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한 그는 키로프 발레단(현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안무가로 전향했습니다. 1964년부터 볼쇼이 발레단 수석안무가와 예술감독으로 재직했습니다. 1995년까지 30여 년의 재임 기간 동안 볼쇼이 발레단은 '러시아 황실 발레 본산'이었던 마린스키 발레단과 나란히 러시아 발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라 바야데르' 등 고전 발레 대표작을 다시 안무하고, '이반 뇌제', '스파르타쿠스' 등 새로운 현대의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98세에 타계한 볼쇼이 발레 전설, 한국 발레에 커다란 유산 남기다 [취재파일]](https://img.sbs.co.kr/newimg/news/20250521/202073357_1280.jpg)
국립발레단의 클래식 발레 레퍼토리 중 상당수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볼쇼이 버전입니다.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은 2000년, 국립발레단이 국립극장을 떠나 예술의전당에 상주하는 '재단법인'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할 즈음, 삼고초려 끝에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작품을 들여왔습니다. 국립발레단이 재단법인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데에는 그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전의 국립발레단은 마린스키 발레단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던 유니버설발레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레퍼토리가 취약했지만, 유리 그리가로비치 덕분에 탄탄한 라인업을 갖췄고, 공연을 통해 무용수 기량을 끌어올리고 관객들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국립발레단은 2000년 '호두까기 인형'을 시작으로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라 바야데르' '라이몬다'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작품 6편을 레퍼토리로 갖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놀라요. 너희는 유리 레퍼토리를 어떻게 그렇게 많이 갖고 있냐고. 중국 북경 발레단장 만났더니 너무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공연 라이선스만 주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올릴 때마다 한국에 장기간 머무르면서 무용수들을 세심하게 지도했습니다. 안무자의 지도를 직접 받는 것은 무용수들에게 정말 특별한 기회입니다. 보통은 조수를 보내 지도하게 하고 나중에 와서 확인하는 정도인데, 그는 달랐습니다. 장기간 머무르며 안무뿐 아니라 연출과 의상, 무대 전반을 통합적으로 지도했습니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지도했던 작품은 2001년 '아시아 초연' 무대였던 '스파르타쿠스'였습니다. 그가 하차투리안의 음악에 맞춰 안무해 1968년 볼쇼이 발레단이 초연한 이 작품은 기존의 발레리나 중심 작품과는 다른 혁신적인 발레였습니다. 판타지나 동화가 아니라 로마 노예들의 반란을 소재로, 기량이 뛰어난 남성 무용수들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거대한 서사를 펼쳐냅니다. 남성 무용수 저변이 그리 두텁지 않았던 터라 과연 국립발레단이 이 작품을 해낼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자신의 '뮤즈'이며 볼쇼이의 전설적인 발레리나였던 부인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와 함께 공연장 근처 아파트를 빌려 3개월 동안 군무부터 하나하나 직접 가르쳤습니다. 주역을 맡은 김지영과 김주원, 김용걸, 이원국은 안 그래도 국립발레단의 '간판'이었지만 이 공연을 계기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국립발레단이 '스파르타쿠스' 같은 대작을 성공적으로 공연한 경험은 이후의 약진에 중요한 발판이 됐습니다.
김지영(현 경희대 교수)은 '유리 선생님이 리허설 때 계속 멈춰 세우며 도자기 장인이 조심스럽게 도자기를 빚어내듯, 자수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차근차근 지도해 주셨다'고 회고했습니다. 김주원(현 대한민국발레축제 예술감독)은 '클래식 발레는 음악 안에 답이 있다'는 조언을 자주 떠올린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음표 하나하나, 악기 소리 하나하나를 느끼며 춤추는 기쁨과 감동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와 국립발레단의 인연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2010년 국립발레단이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올렸을 때 일입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지도를 위해 한국에 왔다가 부인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부인의 장례를 치르고 다시 공연을 올리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가 부인을 위해 안무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줄리엣을 잃었지만, 슬픔 속에서도 한국에서 새로운 줄리엣을 탄생시키기 위해 작업에 복귀한 겁니다. 국립발레단은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에게 헌정했습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에게도, 국립발레단에도 잊지 못할 무대가 됐습니다.
![98세에 타계한 볼쇼이 발레 전설, 한국 발레에 커다란 유산 남기다 [취재파일]](https://img.sbs.co.kr/newimg/news/20250521/202073356_1280.jpg)
유리 그리가로비치와 함께 작업했던 이력은 무용수들에게 든든한 '빽'이 되었습니다. 그는 국립발레단에서 만난 무용수들의 기량을 높이 평가하며 해외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천하곤 했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한 김용걸은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온 유리 선생님이 자신을 "용걸!" 하고 친근하게 부르는 걸 동료들이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2008년 볼쇼이 발레단에 안무가이자 발레 마스터로 복귀한 그가 힘을 실어준 덕분에 볼쇼이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합동 공연이 성사됐습니다.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서울에서 '라이몬다'가, 볼쇼이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연됐습니다. 또 2012년에는 볼쇼이 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 공연에 김지영, 이동훈을 주역으로 캐스팅해 볼쇼이 극장을 가득 채운 러시아 관객들의 갈채를 받게 했습니다.
최태지 전 단장은 그가 단 한 번도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을 볼쇼이 발레단의 무용수들과 비교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가 국립발레단과 처음 협업을 시작했을 때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립발레단의 수준이 볼쇼이 발레단과 비교해 어떤가'를 묻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요. 국립에는 국립의 발레가 있고, 볼쇼이에는 볼쇼이의 발레가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최 전 단장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발레로 인간의 양면성과 갈등을 그려낸 안무가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백조의 호수'에서는 악역 로트바르트를 주인공의 내면이라고 해석했고,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 네 명의 주역을 내세운 현대적인 서사를 시도했습니다. 단순히 테크닉이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작품이 아니라, 철학을 담은 작품을 안무했다는 겁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한국행은 강수진 단장이 부임한 이후인 2016년 '스파르타쿠스' 공연 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최태지 전 단장은 이후에도 전화 통화를 종종 했지만, 4~5년 전부터는 건강이 크게 악화돼 한국어 통역을 맡은 측근으로부터 안부를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김지영은 그가 2016년 '스파르타쿠스' 공연 끝나고 출국하기 직전에 자신을 불러 '러시아에 언제든 오라'고 하고 떠났는데, 결국 찾아가지 못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는 엄격하고 무서웠는데, 그때는 이미 많이 노쇠하셨어요. 호랑이가 아니라 호호 할아버지 같았죠. 유리 선생님은 정말 한국 발레에 선물을 많이 주신 산타 할아버지 같은 분이셨어요."
보통 해외 작품의 라이선스 기간은 3년에서 5년 정도로 정하고, 갱신할 때 다시 로열티를 내야 하는데, 그는 국립발레단이 무기한으로 공연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계약 조건을 허락했습니다. 김지영은 '다른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국립발레단은 지금도 그의 작품을 공연하고 있습니다. 올해 12월에 어김없이 공연될 '호두까기 인형'도, 얼마 전 박세은과 김기민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던 '라 바야데르'도, 모두 그의 손길과 숨결이 담긴 작품입니다.
최태지 전 단장은 임성남 초대 국립발레단장이 국립발레단을 탄생시킨 아버지라면,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국립발레단을 키워준 또다른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과 정신은 국립발레단의 경쟁력과 정체성에 핵심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레퍼토리 확보를 넘어 한국 발레계의 구조적 전환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도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에 나섰고, 두 단체의 선의의 경쟁 속에 한국 발레의 수준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98세에 타계한 볼쇼이 발레 전설, 한국 발레에 커다란 유산 남기다 [취재파일]](https://img.sbs.co.kr/newimg/news/20250521/202073355_1280.jpg)
김주원은 자신의 SNS에 유리 그리가로비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썼습니다.
"유리 선생님. 감히, 선생님의 무용수로 춤을 출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세상은 선생님 덕분에 훨씬 아름다워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2012년 '스파르타쿠스' 공연 리허설 때 봤던 그의 모습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러시아뿐 아니라 한국 발레의 역사에서도 마땅히 기려야 할 스승이자 은인입니다. 저 역시 취재 기자 이전에 한 명의 발레 관객으로서, 유리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김주원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