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니아 바트리스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활동가로, 진보적인 의제를 세우는 전략가다. 리비 렌킨스키는 이스라엘계 미국인 활동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 알비(Albi)의 창립자다.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 북쪽으로 모여들었다. 볕이 이미 따가운 평일 낮 근무 시간임에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의 줄이 장사진을 이뤘다.
라스베이거스라는 이름을 듣고 으리으리한 호텔과 화려한 건물 조명이 불야성을 이루는 영화 속 모습을 떠올렸다면, 치장 벽토를 두른 집들과 허름한 연립주택 단지 사이로 상점과 식당들이 듬성듬성 들어섰고, 주위엔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공터가 제멋대로 방치된 라스베이거스는 분명 낯설 것이다. 하지만 버몬트주를 대표하는 무소속 연방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바로 이 버려진 공터에 반세기 가까운 자신의 정치 경력을 통틀어 가장 많은 청중을 불러 모았다. 네바다주는 샌더스 의원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아코르테즈 하원의원과 함께 진행 중인 "과두정과의 싸움 전국 투어(Fighting Oligarchy Tour)"의 남서부 첫 목적지였다.
네브래스카, 아이오와, 애리조나, 콜로라도를 포함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샌더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샌더스 의원의 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였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고 그대로지만, 지금은 메시지의 울림이 아주 크다. 지난 20일 샌더스 의원의 연설을 들으러 네바다주 곳곳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결과,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선 여기에 온 모든 사람은 돈 때문에 크고 작은 위기를 겪고 있었다. 또 자신이 평생 믿고 의지해 온 미국이란 나라가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서서히 망해가는 모습에 겁을 먹고 있었다. 이런 두려움은 난생처음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연설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평범한 미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지금 미국은 분명 한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미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빠듯해진 미국인들은 이러다 경기 침체라도 오면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헌법을 대놓고 무시하고, 바위처럼 오래 단단히 버틸 것 같던 연방 정부 제도 여기저기를 마구 헤집고 파괴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서 메디케이드와 공립학교, 군에 복무한 이들이 받는 연금 등 각종 혜택, 그리고 사회보장 연금(Social Security)마저 끝내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걱정한다. 트럼프라면 제도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도 빼앗아 갈지 모른다.
샌더스 집회 현장은 이 모든 감정으로 뒤엉켜 있다. 우선은 두렵지만, 동시에 화도 나면서 무언가 목적을 위해, 어딘가로 뿜어내고 싶은, 그러나 아직 분출된 적 없는 거대한 정치적 에너지가 날것 그대로 느껴졌다.
요즘 제 감정은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엇이 사라지고 날아갈지 걱정부터 들죠.
판금(sheet metal) 노동자로 일하다 최근 은퇴했다는 켈리 프레스 씨가 내게 한 말이다. 디트로이트 출신의 건장한 남성 프레스 씨는 올해 65세로, 은퇴 전에는 서부 지역 곳곳의 건설 현장을 돌며 일했다.
자신이 속한 노조(판금노조 88 지부) 이름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온 프레스 씨는 양손에는 큼직한 반지를 꼈고, 파란 눈을 가리기 위해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로 이사 온 뒤 잠시 도박장에서 딜러로 일하기도 했지만, 도박이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리는지 직접 본 뒤로는 더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내 (카지노보다) 훨씬 더 평온한, 땀 흘린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건설 현장으로 돌아갔다.
프레스 씨는 만약 오늘 연단에 오른 누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뜻에서 워싱턴 D.C.까지 행진하자고 청중에게 제안한다면, 자신은 "신께 맹세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길로 따라나설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든 길을 제시하는 사람 말이에요. 그래서 미국인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하며 두려워하는 거예요.
2년 전 은퇴할 당시 프레스 씨는 한 달에 1,000달러면 기름과 먹을거리를 포함해 생필품을 충당하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계산했다. 실제로 한동안 은퇴 후의 삶은 계산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더니, 매달 생필품을 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도 1,400달러로 올랐다. 그는 자신의 동료 노조원 중에도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세금과 노조 회비 내는 데 지쳐서, 또 총기를 압수하려는 정부가 싫어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친구들이 있다며, 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믿는다.
지금, 이 나라는 점점 더 러시아처럼 되고 있어요. 선거로 뽑은 정치인에 대해서 말할 때도 입조심해야 하는 걸 보세요.
프레스 씨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미국인은 법원의 판결을 깡그리 무시하고, 공무원들을 사방에서 위협하기 바쁘며, 시민의 자유를 아무렇지 않게 짓밟고 무시하는 백악관과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앞장서서 저항하고 싸우는 리더를 갈망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선거에서 노동 계급에 외면받은 이유를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당 주요 인사들은 팟캐스트, 방송 토론과 대담 등에 출연해 어떻게 하면 다시 노동 계급의 마음을 살 수 있을지 전략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그러는 사이 미국인들 마음속에 쌓인 불만을 어루만지고 활용하는 방법을 이해한 사람은 샌더스 의원밖에 없는 것 같다.
그가 하는 말 중에 새로운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어쩌면 지겹도록 되풀이해 온 말과 구호를 또 한다. 전 국민 의료보험, 약제가 인하, 부자 증세, 주립대학 무상 교육, 노동조합 강화, 최저임금 인상 등이다. 샌더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다.
샌더스가 시류에 편승해 저런 주장을 난데없이 꺼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곧장 반박당할 것이다. 오히려 세상이 돌아가는 양상이 샌더스의 오랜 주장을 새삼 돋보이게 했다. 그가 오랫동안 경고해 온 것들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지고,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정확히 현실에서 일어나자, 샌더스는 어느덧 선견지명의 대명사가 됐고, 그가 과거에 한 말이 잇따라 '성지글'로 조명받고 있다.
이제 그는 사람들이 견뎌 온 고통과 불안감, 그리고 오랫동안 무시돼 온 자신의 주장을 온전히 하나로 묶을 수 있게 됐다. 그는 치솟는 물가를 기업의 지배 구조와 부, 그로 인한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문제와 결부해 설명한다. 독재자의 자질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트럼프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인 일론 머스크로 대변되는 과두정의 득세는 부의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 사회가 망할지 모른다던 샌더스 의원의 오랜 주장을 그대로 뒷받침한다. 샌더스는 이어 연방정부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끊임없는 공격이 지금 연설을 듣는 청중들의 가계 예산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즉, 과두정은 아무렇게나 멋대로 정부를 해체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부자들의 세금을 수조 달러 아끼려는 목표 아래 철저히 계산된 공격을 편다는 것이다.
북부 라스베이거스의 선명하리만치 푸른 하늘 아래서 연설을 듣던 청중 사이에서 이따금 "부자에게 세금을!"과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의 노래 "모두가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가 공원에 울려 퍼진다.
오카시아코르테즈 의원은 군중을 더욱 열광시킨다. 그는 열광하는 군중들을 향해 "우리는 우리를 위해 더 열심히 싸워줄 민주당을 원합니다! 그렇죠, 여러분?"과 같이 본인이 속한 정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또 지금은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이든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가족이든 다 같이 모이고 조직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이 운동은 당파적인 것도, 정치적 순수성을 시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운동은 계급의 연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은 다음 한 마디로 묶어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생명은 존엄하다. 그리고 우리의 노동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라고요.
이어 그 이름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샌더스 의원이 등장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계속해서 호통쳤다. 그는 테크 기업을 겨냥하며, 특히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 세 명이 미국 사회에서 가난한 절반에 해당하는 1억 7천만 명의 자산의 합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극소수 갑부들이 매우 탐욕스럽고, 한없이 사치스러우며, 경제적 현실과 철저히 동떨어져 있다고 조롱하듯 비판했다.
이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통 몰라요. 우리는 미국 사회를 극소수 갑부들이 정부를 쥐락펴락하는 과두제로 전락하는 것을 절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샌더스 의원은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상기하려는 듯 소리를 높였다. 헌법을 줄기차게 무시하고 공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청중을 향해 물었다.
급여 생활자로 근근이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러분들은 잘 아시죠?
사람들은 소리 높여 저마다 생각하는 바를 외쳤고, 샌더스 의원은 이를 하나하나 마이크에 대고 복창했다.
맞습니다. 자녀를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싶은데 막막하죠. 그렇죠, 약값과 이번 달 월세 중 하나는 포기해야만 하는 거죠. 신용카드 연체 이자율이 20%나 돼서 막막한 것도 그렇네요.
이때 내 옆에 서 있던 한 젊은 여성은 자기 옆에 선 남성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이자가 겨우 20%라니, 부럽네."라고 중얼거렸다.
샌더스 의원은 이 모든 사정을 하나하나 곱씹듯 나열한 뒤 청중에게 미국인의 기대 수명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나라 사람들의 기대 수명보다 낮고, 심지어 미국 저소득층의 기대 수명은 다른 부자 나라의 저소득층 기대 수명보다 훨씬 더 낮다고 말했다.
청중들은 샌더스 의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했다. 트럼프나 머스크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사람들은 주먹을 치켜들고 큰소리로 야유를 보냈다.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욕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카타르시스의 향연이 느껴졌다. 초등학교 2학년 교사인 디나 개러베이 씨는 내게 말했다.
(샌더스 의원은) 지금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이죠. 힘없는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에요. 그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위해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사실 민주당도 늘 그러지는 않거든요.
올해 56세인 개러베이 씨의 정치적 배경은 이색적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공화당을 지지했던 그는 공화당이 부자들만 너무 감싼다는 생각에 공화당에서 점점 멀어졌고, 자연스레 민주당으로 끌렸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책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만약 공약만 보고 투표한다면 녹색당을 찍겠지만, 당선 가능성을 고려하면 사표가 될 게 뻔하기 때문에 그것도 싫다고 개러베이 씨는 말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그저 누군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이 갑자기 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개러베이 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교육부를 폐지하려는 걸 보고 경악했다. 그가 보기에 교육부가 폐지되면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볼 것이 뻔하다. 라티노 여성이자 성소수자로서 불법 이민자를 대거 추방해 버리자고 선동하는 데도 화가 나지만, 무엇보다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LGBTQ)가 권리를 빼앗기는 게 걱정된다고 개러베이 씨는 말했다.
동시에 개러베이 씨는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인 라스베이거스의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다. 몇 년 전 그는 내 집 장만을 위해 애리조나를 떠나 라스베이거스로 이사 왔다. 그러나 집을 알아본 뒤 자신이 마련할 수 있는 돈으로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남편과 10대 딸과 함께 이동식 임대 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사는데, 일주일에 장 보는 데 드는 비용만 120달러에서 200달러로 치솟는 바람에 생활이 더 힘들어졌다. 그는 동료 교사 중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퇴근 후에 우버 기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제가 아는 모든 교사는 집을 살 형편이 안 돼요. 돈을 벌기 위해 다들 정말 뼈 빠지게 일하지만, 그래봤자 월급은 고스란히 다 월세로 나가는걸요.
이것 말고도 샌더스 의원을 보러 나올 이유는 차고 넘쳤다. 사람들에게 왜 오늘 연설을 보러 왔는지 물을 때마다 "얼마나 오래 들어주실 수 있는데요?"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다들 할 말이 오랫동안 쌓인 듯했다.
이제 샌더스 의원은 으슥한 건물 라운지에서 기업 로비스트들이 정치인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는 대가로 부정한 청탁을 하는 모습을 굳이 소리 높여 지적할 필요가 없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모든 것을 만천하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는 2억 7천만 달러 넘는 돈을 선거에 쏟아부었고, 그 결과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장 힘 있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한때 화성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꿈을 꾸던 괴짜 기업인은 이제 노인과 제대한 군인, 가난한 미국인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마저 말 한마디로 제거해 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샌더스 의원은 무대 뒤에서 내게 "미국 사람 중에 이를 두고 미쳤다고 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의 전횡 때문에 중도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도 샌더스가 오랫동안 좌파의 관점에서 분석한 경제적인 주장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 사람들은 머스크와 트럼프가 어디까지 법과 제도를 망가뜨릴지 두려워하는데, 샌더스는 오래전부터 트럼프의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경고해 왔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또한, 트럼프가 다른 건 몰라도 물가는 잡아줄 거라고 기대하고 표를 준 노동자 계급의 마음을 다시 돌리는 데도 유리하다.
샌더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난하면서도 민주당을 향한 공격은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민주당이 민권과 여성,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노력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만 민주당이 서민, 중산층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등한시했다고 평가했다. 샌더스 의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가 노동 계급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표를 받았을까요? 노동자들이 억만장자에게 세금을 더 깎아주자는 정책에 찬성해서 그럴까요? 전혀 아니죠. 그게 아니라 민주당이 이들의 요구를 자꾸 외면하고 무시하다가 노동자들의 신망을 잃었고, 트럼프가 그 공백을 잘 공략한 겁니다.
그는 자신이 미국 의회 역사상 무소속 의원으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주당은 시대에 맞춰 변화하거나 그러지 못하면 유권자들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이 과연 변화할지 못할지 지켜보죠."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에 제가 거는 희망이 있다면 이런 거예요. 민주당은 1930, 40년대 루스벨트, 트루먼 대통령이 지녔던 세계관을 되찾을 필요가 있어요. 온 정당이 오직 기업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걸 당장 멈춰야 합니다. 당이 앞장서서 변하지 않는다면, 뜻이 있는 의원들은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진보적인 의제를 펴는 무소속 의원으로 선거를 치르고, 필요할 때만 민주당과 협력하는 식으로 정치하는 편이 낫습니다.
군중 속에서 나는 33세 수영장 청소부 샘 로렐 씨를 만났다. 그는 오늘을 위해 "부자들을 먹어 치우자(Eat the rich)"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왔다. 그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오직 상위 1%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하고, 다수인 우리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데 우리가 얼마나 참아왔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며 연설을 보러 온 이유를 밝혔다.
샌더스 의원과 마찬가지로 로렐 씨도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과 자신이 경제적으로 겪는 시련을 한데 묶어 현재 정치에 관한 의견을 폈다. 그는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집을 따로 장만할 여력이 없어 가족이 함께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는 특히 "온갖 사기를 잡는 경찰"로 추켜세운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이 사실상 와해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수년간 의료보험 없이 살다가 마침내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사이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나이에 비해 훨씬 일찍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보장 연금과 메디케어에도 분명 손을 댈 것이다. 로렐 씨는 대학교에 가서 교사가 되고 싶지만, 학비를 마련할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다수 서민을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빼앗기고, 뜯기고, 정말 많은 것을 잃으면서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요.
그는 요즘 부자들의 별장에 있는 정원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날카롭게 바라보게 되고, 불편할 만큼 뚜렷이 느끼게 된다.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실은 사막 위에 세운 신기루 같은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는 부자들의 수영장에 채우는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청소 노동자로 산다. 샌더스 의원이 늘 지적하는 노동자 계급의 힘겨운 삶과 한탕주의 신기루를 좇는 사람들의 욕망이 이토록 뚜렷하게 대비되는 공간이 또 있을까? 그가 관리하는 수영장이 딸린 별장 주인 중 한 명은 유명 연예인인데,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멀리 떨어진 데 살며, 수영장 물이 새는데도 이를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밑 빠진 독 같은 수영장을 볼 때마다 로렐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