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더 이상 아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법적으로 어른의 권리도 갖지 못하는 청소년기는 생애주기에서 가장 불안정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라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성과 불안정이 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 좋은 소재가 된다. 청소년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스릴러 장르처럼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고 반항과 영웅심이 극대화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로 학교폭력, 청소년 범죄, 그리고 정의구현이 주제인 경우가 많다.
학교라는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정의를 실현해 주지 못하고, 정서적으로도 기성세대와 분리되어 있어서 청소년들은 효과가 가장 빠른 방식을 택한다.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방식이다. 이런 드라마들은 아직은 순수함을 간직한 소년들이 주먹으로 악을 응징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강력한 쾌락 때문에 인기 순위를 차지한다. 최근에 인기를 모은 드라마로는 넷플릭스의 <약한 영웅>, 티빙의 <스터디 그룹>을 들 수가 있다.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는데, 불가피하게 악의 무리와 부딪히는 상황을 그리며 학교 시스템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최근에 사춘기 드라마의 경향성과는 다른 독특한 드라마가 나왔다. 넷플릭스의 4부작 영국 시리즈 <소년의 시간>이다. 평범하고 소심한 소년, 제이미가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가 몰입감이 높은 첫째 이유는 각 에피소드를 원테이크로 촬영해 마치 실시간으로 사건 현장을 보여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각 에피소드마다 카메라는 캐릭터에 밀착해 대화, 말투, 표정을 꼼꼼하게 따라가며 클로즈업 샷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원테이크는 필립 바렌티니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촬영 방식이다. 전작인 <보일링 포인트>도 원테이크 촬영으로 전쟁터와도 같은 레스토랑 주방의 현장감을 살려냈다.
카메라는 컷 없이 숨 가쁘게 배우들을 쫓아가며,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여학생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주인공 제이미와 가족의 불안정한 정서를 담아낸다. 자고 있던 제이미는 무장한 채 들이닥친 경찰을 보고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충격을 받고 경찰서에 가는 내내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해하며, 범행을 강하게 부인한다.

살해 동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성과의 관계, SNS의 반응에 따라 존재감을 확인받는 사춘기 정서에 초점을 맞춘다. 수사를 위해 학교를 방문한 루크 경위는 '학교가 동물 우리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여자 경사는 '왜 모든 학교에서는 끔찍한 냄새가 날까'라고 말한다. 기성세대에게 학교는 피하고 싶은 긴장감과 어색함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은 다루기도 이해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협조를 구하던 루크 경위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들로부터 사건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소년의 시간>은 SNS와 학교가 주세계인 사춘기 아이들이 어떤 집착을 가지고 그들만의 세계에서 분노하고 절망하는지 보여준다. 십대는 위선적인 속물인 기성세대를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이 부인당했을 때 모욕감과 분노를 격정적으로 드러낸다. 드라마는 폐쇄적인 청소년의 세계에서 그들의 감정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기성세대와 분리, 청소년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 그리고 범죄인으로 낙인찍힌 청소년이 있는 가족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대해 다면적이고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가족은 범죄자가 된 제이미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이해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외면하고 잊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끌어안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갈등을 드라마는 섬세하게 묘사한다. 제이미는 재판을 기다리며 청소년 보호 훈련 센터에 있으면서 아버지의 생일에 축하 전화를 걸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려 든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아들에게 모진 말을 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복잡하고, 아들에 대한 신뢰감은 이미 금이 간 것처럼 보인다.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인 3화는 재판을 앞두고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제이미를 방문하는 심리상담사와 면담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 심리상담사가 제이미와 마주 앉았을 때 제이미는 지금까지 보였던 사춘기 소년의 소심한 태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성인 여성을 조롱하고 통제하려는 마초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평상시에 숨겨왔던 욕망이다.

제이미는 극단적인 인정욕구를 보인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은 없고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제이미는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권력에만 신경을 쓰면서 사춘기 소년의 모습을 뛰어넘는 영악함을 보인다. 제이미는 상담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판사에게 전달될 자신의 보고서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상담사의 질문에 말려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상 증세를 보인다.
상담사는 희생자의 죽음과 관련성을 찾기 위해 제이미가 어떤 여성관을 가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상담은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못한다. 제이미는 여성 상담사가 자신을 통제한다고 생각해 격하게 반항하면서, 동시에 그녀에게 호감을 받고 싶은 이중성을 보인다. 여러 차례의 위기에도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고 상담을 끝낸 후, 상담사가 보이는 눈물은 현실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