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경선을 뚫고 올라온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두 사람의 단일화가 이번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당초 단일화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걸로 예상됐지만, 정작 판을 열어보니 둘 사이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SBS 팩트체크 <사실은>은 두 후보가 현재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고, 과연 그런 주장이 제대로 된 근거를 갖춘 것인지를 꼼꼼히 따져봤습니다.
두 차례 회동으로 드러난 입장 차이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지난 7일과 8일, 두 차례에 걸쳐 회동을 갖고 단일화 시기와 방안에 대한 논의를 가졌습니다. 첫 회동은 비공개였지만, 두 번째 회동은 모든 과정이 공개됐고 덕분에 둘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우선 김 후보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총리님께서 이 국정을 많이 운영해 보시고 각료들을 다 통솔을 해 보시고 이렇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훌륭하신 점이 있지만 정당에 대해서는 한 번도 해보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 저는 정당을 그래도 좀 오랜 기간 동안 해 봤기 때문에 말씀드리면 후보님 같은 이런 경우에는 거의 우리나라 정당 역사에도 없습니다. 당원도 아니고 등록도 안 하겠다는 분이 나타나서 경선이 끝난 그래도 제1정당에 대해서 후보로 공식적으로 하자 없이 선출된 후보에 대하여 당신이 (단일화) 약속했는데 왜 안 하느냐."
- 지난 8일 김문수-한덕수 공개 회동 중 -
쉽게 이야기하면, 김 후보 자신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을 거쳐 정식 후보가 되고 나니까 당적도 없고 대선 후보 등록도 안 한 사람(한덕수 전 국무총리)이 나타나서 단일화를 하자며 전례도 없고 정당정치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 요구를 하고 있단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김 후보는 적어도 한 전 국무총리가 무소속 후보로서 선거 운동을 하고 정식 후보 등록을 마친 뒤인 오는 11일 이후에 본격적인 단일화를 시작해보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전 총리는 어떤 입장일까요?
"(김문수 후보 뜻대로 라면) 저는 무소속 후보로 등록을 해야 되겠죠. 그런데 지금 온 국민들의 걱정과 이런 그 당원들의 열화와 같은 이런 요구를 보면 이럴 여유가 저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저는 국민에 대한 도리로서는 제가 무소속 후보로서 등록을 해 가지고 혹시나 잘못된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그분들(민주당)한테 유리하게 하는 그런 일은 저는 못하겠다."
- 지난 8일 김문수-한덕수 공개 회동 중 -
단일화를 거쳐 자신이 최종 후보가 된다면, 국민의힘 입당도 하고 대선 후보 등록도 할 것이지만, 이런 과정을 대선 후보 등록 기간 시한인 11일 전에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일화를 바라는 지지자들의 요구를 생각하면 단일화도 하지 않고 후보 등록을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전례가 없는 단일화일까?
먼저, 김 후보는 공당 내에서 대선 경선을 거쳐 정식 후보로 된 자신에게, 당 외부에서(입당도 하지 않고), 후보 등록도 하지 않아 유령·허깨비와 같은 후보자와는 단일화할 수 없단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정당정치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 전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전례가 없는 일인지, 민주화 이후 우리 대선 경선을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4차례의 대선 단일화가 있었고, 이 가운데 지난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한 사례가 있습니다.

대선 출마 선언 당시 안철수 후보는 여러 측면에서 지금의 한 전 총리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①민주통합당에 입당해 경선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외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무소속 후보였고, ②대선 후보 등록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김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안 후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 후보' 상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는 대선 승리를 위해 단일화를 먼저 공식 제안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적도 없고, 후보 등록도 안 한 이른바 유령 후보와 공당의 대선 후보가 단일화를 시도하는 건 우리 정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고, 정당정치 원리와 충돌하는 사례도 아닙니다.
대선 후보 등록은 정말 도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번엔 한 전 총리의 주장을 따져보겠습니다. 한 전 총리는 대선 후보 등록 기간이 끝나기 전에 단일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고, 이는 다름 아닌 대선 승리를 바라는 지지자들에게 도리를 지키는 일이라 밝혔습니다.
실제로, 대선에서 이뤄진 4차례의 단일화 중 세 번은 대선 후보 등록 전에 이뤄졌습니다.(15대, 16대, 18대) 그렇다면, 대선 후보 등록 전 단일화에 성공한 세 번의 사례에서 모두 승리했을까요? '대선 후보 등록 전 단일화'가 국민에 대한 도리를 지키는, 달리 표현하면 선거에서의 '필승 공식'일까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앞서, 살펴본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단일화에는 성공했지만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단일화 제안 직전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의 지지율은 39%였고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24%,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22%로 나타났습니다.(2012년 10월29~31일, 한국갤럽) 그러니까. 안철수와 문재인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만 한다면 박근혜 후보보다 더 유리할 걸로 예상됐습니다. 그럼에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는 뭘까.

대선 이후 야당의 후보들이 단일화에 성공했지만 정작 대선에서 패배한 배경 중 하나로 '아름답지 못한 단일화 과정'이 꼽혔습니다. 단일화 시도가 대선 승리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일화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대선 후보 등록 전 단일화'라는 형식만을 고수하다 상대 후보로부터 진정한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단일화에 성공하더라도 대선 승리를 바라는 지지자들에게 도리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단 의미입니다.
누구의 주장에도 정답이 없다
전례가 없다는 김 후보의 주장과 달리, 지난 18대 대선에선 공당의 대선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가 당적도 없고 등록도 안 된 후보와 단일화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대선 승리를 위해 도리가 아니라는 한 전 총리의 주장과 달리, '대선 후보 등록 전 단일화'는 필승 공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이와 같은 주장을 고수하는 주요 이유로 '지지자'를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지지자를 명분으로 삼아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만 고수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명분도, 이득도 없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주장들 속에 진정으로 지지자를 위하는 정답은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