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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47년간 투쟁 중인 여성들···그들이 투쟁 멈추지 않는 진짜 이유는?

[스브스夜] '꼬꼬무' 47년간 투쟁 중인 여성들···그들이 투쟁 멈추지 않는 진짜 이유는?
47년간 투쟁을 멈추지 않은 그들의 요구는?

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꿈의 직장 속 수상한 비밀'이라는 부제로 47년간 꺾이지 않은 여공들의 처절한 외침에 주목했다.

1978년 2월, 잠을 자고 있던 사진사 기복 씨를 깨우는 소리. 새벽 6시간 반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처참한 몰골의 여자가 서있었다.

옷과 얼굴에 무언가가 잔뜩 묻어있던 여자는 사진을 찍어달라며 기복 씨를 깨웠고, 잠시 후 그는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는 증거 사진을 찍게 됐다.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1966년. 꿈의 직장이라 불리던 방직 공장에 취직하게 된 총각이. 하지만 공장 문을 연 순간부터 총각이를 비롯한 소녀들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1명이 25~32대의 기계를 관리해야 했던 여공들은 근무 시간 8시간 동안 1분이 140보를 걸으며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일을 했다.

특히 한겨울에도 40도가 넘는 온도의 공장에서 이런 업무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에 여공들은 소금과 들기름, 스펀지와 무좀약을 직접 준비해서 다니며 고된 업무를 이어갔다.

열악한 환경을 버텨내기 위해 애쓴 여공들. 하지만 당시 여공들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들의 40% 정도에 불과했고 퇴근할 때 여공들이 솜을 훔쳐다 팔까 봐 걱정이 된다며 몸수색까지 했다.

이러한 경악할 회사의 처사에 여공들의 불만은 쌓여갔지만 어느 누구도 여공의 편이 아니었다. 회사의 노조는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남성 관리들로 구성되어 있어 여공들을 감시하고 회사에 보고를 했다. 한창 공부하고 뛰놀 나이였던 여공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공장의 실상을 알아도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여공들은 노조 대표자에 여성을 앉히고 자신들의 불만을 이야기하며 회사 측에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남성 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서 여공들을 억압하려 했고, 남성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한 반대파는 여공들을 통제하고 스스로 공장을 떠나게끔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공들이 뜻을 굽히지 않자 반대파의 공작은 점점 거세졌고, 회사 측은 경찰까지 동원에 여공들을 압박했다.

총각이에게는 횡령죄를 뒤집어 씌웠고 노조 여성 지부장도 함께 연행했다. 그리고 반대파는 날치기 선거를 통해 남성 지부장을 새로 뽑았다.

800여 명의 여공들은 광장으로 모여 선거 무효를 외치며 집행부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외침은 7월의 땡볕 아래서 3일간 계속됐다.

이에 회사 측은 또다시 경찰을 개입시켰다. 경찰은 여공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했고, 끌려가지 않으려는 여공들은 스스로 옷을 벗으며 경찰에 저항했다. 옷을 벗으면 몸에 손을 못 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경찰은 여공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고 72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다행히 날치기 선거는 무산되었지만 이후 반대파의 여공들에 대한 횡포는 더욱 심해졌다. 걸핏하면 인격모독을 했고 시위 사진을 돌려보며 여공들을 조롱했다.

시간이 흘러 1978년 2월, 여공들은 노조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날을 샜다. 그리고 경찰에 미리 도움까지 요청했다.

하지만 투표가 시작되기 전 여공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반대파가 인분을 여공들을 향해 던지며 선거를 막기 위해 노조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이다. 인분을 담았던 통을 머리에 씌우는 등 반대파의 만행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이를 경찰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밤새 지킨 투표함에도 가득 묻은 인분. 이를 본 총각이는 반드시 이것을 증거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사진사 기복 씨에게 치욕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반배파의 승리, 노조 대의원 선거는 무산되었고 이후 여공들의 퇴사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증거를 확보한 여공들은 명동성당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절대 작업장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124명이 단식 농성에 돌입한 것.

이에 회사는 농성을 그만하고 회사로 돌아오면 더 이상 탄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간 여공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해고 통지서였다. 단식 농성을 하느라 자리를 비운 것을 무단결근이라며 해고한 것.

124명 전원 해고 통보에 여공들은 작업복까지 갖춰 입고 작업실로 돌아갔다.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기계를 끌어안고 복직을 요구한 것.

그러나 경찰은 또다시 경찰을 동원해 여공들을 폭행하고 연행했다. 이에 한 명도 빠짐없이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결국 뿔뿔이 흩어져 구직을 시작한 여공들. 그러나 여공들은 새 직장에서도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다.

공장 측에서 전국 사업장에 해고자 124명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공유한 것이다.

이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마련되며 여공들의 명예를 회복할 기회가 생겼고 해고 22년 만에 여공들이 다시 뭉쳤다.

그러나 정부는 회사로부터 피해를 입었지만 국가로부터 피해는 없었다며 여공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2001년 귀인이 등장했다. 중정 출신의 내부 고발자가 등장해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폭로했고 이에 국가도 여공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것.

23년 만에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여공들의 투쟁. 이에 여공들은 다시 보여 복직을 요구했다. 복직 후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해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것.

이들의 투쟁은 47년간 계속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방송에서 이들은 47년 만에 스스로 사직서를 작성하며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본인 의사에 의해서 사직서를 쓰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며 "이렇게라도 사직서를 쓸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라고 마음을 전해 보는 이들까지 울컥하게 만들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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