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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하고 '검은 가래' 콜록…산재 신청하자 "사인해"

<앵커>

오늘(28일)은 법정 기념일로 지정된 후 처음 맞이하는 산업재해근로자의 날입니다. 성공적으로 산업재해를 극복했거나 이들을 도운 사람들에 대한 포상이 있었는데요. 외국인 근로자들은 여전히 이런 산재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엄민재 기자입니다. 


<기자>

방글라데시 출신 아지트 씨.

2021년 기계 공장에서 금속 연마 작업을 하다 10개월 만에 폐질환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지트/이주노동자 : (당시엔) 검정 가래가 나왔어요. 10미터도 못 걸었어요. (왜요? 숨이 차서요?) 네네.]

산재 신청을 했지만, 회사의 회유와 협박은 집요했습니다.

[아지트/이주노동자 : '왜 산재 신청했어? 누구한테 말했어?'라고, (신청 취소 문서에) 사인하라고, 그런데 내가 사인 안 했어요.]

1년 전, 산재 신청은 기각됐습니다.

분진 속에서 일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회사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산재 불승인 취소 소송을 제기했는데, 기약 없을 것 같은 외로운 싸움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최근 보건협회 연구진이 아지트 씨의 작업 환경을 조사한 뒤, 폐질환이 직업적 요인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기 때문입니다.

[아지트/이주노동자 : 폐 기능 40% 잃어버렸잖아요. 돈 없어도 그냥 살 수도 있었어요. 한국에 안 왔으면….]

공장에서 일하다 각막을 다친 방글라데시 노동자 A 씨도 본인 실수로 사고가 났다는 진술서에 서명을 강요받았습니다.

[A 씨/이주노동자 : 산재 신청하면, 회사 문 닫는다고 말했어요. (종이에) 많이 써서 사인해 달라고 했어요. 무슨 말이 있는지 나 몰랐어요.]

이주 노동자 증가와 함께 산재 신청 건수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처음 1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전체 산재 사망자 가운데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12.9%까지 증가했습니다.

위험한 작업을 외국인 노동자로 때우는 '위험의 이주화'는 이 숫자가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게 현장의 증언입니다.

[김달성 목사/포천이주노동자센터 : 산재 신청을 했다가 고용주의 미움을 받으면 당할 불이익이 크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얼굴만 찡그려도 산재 보상 보험 신청하는 것을 포기하는….]

열 달 전 경기도 화성시 리튬전지를 만드는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23명 가운데 18명은 외국인 노동자였습니다.

우리 대신 위험을 떠안고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언어 교육과 안전 교육, 산재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끊임없는 점검이 필요합니다.

(영상취재 : 오영춘·이상학, 영상편집 : 박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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