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마가 삼킨 감나무
"이번 화재로 집과 창고가 폭삭 주저앉았어요. 창고에 있던 곶감 건조기, 저온 창고와 건조장 내부에 있는 리프트(곶감 걸고 내리는 장치)까지 모두 타버리며 남은 게 없어요."
어제(지난달 31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에 사는 정 모(64) 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흘간 이어진 경남 산청 산불의 주불은 진화됐지만, 지역 특산물인 곶감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마음은 아직도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산불의 직격탄을 맞은 시천면은 지역을 대표하는 곶감 생산지역입니다.
산청지역 곶감 1천300여 농가 중 절반 이상이 이곳에 집중됐습니다.
마을 주민 다수가 곶감 재배로 생계를 잇는 중태마을 농가에서도 크고 작은 피해가 뚜렷했습니다.
산불 피해로 폭삭 주저앉은 주택, 시커멓게 타버린 산과 마을 사이로 새까만 숯덩이가 된 감나무가 즐비했습니다.
또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뿌리 아랫부분이 타 '사목'이 된 감나무도 수두룩했습니다.
정 씨는 "다행히 30그루 정도 있는 감나무는 크게 피해가 없었다"며 "그래도 곶감을 말리기 위한 설비가 모두 잿더미가 되면서 올해 생산량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고 호소했습니다.
평소라면 감나무 가지치기나 퇴비 뿌리기 같은 작업이 한창일 시기이지만 산불 여파로 정 씨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중태마을 곳곳에는 철제 구조물이 휘어지고 녹아내린 주택이나, 화재로 인해 검게 그을린 자국들이 곳곳에서 관찰됐습니다.
일부 집은 건물 지붕과 벽면이 대부분 붕괴한 상태로, 내부는 거의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습니다.
주택을 둘러싼 산림도 불에 심하게 훼손된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60∼70대 주민 3명은 화재로 탄 주택 옆 나무를 손으로 가리키며 "나무 아랫부분이 시커멓게 탄 것도 감이 자라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산청군은 조만간 곶감을 포함해 양봉, 산나물 등 지역 주요 농축특산물과 임산물에 대한 피해 조사를 하고 복구비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박수정 지리산 곶감 작목연합회장은 "정확한 집계가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까지 지역 곶감 농가의 40%가량이 이번 화재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며 "불이 번진 하동군 옥종면에 농장이 있는 이들도 있어 그것까지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보통 감나무가 야산이나 논밭에 심은 경우가 많아 산불로 인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며 "전년도에 비해 생산량이 3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