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잠깐의 '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성인 4만 4천 명을 상담했던 장재열 상담가가 자신의 삶에서 소진을 겪었던 전문가를 만나 일상 속 멈춤과 쉼의 비결에 대해 묻습니다.
인터뷰어 : 장재열 (상담가 겸 작가, 월간 마음건강 편집장)
인터뷰이 : 작은콩 (인스타툰 '설은 일기' 작가)
인터뷰이 : 작은콩 (인스타툰 '설은 일기' 작가)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왠지 나만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것 같다는 생각. 누군가에게는 그 모래주머니가 속 썩이는 가족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콤플렉스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지요.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페널티가 많은 채 달리는 레이스일까?'라고 생각이 든다면, 오늘 이 분과의 대화가 작은 변화의 씨앗이 될지도 모릅니다. 희소병을 안고도 따뜻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는 인스타 힐링툰 작가, 작은콩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장재열 (이하 장) : 안녕하세요, 작은콩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작은콩 (이하 콩) : 안녕하세요, 저는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서 힐링툰과 에세이를 공유하는 작은콩입니다. 20대 초반에 류머티즘성 관절염이라는 희소병을 진단받으면서 제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투병기를 중심으로 그렸고, 지금은 <설은 일기>라는 시리즈를 통해 병을 안고도 천천히, 꾸준히 살아가는 30대의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얼굴 공개를 원치 않아 마스크를 쓴 사진으로 인사드리는데, 양해 부탁드려요.
장 : 작은콩이라는 필명이 정말 독특하고 귀엽네요. 어떻게 이 이름을 짓게 되셨는지, 그리고 캐릭터는 어떻게 디자인하셨나요?
콩 : 작은콩이라는 이름은 제가 지은 게 아니라 팬분이 붙여주신 거예요. 팬분들께 이름 공모를 했었는데요, 제가 그린 캐릭터를 보고 "콩 같다"라고 제안하셔서 시작됐죠. 저는 이 이름에 의미를 더했어요. 콩은 지금은 작지만, 잘 가꾸면 새싹이 되고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스스로를 아끼며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캐릭터는 제 모습을 솔직하게 반영한 거예요. 태블릿으로 그리고, 선이 깔끔해질 때까지 지우고 다시 그리며 완성해요. 초반엔 더 삐뚤삐뚤하고 투박했는데, 지금은 조금 예뻐진 버전이에요.

장 : 작가님의 만화에서 자신의 병을 "병님"이라는 보라색 캐릭터로 의인화하신 게 인상 깊었어요.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하게 되셨나요?
콩 : 처음 병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어요. 12년 전, 제가 20대 초반에 진단받았을 때만 해도 류머티즘성 관절염은 주로 나이 드신 분들에게 흔한 병으로 여겨졌어요. 또래에게 이해받기 어려웠고, 외로움이 컸죠. 그림은 그 외로움을 풀고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어요. 처음엔 그냥 일기처럼 그렸는데, 독자들의 응원 덕분에 병을 미워만 하기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어요. 병님이라는 이름과 보라색은 그냥 즉흥적으로 정했지만, 병을 하나의 인격체로 만들어 "넌 뭐가 문제야? 뭘 원해?"라고 대화하며 복잡한 감정을 정리했어요. 처음엔 화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병과 대화하는 느낌으로 그려갔죠.
장 : 병과의 관계를 애증의 관계라고 표현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감사한 마음이 드시나요?
콩 : 병 자체에 감사하다기보다는, 병이 저를 변화시킨 점에 고마움을 느껴요. 병은 제 한계를 보여줬고, 그걸 통해 스스로를 연민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어요. 저를 "아픈 사람"이 아니라 "견뎌내는 사람"으로 재정의할 수 있었죠. 병은 저를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저의 일부예요. 완전히 미워할 수도, 완전히 좋아할 수도 없는 애증의 관계죠. 병 덕분에 제가 더 단단해지고,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어요. 예를 들어, 병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많아졌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법을 배웠죠.
장 : 작가님의 만화는 병을 겪지 않은 분들에게도 큰 공감을 얻고 있어요. 어떤 피드백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콩 : 정말 다양한 분들이 댓글과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작가님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요"라거나 "내 모습을 이해하게 됐어요"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병이나 아픔을 겪은 분들은 제 투병 이야기에 위로를 받고, 병이 없는 분들은 서툰 일기를 통해 30대라는 나이에 느끼는 불안이나 부족함에 공감한다고 해요. 특히 "작가님의 존재에 감사해요"와 "나의 삶에 작가님 만화는 휴식처나 다름없어요. 그 어떤 유명 작가보다 소중한 만화입니다"라는 댓글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제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 줘서 감사하죠.

장 : 그럼요. 작가님은 우리에게 쓸모 있는 존재이지요. 주옥같은 표현들을 선물해 주시는 것만으로도요(웃음). 저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인상적이었던 건, 작가님은 병을 겪고 있는 자신을 "환자"라는 단어로 단순히 정의하지 않고, "인내하는 사람"으로 재해석하셨어요. 어떻게 이런 관점을 가지게 되셨나요?
콩 : "환자"라는 단어는 영어로 "patient"인데, 이 단어엔 "인내"라는 뜻도 담겨 있어요. 저는 이 이중적 의미를 주제로 만화를 그렸어요. 환자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병을 안고도 계속 걸어가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이 관점은 저 자신을 성찰하면서 나왔어요. 병을 겪으며 저를 약하다고만 보지 않고, 꾸준히 버텨내는 모습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이런 정의를 통해 저 자신을 더 단단하게 바라볼 수 있었죠.
장 : 대화를 하면서도 느끼지만, 확실히 작가님은 상당히 솔직하고 담백해요. 만화에서도, 글에서도 그게 묻어 나오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칼럼도 쓰고 계시잖아요. 디자인 전공이시니 왠지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익숙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글도 그림 못지않게 깊은 울림이 있더라고요. 글을 평소에 많이 쓰는 편이셨나요?
콩 : 글쓰기를 각 잡고 배운 적은 없지만, 틈틈이 무언갈 적어 내려가는 것은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만화를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덧대게 되고 칼럼 연재까지 이어졌지요. 처음엔 짧고 어설픈 면도 있었지만, 만화로는 함축적으로 담기 어려운 생각을 표현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그림보다는 덜 익숙하긴 해도 글로 전달해야 최적인 메시지도 있으니까요. 조금씩 만화에 한 줄, 한 줄 덧붙이며 시작하게 되었죠. 지금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솔직함과 진실함이 제 글의 핵심이라고 믿어요. 속마음을 다 드러내는 기분으로 쓰고, 기교보다는 담백함을 추구해요.
장 : 그런 성향이어서인지, 작가님은 성공 신화나 완치에 대한 이야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보시더라고요. 그 이유가 궁금해요.
콩 : 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믿어요. 지금도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고 있죠. 하지만 한국 사회는 노력을 너무 단일한 형태로만 강조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성공 신화는 맨땅에 헤딩하며 모든 걸 걸어야 한다는 식이죠. 하지만 노력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어요. 번아웃으로 무기력한 사람에게는 가만히 버티는 것도 큰 노력이고, 저처럼 몸이 아플 때는 숨 쉬는 것조차 노력일 때가 있어요. 이런 다양한 노력을 인정해야 해요. 저는 과거에 저를 깎아내리는 노력을 했지만, 이제는 저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추구해요. 완치나 성공만이 행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장 : 작가님은 지금도 그 노력을 통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데 집중하시는데, 사실 우리가 제일 많이 놓치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잖아요. 어떻게 하면 순간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콩 : 저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에요. 병을 겪으며 시간의 유한함을 깨달았어요. 건강이 당연하지 않고,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마음이 생겼죠.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오늘 하루가 소중하다는 철학으로 살아요. 끝을 생각하면 오히려 현재에 집중할 힘이 생기더라고요. 늘 저에게는 매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다시 '병님'이 조금 더 저의 곁에 밀착하게 되면 지금 하는 여러 가지 것들 중 몇몇 가지는 할 수 없는 상황도 언제든 올 수 있으니, 모든 것에 임할 때 최선을 다하게 되는 거죠. 이를테면, 말기 질환을 겪는 분들이 오늘 하고 싶은 걸 우선시하듯이요.
장 : 우리 모두 언젠가 병을 겪을 테니, 작가님은 병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주시네요. 인생의 바닥을 겪었을 때 다시 살아낼 수 있는 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콩 : 저는 아직 진짜 바닥을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병은 큰 도전이었지만, 더 깊은 바닥이 올 수 있다고 믿어요. 바닥에는 끝이 없죠. 중요한 건 어떤 바닥이 와도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과 자신을 아는 힘이에요. 제 좌우명은 "좋은 일은 나쁜 일과 함께 오고, 나쁜 일은 좋은 일과 오진 않지만 대신 극복하는 과정에서 좋은 일이 되어간다"예요. 성공이나 완치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지금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으니,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이 큰 힘이 돼요. 평소에 서로에게 친절히 대하는 게 그 시작이죠.

장 : 벌써 시간이 훅 지나갔네요. 이제 공통 질문 하나 드려볼게요. 내가 최근 가장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그리고 그들에게 메시지 하나를 전할 수 있다면?
콩 : 제가 가장 마음 쓰이는 사람은 힘들다는 말 없이 혼자 견뎌내고 있는 사람이죠, 아무래도. 저도 꽤 오랜 시간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해 왔기도 하고, 남에게 기대거나 힘들다는 말을 못 하는 성격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괜히 말 꺼냈다가 걱정 끼칠까 봐, 또는 어차피 이해 못 할 일이라서,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버텨내야 할 때. 저는 이분들께 제 만화와 글로 '나도 그래'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 드릴 수는 없겠지만, 그저 같은 처지에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 경우엔 정말 큰 위로가 되었었거든요. 멀리서나마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어요.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거예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