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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는 '뇌', 영화 같은 가상 세계?…미래의 인간 응시하는 블랙 미러 [스프]

[취향저격]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블랙미러 7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디스토피아적 SF물의 대표주자. 기술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 닥쳐오는 어두운 세계를 그리는 시리즈물, <블랙 미러>가 돌아왔다. 2011년 영국 지상파인 Channel 4에서 시작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시즌 3부터는 넷플릭스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실은 <블랙 미러>만큼이나 상상력이 풍부한 SF물, 혹은 우리의 암울한 상상을 자극하는 디스토피아적 작품은 많았다. 그러나 <블랙 미러>만큼 당대의 불안과 우려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감각적인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품은 없는 것 같다.

그런 작품의 새로운 시즌이 귀환했다는 사실은 팬심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훌륭한 시리즈에도 업 앤 다운(up and down)은 있다. 모든 시즌이 기복 없이 좋기는 힘들기 마련.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한 시즌 7은 역대 시즌을 통틀어도 준수하다. 이 중에서 특히 완성도 높은 두 편을 골라 소개하려 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과 미디어 뒤에 도사린 괴로움을 예리하게 잡아 증폭한 뒤, 스크린 위로 황홀하게 펼쳐내는 작품들이다. 아래부터 <블랙 미러> 시즌 7중 1화 '보통 사람들'과 3화 '레버리 호텔'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다.

취향저격

이번 시즌의 최전선에 자리한 1화 '보통 사람들'은 새 시리즈의 포문을 열 만한 작품이다. 이번 시즌의 정체성을 우리에게 또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제목에 어울릴 만한 평범한 부부가 등장한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뇌에 문제가 생겨 의식을 잃는다. 좌절한 남편 앞에 첨단 IT 기업 '리버마인드' 관계자가 접근한다. 자기 회사의 기술로 아내의 뇌를 살릴 수 있다며. 대신 매월 일정 구독료만 낸다면 말이다. 이 세계에서는 '뇌'도 구독할 수 있다.

아내와의 삶을 되찾고 싶었던 남자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아내의 상태는 호전되지만, 어느 날부턴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리버마인드가 구독자의 입을 통해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다.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되어 버린 것. 이들은 광고를 막기 위해 더 많은 구독료를 내고 '플러스'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다. 하지만 이제 리버마인드는 시스템 서버를 위해 사용자가 자는 동안 뇌를 활용한다. 이를 끊어 내려면 더 비싼 요금제로 업그레이드해야만 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막다른 길에 몰린 이들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이 작품은 "흥미진진한" 구독 서비스가 어떻게 우리 삶을 서서히 옥죄다 마침내 잡아먹고야 마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적은 비용으로 획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서 우리 삶을 그 기술에 이식한 다음, 이용자가 발을 뺄 수 없는 단계에서 참을 수 없는 불편을 주며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간신히 숨을 쉬며 기술을 쫓아가기 위해 허덕대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없다. 윤리가 실종된 곳에서 기술은 인간을 채찍질하는 도구로 작동할 뿐이다. 재밌는 건 이 작품이 구독 플랫폼으로 손꼽히는 넷플릭스에서 상영된다는 점이다. 이건 관대함일까, 자조일까, 혹은 그 모두를 초월한 자신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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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가 비관적인 미래를 상상한다면 3화 '레버리 호텔'은 그 반대다. 여기에는 기술 안에서 펼쳐진 빛나는 세계가 숨어있다. 한 업체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레버리 호텔이라는 고전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기획을 시도한다. 영화 속 세계와 똑같은 가상 세계가 만들어지고, 영화 속 캐릭터들은 마치 사람처럼 가상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이 안에 현실의 배우가 접속하게 하여 영화를 찍는 것이다.

촬영이 시작되자 주연 배우 '브랜디'는 가상 세계에 접속한다. 그녀는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에 놀라워한다. 하지만 곧이어 시스템 오류로 가상 세계와 현실을 잇는 접속이 끊기며 브랜디는 가상 세계에 고립된다. 그녀는 영화 속 캐릭터 '클라라'에게 이 세계의 진실을 알려준다.

여기서부터 이 작품에서, 아니 이번 시즌을 통틀어서 가장 황홀한 장면이 등장한다. 자신이 만들어진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클라라는 처음에는 방황한다. 하지만 곧 진실을 받아들이고 가상 세계 안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녀는 곧 스스로의 존재를 유희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약간의 시간과 그녀가 속한 아름다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진심을 다해 즐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인생에서 때때로 마주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숨어있다. 자신은 유한하며 볼품없는 존재임을 깨달은 이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작품과 닮은 영화 <매트릭스>로 치환해서 얘기해 보겠다. 빨간 약을 먹은 이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대면하게 되고 파란 약을 먹은 이는 포근한 거짓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다. 빨간 약을 먹고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말이다. 과연 우리는 그럴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블랙 미러>의 대답이 '레버리 호텔'에 담겨 있다.

클라라는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지만 그것을 담대하게 끌어안고 유희하며 산다. 여리게만 보였던 그녀의 결단은 눈물겹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몇 가지 변주를 거듭한다. 이 작품의 결론은 충분한 해피엔딩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행복을 추구하는 '리버리 호텔'의 태도가 녹아있다는 점에서 적절하고도 아름다운 결말이라 할 수 있겠다.

기술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을 뒤흔든다. 지축이 흔들리고 지표가 갈라질 때 땅 밑에 잠자고 있던 것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기술이 가져오는 진동은 우리 의식의 수면 아래 감춰진 것들을 끄집어낸다. 거기에는 이기심, 탐욕 등 어두운 것들과 사랑, 자비, 생명의 활기 등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뒤엉켜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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