어한다고 내일, 모레 생각하지 않고 스테로이드를 부어서는 안 된다"고 비유했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45.3%로 집계됐습니다.
이 비율은 선진국 평균(104.2%)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4분기 말까지만 해도 40%를 밑돌던 것을 고려하면 최근 비교적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왔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