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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여의도, 예비역 90여 명 집결…면면은? 목적은? [취재파일]

지난 6일 일요일 오후 5시 반쯤 서울 여의도 국회 맞은편 더불어민주당 당사 가까운 건물의 지하 1층 식당에 노병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당초 예약된 인원은 20여명이었지만 70여명이 더 불어나 총원은 90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1인당 5만 원씩 회비 내면 저녁 식사가 제공되는 자리였습니다. 모임의 목적은 '대선 참여 통합 협력 논의'였습니다. 식당이 미어터질 것 같아 상당수는 옆 점포에 따로 자리를 잡아야 했습니다.
 
2017년 대선 때부터 명맥을 이어온 민주당 계열 예비역 단체 천군만마에, 민주당 산하 국방안보특별위원회,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주도하는 민주M포럼 등 3개 예비역 단체 소속 노병들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가 나자마자 민주당의 대선을 지원하기 위해 예비역 장교들이 집결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대선 본선을 위한 캠프는커녕 경선 캠프, 경선 주자도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하게 성황이었다고 합니다.
광화문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에 참가한 천군만마 소속 예비역 장교들
국민의힘 쪽에 예비역 장교들이 찾아갔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리지 않습니다. 대선 후보가 뚜렷하지 않아 예비역들이 현재 시점에서 국민의힘에 모이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하지만 다른 원인이 더 커 보입니다. 예비역 장교들은 진영 보다 실리에 강합니다. 좌우를 따지지 않고 권력의 낙하산 일자리가 손에 잡히는 ‘되는 집’에 배팅하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그래서 지난 6일 여의도 지하 식당 회동이 문전성시였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아울러 예비역들의 여의도 회동은 군의 정치 중립과 충돌하는 장면으로 비쳐져 현역 군인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군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을 보호해야 합니다. 군의 전투력, 기강만큼 군의 정치 중립이 중요합니다. 예비역들은 현역의 거울입니다. 진영을 막론하고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예비역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현역의 정치적 내일을 봅니다. 예비역들의 정치적 행동은 계엄의 늪을 건너는 현역 군인들의 발목을 잡는 부담입니다.
 

● 누가 왜 모였나?

 국회 앞 지하 식당에 집결한 예비역 장교들은 육해공군, 해병대를 망라했습니다. 4성 대장 출신은 육군의 김병주, 백군기, 황인권, 해군의 송영무, 부석종 등입니다. 3성 중장 이하는 김도균 예비역 육군 중장, 최성천 예비역 공군 중장, 김도호·최근영 예비역 공군 소장, 조강래·조영수 예비역 해병대 소장, 박견목 예비역 육군 준장, 김홍철 예비역 공군 준장 등입니다. 영관급 예비역들도 다수 포함됐습니다.
 
여의도 모임은 김병주 의원이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주당과 뜻을 같이하는 3개 예비역 단체들의 회동으로 기획됐습니다. 김병주 의원이 운영하는 민주M포럼, 그리고 송영무 전 국방장관이 이끄는 천군만마, 황인권 예비역 대장이 통솔하는 민주당 국방안보특위입니다. 민주당의 내외곽 예비역 단체들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에 맞춰 일시에 결합한 형국입니다. 민주당 국방위 소속 의원실의 젊은 보좌관들 사이에서 “놀라운 속도, 무서운 결집력이다”, “이 정도 열기면 대선 후 치열한 자리 쟁탈전이 불 보듯 뻔하다”, “계엄이 엊그제 같은데 예비역들만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다” 등 혀를 차는 소리가 나옵니다.
 
국회 앞 식당 모임에 참석한 한 예비역 장군은 “대선 때 어떻게 기여할지 논의했다”고 말했고, 다른 한 예비역은 “계엄으로 신음하는 군을 바로 세울 방법을 토론했다”고 전했습니다. “다음 정권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많이 모인 것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두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6일 모임 참석자들은 예비역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올드보이'이고, 주력들은 새로 나타날 것”이라며 "민주당이 안보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예비역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털어놨습니다. 예비역 장성들 쌓아놨다고 안보 강화되지 않습니다. 안보는 현역들 몫입니다. 현역 군인들 신뢰 회복시키고, 자긍심 높여야 안보는 강화됩니다.
지난 2일 제주도를 방문해 4ㆍ3 묘역에 참배한 민주당 국방안보특위 소속 예비역 장군들

● 12·3 이후 예비역의 자세는?

12·3 비상계엄으로 군의 신뢰가 바닥입니다. 현역 군인들도 말과 행동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겠지만 군 선배인 예비역들의 행동거지도 무거워야 합니다. 12·3 계엄의 주역이 김용현, 노상원 등 예비역이고, 김용현의 볕을 쬔 용현파 예비역들이 계엄의 하부구조를 담당한지라 다른 예비역들도 함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도리입니다. 계엄 후유증이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는 데 각별히 주의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지난 6일 100명 가까운 예비역들이 대선 후보도 세워지지 않은 가운데 국회 앞에 모여서 대선을 논했습니다. 대선 운동 기간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모군으로 뛰어 들어가 공약을 전파하고 세를 규합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선에서 이기면 논공행상으로 군 관련 기관과 기업의 고위직을 차지할 것입니다. 권력에 정치적 빚을 진 셈이라 정치적으로 갚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군은 정치에 휘말립니다. 능력에 안 맞는 자리 맡아 멀쩡한 조직 망쳐놓기 일쑤인데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낙하산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수십 년 반복된 행태입니다.
 
여의도 예비역 회동 소식을 접한 한 현역 장교는 “우파 장교도 정치 군인이지만 좌파 장교도 정치 군인이기는 마찬가지”라며 “현역들도 예비역 선배들 따라서 오른쪽, 왼쪽 중에 하나 골라 정치해야 속이 시원하겠는가”라고 탄식했습니다. 또 다른 장교는 “김관진 이래 8명의 국방장관이 내리 정치적 사건으로 검찰 조사 받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계엄을 겪고도 정치와 권력에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예비역들에 신물이 난다”고 꼬집었습니다.

정치 권력 앞에 줄 서는 예비역들의 계산속을 정치 권력이 모를 리 없습니다. 정치 권력이 굳이 예비역을 기용하겠다면 정치 중립의 참군인을 찾기 바랍니다. 우리 군이 정치로 범벅이 된 계엄의 늪을 무사히 건너도록 길을 트는 데 그나마 도움되는 예비역의 소양과 미덕은 정치 중립입니다. 초야에 묻혀 정치 중립을 실천하는 예비역 참군인들이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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