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고 말다툼하다 흉기를 휘둘러 룸메이트를 살해하려 한 혐의로 법정에 선 외국인 근로자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이은혜 부장판사)는 살인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4일 밝혔습니다.
베트남 국적인 A 씨는 지난해 5월 12일 오후 10시 30분 정선군 한 외국인 근로자 숙소에서 함께 살던 B 씨와 술을 먹고 말다툼하던 중 흉기를 휘둘러 B 씨를 숨지게 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조사 결과 A 씨는 B 씨가 "너와 나 흉기를 하나씩 들고 싸우자", "왜 안 찌르냐. 어차피 찌르지도 못하면서 왜 전화를 걸었냐" 등 발언을 하며 흉기를 A 씨 목에 들이대자 화를 참지 못하고 범행했습니다.
당시 B 씨는 현장에서 도망쳐 인력사무소 운영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병원에서 약 4주간 치료받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A 씨 측은 "목에 흉기를 들이대고 위협하자 생명이 위태롭게 될 것 같은 공포, 경악, 흥분 상태에서 예상되는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였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영월지원은 A 씨가 B 씨가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가만히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살인의 고의는 인정했습니다.
다만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C 씨가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을 토대로 당시 A 씨가 짧은 시간 내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황한 상태에서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껴 흉기를 휘둘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은 피해자의 공격에 대해 곧바로 반격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들고 있던 흉기를 쳐냈고, 계속해서 피해자가 흉기를 들고 쫓아오자 부득이하게 흉기로 공격했다"며 범행 전 한 차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또, A 씨가 B 씨에게 반격하는 차원에서 흉기로 복부를 한 차례 공격한 것 외에 추가로 나아간 공격 행위가 없는 점 역시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다만 법원은 A 씨가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약 5년 9개월 동안 국내에 불법 체류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 측 주장을 다시 살핀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에는 사실 오인의 위법이 없고 양형 요소도 이미 원심에서 충분히 고려됐다"며 형을 유지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