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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5.18 참배 무산…한덕수 정치 행보의 현주소

'당위' 보다는 증명해야 하는 시간

5·18묘역 참배길 막힌 한덕수 전 총리
그제(1일) 저녁 6시쯤,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를 떠나며 기자들을 향해 "또 뵙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 겸 총리로서는 마지막 인사였지만, 이튿날(2일) 한 전 총리는 국회 소통관에 정치인으로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약 3,300자에 달하는 출마 선언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꾸깃꾸깃 접어 가져온 출마 선언문에는 강조하고 싶은 단어마다 동그라미로 표시하고 밑줄을 친 흔적이 보였습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한때 출마 선언문 기자 회견장은 앞뒤로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을 만큼 인파로 붐볐습니다. 출마 선언이 끝나고 약 25분간의 백브리핑 후에 한 전 총리 측 여러 인사들은 "괜찮지 않았느냐"고 분위기를 물을 정도였습니다. 보통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 때 이런 질문이 나오기 마련이죠. 출마 선언문에 담긴 공약과 힘이 담긴 목소리, 이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 오세훈 서울시장과 쪽방촌 방문

쪽방상담소 방문한 한덕수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무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한 한 전 총리의 첫 행보는 서울 종로구의 쪽방촌 방문이었습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불출마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함께 했습니다. 한 전 총리 측이 공직 사퇴 결심 전후로 오 시장 측근들과 자주 소통해 온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 시장 측은 한 전 총리 출마 전부터 "언제라도 도움 요청이 오면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반응한 바 있습니다.

쪽방촌 방문. 한 전 총리는 2022년 국무총리 취임 이후 여름과 그 이듬해인 2023년 12월 겨울, 2024년 겨울 등 재임 기간 동안 해마다 쪽방촌을 방문해 왔습니다. 한 전 총리 측 관계자는 "늘 취약 계층과 약자와의 동행을 추구해오던 연장선에서 바라봐 달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어제 쪽방촌 방문 이후 한 전 총리는 오 시장과 점심 자리에서도 '약자와의 동행'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 전 총리 입장에서는 매년 소화하던 일정이었지만, 국민의 눈에 비친 모습은 어땠을까요. '어색하다', '식상하다'라거나 '중산층은 왜 찾지 않느냐'는 일차원적·조건 반사적 볼 멘소리도 분명 있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행보를 하면 의도가 어떻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 전 총리를 보좌했던 한 참모는 "취약 계층에 대한 한 전 총리의 마음은 일관되다"면서도 "다만, 단일화를 하고 선거에서 궁극적으로 이기기 위한 예비 후보로서의 주목도를 끌어올리지는 못한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고 평했습니다. 그간 국무총리로서 보였던 행보와 지금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에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는 말로도 읽히는데, 대선을 31일 남은 시점에서 되짚어 볼만한 부분입니다. 달콤한 소리가 득 될 게 없는 시점입니다.

● "호남사람"이라 외쳤지만 발길 돌려야 했던 5.18 민주묘지 참배

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한덕수 전 총리가 광주비상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반발에 가로 막히자 "저도 호남 사람"이라며 참배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무총리로서의 '한덕수'는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5.18 기념식에 다 참석했습니다. 당시에는 시민들의 반발이 없었습니다. 방문한지 몰랐을 정도로 조용히 끝났습니다. 하지만 어제(2일)는 달랐습니다. 어제 오후 5시 40분쯤, 5.18 민주묘지 앞에 도착한 한 전 총리는 민주묘지 입장조차 못했습니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피켓으로 한 전 총리의 머리를 향해 피켓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한 전 총리는 굴하지 않고 두 손 모아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는 호남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아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미워하면 안 됩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전 총리 측 관계자는 "집회 참가자들의 반발은 '국무총리 한덕수'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 '정치인 한덕수'에 대한 반감일 것 같다"며 되새겨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데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일지 모릅니다. '윤석열 정부의 2인자', '내란 총리'라는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합니다. 

광주로 출발하기 전만 해도 한 전 총리는 "국민 통합"을 말했습니다. 설마 발길을 돌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여론조사에서 어떤 반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지율 조사와 별개로 한 전 총리의 정치 행보의 적합 여부에 대한 여론의 온도는 반대가 만만치 않은 게 현 주소입니다. 통합의 첫 발로 상징적인 장소를 택한 것은 좋았지만, 시민들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여주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했습니다. 줄곧 갈등과 분열을 수습하고 통합과 상생 등 일종의 '당위'를 외치고 사명감을 다져왔던 한 전 총리로서는 어제 그 현실에서 괴리감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 한덕수에게 국민의힘의란?…불가근 불가원

한덕수 전 국무총리 대선 출마 선언

어제 출마 선언 기자 회견장에는 추경호 전 원내대표 등 일명 '친윤계' 의원들이 여럿 목격됐습니다. 이들은 한 전 총리에게 기자 회견장 길을 안내해 주기도 했습니다. 옅은 미소를 띤 그리고 흐뭇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표정 이면에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알 수는 없지만 '한덕수+친윤'의 그림이 지금, 앞으로도 서로에게 과연 '윈-윈'일까 하는 의구심은 듭니다.

한 전 총리는 어제 백브리핑에서도 윤 전 대통령과 관계 설정을 묻는 질문에 "많은 대통령을 모셨지만 제 철학을 꺾어 가면서까지 대통령을 따라본 적 없다"고 답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한 전 총리 측 핵심 관계자는 "한 전 총리가 당장 친윤계를  가까이 하는 것은 '빅텐트' 구성에 마이너스 요소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예 당의 도움과 지원을 받지 않을 수도 없어 정말 '불가근 불가원'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단일화 국면에서 입당 여부를 결단을 해야 할 시기가 올 텐데 간단치 않다"고 복잡한 속내를 내비쳤습니다. 

한 전 총리는 측근들에게 '당분간은 단일화를 바라기보다 빅텐트를 쳐놨으니 누구든 만나서 삼고초려하는 게 우선이다'는 취지의 의중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전 총리에게 시간은 넉넉하지 않겠지만, 선택은 유권자의 몫입니다. 조기 대선인 만큼 유권자들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습니다. 증명의 시간입니다. 숙고 끝에 링 위로 오른 건 한 전 총리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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