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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의사 출신 경제학자가 보는 한국 사회는?

SBS D포럼은 지난해 초저출생이 야기한 인구 감소로 우리 사회가 소멸 위기에 놓인 점을 조명한 바 있는데요. 얼마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해 출생아의 수가 23만 8천여 명으로, 전년보다 8천200명 정도 더 늘었다는 것인데요. 우하향하던 출산율 그래프가 반등한 건 2015년 이후 9년 만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최근 연세대학교에서 대한민국의 급격한 인구 변화에 대응하고, 데이터 기반 정책 연구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인구와 인재 연구원'을 개원했는데요. 초대 원장인 김현철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SDF
김현철 교수
김현철 교수

Q. 경제학자이면서 의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20여 년 전, 의사로서 환자들을 만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죠. 말기 암 환자도 그렇고, 시골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할 때 만난 노인들께서는 병원에 오기조차 힘든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분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할 당시에는, 의약 분업 사태로 인해 의사들이 파업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사회 제도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죠.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시금 제도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이러한 문제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회과학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요, 주변의 많은 분들께서 '경제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하셨어요. 그래서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그렇게 20년 동안 경제학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의과대학으로 돌아오니 이제는 '경제학자 70, 의사 30' 정도의 비율로 제 정체성이 자리 잡힌 것 같습니다.

김현철 연세대 '인구와 인재 연구원' 원장의 연구실에서 김 원장과 인터뷰 중인 SBS 류란 기자

Q. 연세대 '인구와 인재 연구원'의 초대 원장을 맡으셨습니다.

제가 지난해 9월 연세대학교에 부임하면서 연구원이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17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행을 택한 이유는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오랜 꿈 때문이었습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제가 해온 연구들을 돌아봤고, 대한민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시대적 아젠다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 답이 인구와 인재였습니다. '인구'의 부분, 즉 저출산, 고령화, 이민 문제를 포괄하고요. '인재' 차원에선 건강(보건 및 의료), 교육, 노동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사회적 약자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의 양과 질 모두에서 사회적 약자는 중요한 요소이며,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연구원의 역할은 이러한 문제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인구와 인재 연구원'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한 가지 학문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난제를 다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희 연구원은 특정 단과대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전체 차원에서 운영됩니다. 의과대학과 상경대학이 협력하여 연구원을 출범시켰지만, 3년 안에 모든 단과대학이 참여하여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둘째, 근거 중심의 정책 연구(Evidence-Based Policy)를 수행하는 연구원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책들은 직관과 당위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과학적이고 엄밀한 연구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코로나 백신이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백신 후보 물질을 만든 후 실험을 합니다. 한 그룹에는 백신을 투여하고, 다른 그룹에는 투여하지 않은 후, 두 집단의 차이를 관찰하는 방식이죠. 경제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20년 동안 경제학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정책의 효과를 증명하는 학문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경제학과 의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방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예를 들어, 유방암 치료를 할 때 '이 환자에게는 어떤 치료가 가장 적합한가?'를 판단하려면 수십만 개의 임상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립니다. 경제학도 정책을 설계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연구 방식을 활용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정책을 만들고 나서도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또는 "잘 안 된 것 같다"라는 수준에서 논의가 끝나 버리곤 하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지자체에서 출산 장려금을 지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정책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이 정책은 효과가 없었어" 또는 "그래도 조금은 효과가 있었겠지"라고 말할 때에도, 정확한 분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밀한 경제학적 연구를 해보면, 출산 장려금이 출산율 감소를 약 5% 정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자체마다 지급 금액이 달랐기 때문에 지역 간 차이를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연구원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결과를 정책 입안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원은 매달 정책 포럼을 개최할 계획입니다.

Q. 출산율이 소폭 반등한 것을 두고 저출생 정책이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언론이나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김현철 교수

그렇죠. 바로 이런 경우가 정말 어려운 부분이죠. 출산율이 올랐다면, 이게 정책 때문일까요? 아니면, 과거 코로나 시기에 결혼을 미루거나 아이를 갖기 어려웠던 부부들이 이제 와서 출산을 한 것일까요? 이 두 가지 요인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치가 올랐다고 해서 "저출생 정책이 성공했다"고 만세를 부를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것이죠. 결혼하는 사람의 수가 언제부터 증가했는지 아세요? 2023년 4월부터 전년 대비 결혼 건수가 약 15% 증가했습니다. 이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Q. 신혼부부 주택청약 관련 제도가 변경되었던가요?

맞습니다. 2023년 4월 1일부터 청약 제도가 결혼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변경되었습니다. 그러자 유튜브에서 "지금 당장 혼인 신고하세요!"라는 콘텐츠가 쏟아졌죠. 그렇다면, 15%의 증가가 좋은 일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 증가가 정말 새로운 결혼을 늘린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동거 중이던 커플들이 청약 혜택을 받기 위해 혼인 신고를 한 것인지는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결혼 건수 증가가 사회적 판도를 바꿀 만한 변화인가?'에 대해서는 유보적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청약 제도가 변경된 직후 결혼이 증가했다는 점은 사람들이 정책적 인센티브에 강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2023년 1월 1일 신혼부부 특별공급 대출 제도가 변경되면서, 아기를 낳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출산을 하려면 보통 10개월이 걸리죠? 실제 정책 시행 후 약 10개월 뒤부터 출산율이 약간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증가가 대출 제도의 변화 때문일까요?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월 1일을 기점으로 바뀌는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정책만을 원인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단기적, 장기적으로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는 체계적인 방법론을 적용해야 합니다. 정확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책의 진짜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 연구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기본계획이 4차까지 진행되었고, 내용과 접근법이 점진적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4차 기본 계획을 어떻게 평가하고, 5차 계획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제4차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

4차 기본계획은 정책 수요자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정책 수요자들과의 대화를 많이 시도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출산 인센티브의 중요성을 정책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긍정적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것이 기본 원리인데, 정책에서도 이를 고려하여 출산 장려 정책을 설계하려는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및 돌봄 노동자 도입 문제가 처음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어 정책 결정자들이 쉽게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돌봄 노동자 도입은 필수적입니다. 현재 한국은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향후 10년 내에 30~50만 명, 20년 뒤에는 최대 140만 명의 돌봄 노동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국인만으로 돌봄 인력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로봇이 돌봄을 대신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요원한 상황입니다. 현재까지는 중국 동포들이 돌봄 노동의 주축이었지만,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유입이 줄어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요양병원 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4차 계획에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룬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여전히 논의가 부족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했던 변화 중 하나는 정책의 과학적 평가와 환류(Feedback) 시스템을 명문화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책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효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4차 계획에서는 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반영하여 정책을 개선하겠다는 원칙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연구자로서 매우 반가운 부분이며, 앞으로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 육아휴직 자동화 및 디폴트 설정 필요"
김현철 교수

5차 계획에서 반드시 보완해야 할 사항들도 있습니다. 먼저, 임신·출산 이전 단계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부분인데요. 현재 저출산 대책은 출산 이후의 지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임신 기간 및 그 이전 단계의 지원이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학 연구에서도 임신기의 환경이 아이의 인생 성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1919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시기에 임신했던 여성들의 아이들은 성장 후 교육 수준이 낮고, 건강 문제를 겪을 확률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임산부 보호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의 건강 지원 정책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남성 육아휴직의 자동화 및 디폴트 설정에 대한 것입니다. 현재 육아휴직은 신청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를 자동 육아휴직으로 바꿔야 합니다. 출산 후 자동으로 육아휴직이 적용되고,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만 별도 신청을 통해 제외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남성도 출산 후 즉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남성들이 육아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출산 직후부터 자연스럽게 양육에서 배제되는 구조 때문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는, 사회적 약자, 특히 장애 아동에 대한 지원 강화에 대한 것입니다. 현재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아동의 치료 비용은 월 50만 원 이상이 소요되며, 의료보험 지원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애 아동이 있는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취업 확률이 5%p 감소하고, 장기적으로 가구 자산이 1억 원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 아동 가정에 대한 재정적 지원 및 복지 강화가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의 세제는 아이를 낳아도 부모에게 실질적인 세금 혜택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가족 단위 과세를 적용하여, 아이가 많을수록 세금 부담이 대폭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맞벌이 부부의 연소득이 1억 5천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한국과 프랑스의 기본소득세는 똑같이 2천500만 원이에요.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소득공제는 50~100만 원 정도인데요. 프랑스는 자녀가 1명이면 2천만 원, 2명이면 1천500만 원, 3명이면은 900만 원까지 줄어요. 세금 감면만 하면 고소득층에 유리할 수도 있으니까, 부모급여 같은 지원도 같이 진행돼야겠죠. 한국도 이러한 가족친화적 세제 개편을 통해 출산 및 양육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5차 기본 계획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 실질적으로 효과적인 정책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정책을 다 한다고 해도 출산율이 2.1이 될 수 있을까요? 2.1은 커녕, 1.5라도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출산율의 변화에는 문화와 의식, 가치관의 변화가 훨씬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로 이스라엘은 합계출산율이 2.89로 선진국 중에 가장 높습니다. 미국에 있는 유태인의 출산율은 흥미롭습니다. 정통파(Orthodox) 유대인의 경우, 출산율이 높아 평균적으로 3.3명의 자녀를 둡니다. 반면 비(非)정통파 유대인은 평균적으로 1.4명의 자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문화, 종교, 가치관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저희 연구원이 의학, 경제학에 머물지 않고 모든 영역을 포괄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OECD 국가 중 병원 사망률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
김현철 교수

Q. 고령화 사회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계실 텐데요.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함께 고령화 문제를 다룰 때 주목해야 할 접근법이나 핵심 이슈는 무엇일까요?

고령화 문제는 한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 연구원이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존엄한 죽음'입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병원에서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를 받으며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개인적 불행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막대한 의료비 지출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병원에서 사망할 확률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2위 국가와도 격차가 클 정도로 대다수의 사람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임종의 방식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먼저, 연명치료 중단 및 존엄한 죽음 지원에 대한 것인데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제 100만 명 이상이 '연명의료계획서(Advanced Directives)'에 서명한 상태입니다. 이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한 분들에게 국가가 납골당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한 분들은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선택을 한 분들에게 국가 차원에서 작은 예우를 해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국가 예산 측면에서도 부담이 적고, 개인에게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재택 임종(집에서의 존엄한 죽음) 활성화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임종이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요양원이나 병원에서는 개인의 생활이 제한됩니다. 요양원에서는 새벽 6시에 불이 켜지고, 밤 10시에 TV가 꺼지는 등 군대와 유사한 생활 방식이 강요됩니다. 간병인 부족 문제도 심각합니다. 6인실에 간병인이 한 명뿐이라면, 배변 처리를 포함한 모든 돌봄이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려면 재택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의료적·경제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재택 임종이 어려운 이유는 비용이 너무 높고,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재택 방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지만, 의료 수가가 너무 낮습니다.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의사와 간호사가 방문 진료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김현철 교수

세 번째는 외국인 간병인 도입 확대입니다. 대만은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및 간병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서울시가 아이 돌보미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경기도는 노인 돌봄으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간병인 비용이 너무 높아(월 400만 원 수준) 가계 부담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외국인 간병인의 공급을 늘려 시장에서 가격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늘어나면 간병 서비스 비용이 낮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간병인의 노동 환경이 일반적인 8시간 근무제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 최저임금 예외 적용 등의 정책적 논의도 필요합니다.

저는 고령화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마지막 단계를 잘 설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연구원에서는 연명 의료, 임종 케어, 간병인 문제 등 다양한 고령화 이슈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원의 핵심 멤버로는 세브란스병원의 연명의료센터장 정민규 교수를 비롯해 암 전문의 박중철 교수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향후 관련 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존엄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정책적·사회적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재 인구전략기획부 논의가 보류된 상태입니다. 전문가로서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십니까?

인구부(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출산율은 총성 없는 전쟁 상황과 같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집단적으로 출산을 거부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국가는 이 문제에 대해 예산을 아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무작정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으며, 인센티브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인구 문제는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제도적 문제를 모두 포괄합니다.
김현철 교수

따라서 이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인구부가 반드시 필요하며, 다음 대선에서도 인구 문제를 핵심 공약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문화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요?

저는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가정 친화적인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편한 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노키즈존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정부가 강제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반발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성해야 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가족이 함께하는 삶이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K-POP 스타나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라'가 아니라, '함께할 때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해야 합니다. 출산율 저하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고, 그 원인은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왜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할까요?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양극화 문제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더 큰 경제적 압박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소득 격차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은 시장 원리이지만, 재분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철 교수

최근 김성은 세종대 교수와 염민철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교수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이 출산율을 30%나 감소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0.7 수준의 출산율이 1.0이 될 수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세계적인 경제학 저널(American Economic Review)에도 실린 연구 결과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는 순간부터 부모들이 강한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구조입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학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이는 곧 교육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주거 문제 해결 △양질의 일자리 제공 △양극화 완화 이 세 가지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에 모든 자원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 젊은 세대가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면, 출산율이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출산율 문제는 단순한 출산 장려 정책이 아니라, 경제·사회 구조 전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경제학자로서,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근본적인 원인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DF
어떻게 읽으셨나요? 연세대 <인구와 인재 연구원> 개원 컨퍼런스가 마침 이번 주 금요일 열린다고 합니다. 주제는 '이민'이라고 하는데요. 고령화 시대 돌봄인력 등을 어떻게 수급할 것인지,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등을 다룰 예정이라고 합니다. 인구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참고하실 만합니다. (아래 포스터 참고)
글: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김현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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