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죽음의 드라이브 - 그 남자의 살인일지'라는 부제로 연쇄살인마 온보현의 그날을 추적했다.
1994년 9월, 전국이 지존파로 떠들썩하던 그때 한 남자가 자수를 하며 자신을 지존파와 같은 유치장에 넣어 달라고 했다. 그의 주장은 자기가 더 흉악하고 더 낫다며 지존파와 누가 더 악랄한 지 비교를 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는 자신이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남성은 22페이지에 걸친 범행 일지를 증거라고 내밀었고, 이 일지에는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 등 구체적인 신상까지 메모되어 있었다.
남성이 내민 범행 일지를 살펴보던 형사들은 죽음을 확인 못했다는 한 범행의 메모를 발견하고 사건의 피해자를 추적했다. 그리고 남성의 신분이 확인되었다. 그는 38세 온보현, 전과 13범으로 현재 지명수배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 경북 김천 고속도로 배수로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20대 중반의 여성 배 씨는 서울에서 실종된 후 김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것.
앞서 노래방 김 씨를 택시로 납치해 살해하려고 했던 온보현. 김천에서 발견된 시신도 택시를 이용한 범행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김 씨 납치 당시 온보현은 "전국에 암매장할 구덩이를 여러 개 파놨다. 완전범죄를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고 이에 경찰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 온보현에 공개 수배를 시작했다.
당시 CSI 요원으로 근무 중이던 권일용 프로파일러. 하지만 당시 서울 전역의 택시를 다 뒤져도 마땅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그리고 방송은 온보현의 범행 일지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노래방 주인 김 씨를 납치했던 당시, 자리를 비웠던 온보현은 김 씨의 금품과 흉기를 챙기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러나 김 씨가 현장에서 도주하자 그는 현장에 숨어서 경찰이 조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택시도 일부러 현장에 버리며 경찰을 비웃었다.
이후 또 다른 택시를 훔친 온보현은 그때부터 하루에 한 명씩, 매일 밤 범행을 저질렀다. 그러던 그가 공개 수배 중 갑자기 자수를 한 것
경찰은 그의 진술에 따라 앞서 실종된 홍 씨의 행방을 추적했다.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온보현의 메모로 피해자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현장을 찾아 나선 경찰들. 그러나 9월 28일, 홍 씨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홍 씨를 두고 떠났다는 온보현. 그는 사실 자리를 떠난 척하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래방 주인 김 씨 사건을 실패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의도적으로 자리를 비운다고 밝히고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본 것이다.
그리고 온보현은 결박을 푼 피해자를 삽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한 후 방치했고 결국 예비신부 홍 씨는 사망하고 말았던 것.
죄의식 따위 없었던 온보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범행을 진술했다. 그리고 기자들을 향해 당일 신문에 자신과 지존파 중 누가 탑인지 물었다.
가정폭력을 저지른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한 온보현은 아버지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자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보름 만에 6건의 범행을 저질렀다. 두 건의 살인과 납치 강간 등 다양한 범행을 저지른 온보현.
그런데 그는 피해자들의 행동에 따라 누군가는 풀어주고 누군가는 즉시 살해하는 등 절대자인 양 행동을 했다. 피해자가 순순히 따르는 것을 보며 우월감을 느꼈고 본인을 무시하거나 반항하면 과한 폭력성을 보이는 등 일종의 열등감을 드러낸 것.
그리고 피해자의 반항으로 범행 도중 처음으로 다친 온보현은 범행 의욕을 잃었고 그 후 자수한 것.
하지만 온보현은 공개 수배중로 자살을 하려고 했으나 3건의 혐의만 언급된 것을 보고 직접 사건을 밝히기 위해 자수를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존파 이야기로 떠들썩한 것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범행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범행 일지 작성했다고 주장한 것.
이에 전문가는 "두렵지만 훨씬 더 강한 것처럼 하는 반대 행동을 나타내는 방어 기제를 통해서 자기를 스스로 위로하는 전형적인 반동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수를 한 과정도 이미 자신이 노출돼서 형사들이 계속 자기를 추적하는 데 거의 가까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나는 통제당하는 것보다는 내가 나를 통제할 거야 하는 두려움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분석했다.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악마인 척 포장한 것. 당시 그를 만났던 경찰들도 온보현에 대해 소심하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자, 지존파 보도를 보고 자기를 과시하려고 한 것일 뿐, 본인 자체가 세거나 기가 센 인물은 아니라고 했다.
1심 공판에서 자신을 변호하기는커녕 검사인 양 스스로 사형을 구형한 온보현. 이후 2심에서까지 사형이 선고되었고 형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1995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지존파의 사형 집행일이기도 했다.
온보현 사건 이후 경찰 시스템에는 변화가 생겼다. 행정구역 망라하는 큰 사건을 담당하는 광역수사대가 만들어진 것. 당시 시스템 부재로 전국적인 공조가 이뤄지지 않아 범인에 대한 빠른 검거가 불가능했던 경찰. 이에 당시 경찰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고 당시 형사들은 이 사건이 부끄럽고 가슴 아픈 사건이라 떠올리기도 싫어했던 것이다.
이에 형사들은 "전국적으로 공조가 이뤄졌다면 피해자 한 분이라도 줄이고 일찍 검거를 했을 텐데 형사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어깨가 무거웠던 사건이다. 피해자와 유족분들에게 지금도 무거운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온보현이 교도소에서 쓴 편지를 공개했다.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온보현. 그가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바로 당시 자신의 사건을 담당한 형사였다.
그리고 형사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고 온보현을 끝까지 설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온보현이 그 약속을 지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향한 형사들의 진심만은 전해지길 바랐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